대한민국에 보수는 없다.
보수란 기존의 질서와 전통, 가치를 유지하고
급격한 변화를 경계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해방 직후 이어진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초토화된 상태에서
당시 기득권이 주장했던 ‘기존의 질서와 전통, 가치’는
과연 무엇을 의미했을까?
권위주의적 군사독재 시절을 그리워하며 나라의 역사를 세탁하고,
북한의 도발을 명분 삼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계엄령으로 독재를 꿈꾼 윤석열 정부와 집권 세력을
어떻게 진정한 ‘보수’라 칭할 수 있겠는가?
2024년 4월, 제22대 총선에서 대패한 집권 여당과 윤석열 정부는
현실을 부정했다.
저들은 스스로 선거를 통해 당선되었으면서도
자기가 진 선거만 콕 집어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한다.
바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저들에게 부정선거 음모론은 논리와 이성, 과학의 문제가 아닌
종교적 믿음의 영역이다.
저들의 세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부정선거 음모론이 필요하다.
2025년 지금도 여전히 지구가 편편하다고 믿는 10%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모일 때면 둥근 지구본 대신 네모난 지구본을 만들어 팔아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주의 공화국인가?
윤석열이 기름을 부어 활활 타오르는
대한민국의 파시즘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되새긴다.
이들이 헌법재판관들을 단두대에 세워놓고 사상 검증을 하는 모습은
마치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모든 지식인과 법관, 의사, 문화예술인을 처형했던
홍위병을 보는 것처럼 서슬이 퍼렇다.
그러나 나는 볼테르의 말처럼,
역겨운 당신의 사상과 말과 행동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발언권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
지금 당신이 그렇게 지껄여대는 것도 윤석열이 계엄에 실패해서,
여전히 대한민국에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윤석열도 보수를 참칭하다
새로운 시대에 도태되며 위기감을 느낀 친일 기득권 세력이
21세기 파시즘으로 부활하는 데 쓰이다 버려진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윤석열은 자신이 ‘벌거벗은 임금’이라는 걸 모른다.
아니, 자신이 ‘임금’이라고만 믿고 있지, 벌거벗겨진 건 전혀 모른다.
윤석열이 대한민국의 파시스트에 이용당한 허수아비라고 해서
그의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몰랐어도, 알았어도 죄다.
한 나라 지도자의 무능과 어리석음, 무책임함은 그 자체로 죄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은 파시스트들의 갖은 방해와 횡포에도
더디더라도 꾸역꾸역, 겨우겨우
윤석열을 탄핵하고, 체포하고, 구속하고, 기소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외신들은
현직 대통령이라도 나라의 근간인 헌법을 위반하고 체제를 흔들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신기루 같은 정의를 기어코 현실로 실현해 낸
대한민국 시민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총선에서 거대 야당을 만든 건
대한민국의 민주 시민의 집단 지성이 작동한 정치 행동이었다.
대한민국의 파시스트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미국도 못 하는 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