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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불꽃에 기름을 들이부은 윤석열

대한민국에 보수는 없다.

by 조하나


대한민국에 보수는 없다


대한민국 정치 지형은 단 한 번도 보수 vs 진보의 대결인 적이 없었다.

무려 35년이나 이어진 일제강점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일본식 성명 강요와 한국어 말살 정책까지 밀어붙이며 일본이 이 땅에 어떻게든 남겨놓으려 했던 건 바로 그들의 혼(魂)이었다.



보수란 기존의 질서와 전통, 가치를 유지하고
급격한 변화를 경계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해방 직후 이어진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초토화된 상태에서
당시 기득권이 주장했던 ‘기존의 질서와 전통, 가치’는
과연 무엇을 의미했을까?


주변국의 이념과 힘의 논리로 제 나라의 허리가 갈라지는데 목소리 한 번 못 낸 기회주의자들은 불안과 공포, 가난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인질 삼아 재빨리 보수의 탈을 뒤집어쓰고 기득권을 손에 쥐었다. 서구에서 출발한 진정한 보수란, 단순히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사회 질서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안정적인 국가 운영을 추구하는 태도인데,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띤 대한민국 땅에서 스스로 보수라 칭하는 자들은 상대 진영을 ‘종북좌파’ ‘빨갱이’라 부르며 이미 반으로 갈린 나라를 또 반으로 갈랐다. 그리고 그 세력은 현대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친일 세력으로 번성해 오랜 군사독재를 거쳐 현재의 집권여당이 되었다.


대한민국에 보수는 단 한순간도 존재한 적이 없다. 체제와 헌법을 수호하고 국가 안보와 자유를 지킨다는 보수는 1997년, 김대중과 이회창이 대결한 대한민국 대선에서 국정원을 통해 북한에 돈을 주고 남한과의 무력 충돌을 유도했다. 안기부는 김대중 후보가 북한과 내통한다는 가짜 정보를 유포하며 종북몰이했고, 김대중이 당선되면 남한이 북한에 흡수될 거라며 공포심을 조장했다. 스스로 보수라 칭하는 기득권 세력의 그 모든 공작에도 불구하고, 결국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서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군부 쿠데타가 아닌)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보수는 그전에도, 이후에도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의 잔재, 후예 세력일 뿐이란 걸 계속해서 스스로 증명해 왔다. 물론, 지금, 이 순간도.


내란우두머리 윤석열의 12.3 내란으로 위기에 처한 보수 참칭 기득권 세력은 기어코 폭력과 혐오를 섬기는 사이비 기독교 세력과 극단주의자들을 수면 위로 끌어내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사이비 종교의 탈논리적이고 광적인 믿음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혐오할 먹잇감을 던져주며 단합시키고, 민주 진영이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을 세우는 데 성취한 모든 것을 마치 제 것인 양 탈취한다.


보수 참칭 세력은 권력을 가진 자신들의 편에 서면 언젠간 그들도 기득권이 될 거라는 환상을 심고, 그들이 스스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가치 있는 투쟁을 한다는 도취감에 빠지도록 선동한다. 정부와 집권 여당, 즉 정치가 극우와 손잡고 이들을 합법적인 정치와 시스템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줌으로써 마치 극우 세력이 합리적이고 정상적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목소리이자 단결된 세력인 것처럼 착각하게 도운 것이다.



권위주의적 군사독재 시절을 그리워하며 나라의 역사를 세탁하고,
북한의 도발을 명분 삼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계엄령으로 독재를 꿈꾼 윤석열 정부와 집권 세력을
어떻게 진정한 ‘보수’라 칭할 수 있겠는가?




정치 지형의 극우화는 현재 대한민국만 겪는 현상이 아니다. 지금 미국과 유럽, 세계 곳곳에서 극우 정치세력은 기존 정치권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경제적 위기, 정체성 갈등, 이민자 문제 등 다양한 요소가 전 세계 극우 세력의 성장 원인으로 꼽히는데, 오스트리아에서는 나치의 후예를 자처하는 정당이 제1당이 되었고, 이탈리아에서는 극우파 총리가 당선되었으며 급기야 광장에서 극우 집단이 무솔리니식 단체 경례를 하는 충격적인 모습이 펼쳐졌다. 얼마 전 트럼프의 두 번째 대통령 취임식에서 일론 머스크가 취한 나치식 경례 또한 결코 우연히 벌어진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길 일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극우화 흐름이 계속되면서 한국의 극우 세력도 힘을 받는다. 한국 극우 세력은 거의 복제에 가까울 만큼 트럼프의 포퓰리즘·파시즘 정치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오늘날 극우 이념은 인터넷을 통해 국경을 넘어 퍼지고, 100년 전 히틀러의 연설 영상을 유튜브에서 본 전 세계의 젊은이들은 열광한다. 한국 극우 집단은 미국의 트럼프 지지자와 유럽 극우 정당의 전략을 참고해 글로벌 극우 네트워크와 연결되고 있다. 전 세계 극우화 흐름이 서로 연계되면서 국경을 넘은 극우 담론과 음모론에 관한 교류가 앞으로 더 활발해질 수 있다.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주의 공화국인가?


2024년 4월, 제22대 총선에서 대패한 집권 여당과 윤석열 정부는
현실을 부정했다.

저들은 스스로 선거를 통해 당선되었으면서도
자기가 진 선거만 콕 집어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한다.

바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부정선거 음모론은 오랜 시간 수백 차례에 달하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 대법원의 판결로 이미 완벽하게 반박당했다. 하지만 저들은 그 판결을 내린 판사들을 사상 검증하며 대법원의 판결마저 부정한다. 심지어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이후 검찰과 군을 동원해 이미 수차례 선관위를 수사하고 국정원을 동원해 해킹 시도까지 했지만, 제왕적 대통령제의 그 막대한 권력을 가지고도 윤석열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끝내 증명하지 못했다.


그렇게 부정선거가 의심되고, 그로 인한 나라 걱정에 잠 못 이룬다면, 제발 단 하루라도 선관위 개표감시 위원으로 자원봉사를 해보길 권한다. 그러나 저들은 선거 개표 과정을 직접 보여줄 테니 직접 현장에 오란 선관위의 말도 무시한다. 증거를 가지고 나와 토론하자고 해도 응하지 않는다. 저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지만, 상관하지 않을 뿐이다. 저들이 스스로 체제를 지키고 옹호하는 보수가 아닌 극우 파시즘 세력임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저들에게 부정선거 음모론은 논리와 이성, 과학의 문제가 아닌
종교적 믿음의 영역이다.

저들의 세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부정선거 음모론이 필요하다.

2025년 지금도 여전히 지구가 편편하다고 믿는 10%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모일 때면 둥근 지구본 대신 네모난 지구본을 만들어 팔아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윤석열과 세력은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다 결국 12.3 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대한민국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1.19 서울서부지법 폭동을 선동하며 법치주의마저 깨부쉈다. 그렇지 않아도 기회만 노리며 꿈틀대던 대한민국 파시즘의 불꽃에 윤석열이 기름을 들이부은 것이다.


우리는 정말 그의 정체를 몰랐는가? 윤석열은 대통령 후보 시절 전북대 대학생들과의 타운홀미팅에서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자유가 왜 개인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를 못합니다”라며 일찌감치 자신이 선민의식을 바탕으로 한 우매한 대중론을 신봉하고 있음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대통령 임기 내내 다원적 민주주의와 의회 정치, 정치적 타협을 거부하며 대한민국 헌법의 삼권분립을 정면으로 부정해 온 윤석열은 반헌법적 비상계엄 선포를 “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통치 행위”라며 체포·구속되자 “대한민국의 법치가 무너졌다”라며 되려 법을 꺼내 들었다.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에서 유일하게 제외된 내린죄와 외환죄를 지어놓고도 자신을 마치 신이 내린 왕이라 여기며 대선 후보 시절부터 들먹거렸던 그 ‘우매한 대중’을 선동해 1.19 서울서부지법 폭동을 선동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항하라 부추겼다.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주의 공화국인가?

윤석열이 기름을 부어 활활 타오르는
대한민국의 파시즘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되새긴다.


미국이 그렇게도 자랑스러워하던 민주주의를 산산이 조각내버린 트럼프에 관한 영화 <어프렌티스>를 보면, 트럼프가 그의 멘토 로이 콘에게 배운 세 가지 법칙을 체화하며 괴물로 탄생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첫째, 공격하고 공격하고, 또 공격할 것. 둘째, 세상에 진실은 없으니 스스로 뻔뻔하게 진실이라 우길 것. 셋째, 실패해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 그렇게라도 해서 반드시 승리를 쟁취할 것. 트럼프가 2020년 미 대선에서 바이든에게 패배했을 때 그는 이 법칙을 그대로 실천했다. 자신의 극단주의 지지자들을 선동해 미 국회의사당 난입 폭동을 선동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부상을 당했으며, 미국 민주주의와 의회주의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트럼프의 파시즘은 대한민국 광장에 들이닥쳤다. 정부와 집권 여당이 정치로 끌어들인 한국의 극단주의자들은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 윤석열을 나란히 늘어놓은 사진을 들고 ‘Save America’ 대신 ‘Save Korea’ 피켓을 들고, ‘Stop the Steal’을 외치며 부정선거 음모론을 신봉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에서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묘사한 장면 ⓒ 넷플릭스




이들이 헌법재판관들을 단두대에 세워놓고 사상 검증을 하는 모습은
마치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모든 지식인과 법관, 의사, 문화예술인을 처형했던
홍위병을 보는 것처럼 서슬이 퍼렇다.

그러나 나는 볼테르의 말처럼,
역겨운 당신의 사상과 말과 행동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발언권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

지금 당신이 그렇게 지껄여대는 것도 윤석열이 계엄에 실패해서,
여전히 대한민국에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자파로 몰린 인사들이 트럭에 태워진채 군중시위에 끌려다니고 있다 / 인류 초유의 광기, 중국 문화대혁명
주자파로 몰린 인사들이 대중들 앞에 서 있다 / 인류 초유의 광기, 중국 문화대혁명




윤석열은 정부 곳곳의 요직으로 다시 돌아온 뉴라이트 친일 세력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뉴라이트가 뭔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그 순간, 나는 경악했다. 그는 정말 자신이 대통령 자리에 앉아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결정이 이 나라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게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토록 어리석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사람이라면, 구치소에 앉아 있는 지금도 정말 자신이 나라를 위해 희생당한 거라고 충분히 믿고도 남을 터이다.



하지만 결국 윤석열도 보수를 참칭하다
새로운 시대에 도태되며 위기감을 느낀 친일 기득권 세력이
21세기 파시즘으로 부활하는 데 쓰이다 버려진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윤석열은 자신이 ‘벌거벗은 임금’이라는 걸 모른다.
아니, 자신이 ‘임금’이라고만 믿고 있지, 벌거벗겨진 건 전혀 모른다.

윤석열이 대한민국의 파시스트에 이용당한 허수아비라고 해서
그의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몰랐어도, 알았어도 죄다.
한 나라 지도자의 무능과 어리석음, 무책임함은 그 자체로 죄다.








그래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파시즘으로 잠식된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갈등 해결 방식으로 폭력을 정당화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길고 긴 군사독재 시절을 통해 국가 폭력이 어떻게 가정, 학교,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폭력의 일상화로 이어지는지 직접 경험하고 학습했다.


공권력이 체제에 대항하는 세력의 폭력을 효과적으로 제지하지 못하거나 지금의 국민의힘이 하는 것처럼 특정 정치세력이 이를 묵인하고 옹호하고 편까지 들면 법치주의는 붕괴하고, 결국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게 된다.

2020년, 트럼프가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 지지자들을 선동해 국회의사당 폭동을 일으키고,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해 가짜 선거인단을 조직했다는 사기 및 선거 방해 혐의까지 제기됐지만, 그는 대통령 재임 중 한 행동은 형사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우기며 2024 대선 출마를 핑계로 폭동 관련 혐의 재판을 일부러 지연시켰다. 결국 미국 국민의 반은 트럼프를 다시 백악관에 입성시켰고, 그를 뽑지 않은 절반은 절망했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은 파시스트들의 갖은 방해와 횡포에도
더디더라도 꾸역꾸역, 겨우겨우
윤석열을 탄핵하고, 체포하고, 구속하고, 기소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외신들은
현직 대통령이라도 나라의 근간인 헌법을 위반하고 체제를 흔들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신기루 같은 정의를 기어코 현실로 실현해 낸
대한민국 시민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은 여전히 탄핵과 형사처벌을 피해 백악관에 재입성한 트럼프를 보며 자신도 용산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망상에 빠져있다.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의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했더라면, 그리고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이 이전 국회처럼 기득권과 야합하고 제 이권만 챙기는 기회주의자들로 가득 찼더라면, 아무리 어설픈 계엄이었다 해도 성공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아둔한 권력자가 오래도록 정권에서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계획대로 부정선거 음모론이 사실로 둔갑하고,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전쟁을 일으켜 끝내 우리 모두를 파멸의 길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총선에서 거대 야당을 만든 건
대한민국의 민주 시민의 집단 지성이 작동한 정치 행동이었다.

대한민국의 파시스트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미국도 못 하는 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해낸 것이다.


민주주의 덕분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수많은 무명씨 덕분이다. 그러나 정작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끈 사람들은 전과자로 빨간 줄이 가 공직도, 취업도 여의치 않아 학원가로 빠지거나 해외로 이민을 떠났다.


대한민국의 파시스트들은 80년대 민주화 운동 시절 눈 가리고 귀 막고, 군사독재에 침묵하거나 방관하거나, 혹은 부역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판·검사가 되어 나라를 마음대로 휘젓다가 법복을 벗고서는 일전에 자신이 잘 봐줬던 대기업이나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겨 억 소리 나는 전관예우를 받는다. 그렇게 평생 그들만의 카르텔에서 민주주의가 이룬 경제 성과와 문화적 과실을 다 따먹고는 2025년, 또다시 대한민국에 민주화의 위기가 찾아오자 가장 먼저 발 벗고 나서 반민주주의 세력의 부역자로 활약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짜 정보와 음모론이 빠르게 확산하는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느리고 지루하며 선명한 결과가 금세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기보다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를 선호하며, 파시스트들은 이를 악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러티브를 구축한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절차가 복잡하고 느리다는 점에서 파시스트들의 단순하고 선명한 메시지는 더 강하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그 체제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붕괴가 시작되고 나서야 그 가치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땐 이미 늦었다. 아드레날린을 자극하고, 빠르고, 모든 게 즉각 반영되는 것처럼 보이는 파시즘의 끝은 결국 파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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