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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윤석열!

끝까지 구질구질하고 비겁하고 비열했다.

by 조하나

2025년 2월 25일, 대통령 탄핵 소추 심판에서 내란우두머리 윤석열의 최후 변론이 있었다. 그가 공식적으로 마이크 앞에 서서 하는 발언은 이게 마지막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70%의 시민들은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윤석열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도자, 대통령 자리에 앉아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했던 그의 모든 연설과 발언은 한 번도 빠짐없이 ‘대한민국 70% 시민은 국민에 속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끝났다.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나는 윤석열·김건희 부부가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민낯을 상징한다고 썼다. ‘맛집 다니며 술 많이 먹는 배 나온 아저씨’와 ‘성형에 중독된 비쩍 마른 동안 아줌마’가 어색하게 손을 잡고 해외 순방 비행기에 오르는 사진은 볼 때마다 비현실적이고 괴랄했다.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는 말이 얄밉게도, 내가 뽑진 않았으나 결국 나는 그들을 지도자로 뽑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다.


<탈무드>의 지혜로운 왕 솔로몬은 서로 자신의 아이라 우기는 두 엄마에게 말한다. “공평하게 아이를 반으로 나누라.” 그러자 한 엄마가 울며 왕에게 말한다. “차라리 아이를 저 여인에게 주십시오. 소중한 아이를 어찌 반으로 나눕니까?” 그러자 솔로몬왕은 그녀가 진짜 엄마라는 판결을 내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한민국은 윤석열이 대통령이 됨으로써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 어느 때보다 뼈저리게 마주 볼 기회를 가졌다. 윤석열은 아이를 반으로 갈라서라도 자신의 그릇된 망상과 나르시시즘을 포기하지 않는 어리석고 사악한 자였다. 그동안의 실정과 악행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할 수 있는, 윤석열의 생애 마지막 기회에서도 그는 끝내 국민과 이 나라를 탓했다.










윤석열의 빨간 넥타이

대통령 탄핵 소추 재판이 이어지는 내내 윤석열은 12.3 불법 비상계엄령 선포 시 대국민 담화 때 입은 복장 그대로, 짙은 회색빛 수트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나타났다. 빨간 넥타이에 집착함으로써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권력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에게 빨간 넥타이는 계엄령 선포 당시의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결정권을 시각적으로 복원하려는 상징적 도구였다. “나는 여전히 통제권을 가지고 있으며,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지지자들에게 전달하려는 것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 최후 변론 ⓒ 헌법재판소




권력에 중독된 윤석열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권력자들이 보여준 잔인함과 비인간성을 탄핵 심판 내내 여지없이 드러냈다. 한때 자신의 심복으로 심어둔 경찰청장 조지호를 혈액암 투병 중에도 억지로 증인석에 불러내 항암치료 중 섬망 증세가 있어 대통령이 정치인 체포 지시를 했다는 거짓 증언을 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PS25022701474.jpg 조지호 경찰청장이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10차 변론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 뉴스1




윤석열은 대통령 임기 내내 의견이 다른 야당과 언론, 시민단체, 노조를 탄압하는데 권력을 남용했다. 국민이 그런 대통령의 실정을 꾸짖기 위해 국민 주권의 행사 수단인 투표를 통해 거대 야당을 만들어 주니, 급기야 그 선거 자체가 부정이라 주장했다. 자기 친구를 선관위 사무총장에 앉히고, 검찰과 경찰, 국정원, 감사원까지 동원해 선관위를 탈탈 털다가 아주 증거도 못 찾아내자 결국 비상계엄령을 명분으로 군까지 동원해 부정선거 주장에 힘을 싣고 국회를 해산하고 장기 집권의 길을 모색하려다 실패했다.


실패한 쿠데타의 우두머리가 법정에 서서 이것은 실패한 계엄이 아니라 국민을 깨우치기 위한 평화적 계엄이라 주장했다. 대한민국은 종북좌파와 친중 간첩으로 가득하다고 주장하며, 급기야 이태원 참사 이후 진상을 밝히라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요구가 북한의 지령이라고 말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런 윤석열의 행태를 권위주의 지도자의 본질적 특징 중 하나로 꼽았다. 바로 진실을 왜곡하고, 스스로 연극적 역할을 통해 그 왜곡된 진실을 더 굳건하게 만드는 행위다.


윤석열의 권력은 미셸 푸코가 말한 ‘권력의 미시적 전략’처럼 단순히 물리적 억압을 넘어 사회적 관념과 규범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에 해악이 된다. 윤석열은 자신의 세력이 아닌 모든 세계를 ‘종북좌파’ ‘친중’으로 규정하며 대한민국의 모든 관념과 규범을 이념 체제로 재정립한다. 미국의 트럼프가 쓰는 방식이다. 그리고 윤석열은 그 전략이 대한민국에 꽤 잘 먹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자신이 용산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굳게 믿는다.









실패한 쿠데타의 패장


그래봐야 70%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윤석열은 실패한 쿠데타의 무능하고 어리석은 패장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실패한 내란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부하에 미룬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어리석어 대통령의 합법적 권한인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고 당당히 말한다. 헌법 조문에 또박또박 적힌 계엄령 선포 조건은 깡그리 무시한다. 그가 존경한다는 전두환이 내란죄 재판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대통령의 권한인 비상계엄령 선포를 사법부가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전두환의 주장이 대법원 선고에서 인정되지 않았다는 건 말하지 않는다. 그런 자가 바로 서울대 법대 출신에 사법고시를 패스해, 이 나라에서 평생을 검사로 살았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권력을 가진 자들이 더욱 보호받고, 반대로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더욱 가혹한 책임을 지게 되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윤석열은 자신이 권력자라 굳게 믿기에 실패한 쿠데타에 대한 책임도 모두 부하들에게 돌린다. 그가 국민에겐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의 가까운 참모들에게라도 믿음직한 지도자였다면, 지금까지도 내란에 가담했던 모든 이들이 목숨을 걸고 그를 지켰을 것이다. 김치찌개에 술이나 먹으며 골프나 같이 치면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외교, 문화, 헌법 체계를 하루아침에 엎어버릴 수 있을 거란 기대는 군 미필에, 알코올중독에, 공감력이 떨어지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리석고 무모한 짓이었다.


무능하고 비겁한 사람이 사악하고 비열하기까지 하면 어떤 말로를 맞게 되는지 육군‘내란’학교와 서울대 ‘내란’과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군 장성들과 참모들이 서로 책임을 미루며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만약 내란에 성공했다면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똑같은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짓밟았을 것이다. 나치의 아우슈비츠가 그랬고, 광주의 계엄군이 그랬다.









스스로 복종하는 자


내란에 가담한 정부의 국무위원과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그리고 윤석열의 극우 파시즘 지지자들은 유교적 위계질서를 버리지 못한 한국의 전통적 사회구조,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성리학적 가치관인 ‘신분 질서’를 강조하며, 상명하복의 관계를 중시한다. 근대 이후에도 이러한 구조는 지속되었다.


일제강점기와 군부 독재 시절, 한국 사회는 강한 권력자의 지배를 받아왔으며, 이에 대한 저항보다는 순응하는 태도가 길러졌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부 독재 시절을 ‘그때가 좋았지’ 하며 추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권력자가 잘못해도 조직의 하위 계층이 대신 책임지는 문화에 동조한다. 자신이 복종하는 권력과 스스로를 동일시함으로써 그 권력자가 사라지면 자신의 존재도 사라질 거라는 두려움의 발현이다.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없는 극우 파시즘 좀비들은 권력자가 바라는 대로 길거리로 몰려나와 우리의 일상을 마음껏 침범하고 폭력과 혐오의 독을 푼다. 그렇지만 그들은 정작 그 책임져야 하는 하위 계층이 바로 자기 자신이란 걸 모른다.


윤석열의 12.3 내란을 통해 대한민국 군대가 여전히 권위주의와 군부 독재에 향수를 진하게 품고 또다시 영광의 그날을 누릴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현태 특전사 707 단장은 국회에 나와 내란 가담에 책임을 지고 사과하기는커녕 “국회 앞 시민들이 우리를 이용해 폭동을 일으키려는 것 같았다”는 망언을 했다. 내란우두머리 윤석열은 책임을 군 지휘부에 돌리고, 군인이라는 작자가 그 책임을 국민에게 돌리는 식이다. 살인미수로 현장에서 검거된 현행범이 평온하게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피해자에게 “너희 집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다 손을 베었으니 물어내라”는 식이다. 김현태 특전사 707 단장은 대한민국과 특전사 역사에 길이길이 수치로 남을 것이다.


다운로드.jpg "부대원들은 김용현에 이용당한 피해자"라며 양심고백에 나섰다가 국민의힘에 회유되어 윤석열에게 유리한 입장으로 바꾼 김현태 707특임단장. 그는 여전히 현직에 있다. ⓒ 뉴스1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한 마지막 변명


모든 대한민국 대통령은 임기 동안 읽은 책 목록을 공개한다. 윤석열은 된 이후 2년 반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인문학적 소양이 가난하다 보니 그의 최후 변론의 문장들은 푸석하고 감동이 없다. 일본 판결문에서 인용한 ‘호수 위 달그림자’ 이야기를 또 했지만, 대통령 최후 변론 전, 국회 측 최후 변론에서 정청래 의원이 이미 그 비유를 보기 좋게 반박했다. 하지만 남의 말은 절대 안 듣는 윤석열은 국회 측 최후 변론엔 나타나지 않다가 자신의 순서가 되어서야 나타났으니 이를 알 리 없다. 언제나 그는 그랬다. 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듣는 척도 안 하며, 늘 자기 할 말만 했다.


윤석열의 최후 변론은 온갖 거짓과 억지가 난무했다. 군을 내란에 이용한 내란우두머리가 야당이 국방부 예산을 깎아 군의 소중한 두 눈을 빼갔다고 선전했다. 실시간으로 언론 매체가 팩트 체크를 해보니 지난해 국방부 주요 사업이 마무리된 터라 정부가 직접 이 예산을 삭감한 것이 진실이었다. 하지만 윤석열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든 무엇이든 핑계 삼아 지금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도자로서 최악의 면모를 그는 여지없이 스스로 증명했다.


윤석열의 변호인단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판결문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에 들이밀었다. 대한민국 국민, 그것도 법조인이 미국의 헌법을 바탕으로 미국인 법조인이 미국인 피청구인에 선고한 판결을 가지고 ‘우리도 이렇게 판결해야 한다’ 떼를 쓴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과연 대한민국의 ‘자주 주권’의 개념이 있기나 하단 말인가?


윤석열은 미국을 좋아한다. 대한민국이 못 살던 시절 미군 부대가 지나가면 “김미 쪼꼬렛! 김미 쪼꼬렛!”을 외치던 세대를 정조준한 선전·선동이다. 미국에는 꼼작 못하면서, 동남아 사람들에겐 기고만장한 전형적인 ‘강약약강’ 유형의 인간들이다.


반중 정서를 넘어 중국을 혐오하는 대한민국의 극우 파시즘 행태는 근본적으로 친일 세력으로부터 시작됐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중국 침략의 수단으로 조선을 이용했다. 식민지 백성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일본은 끊임없이 조선과 중국을 이간질했다. ‘오징어게임’의 두 팀으로 나뉜 플레이어들이 서로 죽고 죽이느라 커튼 뒤에 샴페인을 들고 구경하는 게임 설계자들에 저항할 수 없도록 하는 전략이다. 그래서 한 역사학자는 대한민국의 극우는 자신의 나라를 위하는 진정한 극우도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극우가 아닌, ‘친일 매국’ 좀비 세력이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석열의 최후 변론이 끝난 이후, 그동안 내내 참고 참았던 중국 정부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에 대한 우려와 불쾌감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윤석열은 파면되어 사라지면 그만이지만, 그 뒤에 남겨진 엉망진창이 된 경제와 외교의 피해는 온 국민이 고스란히 되갚아야 한다. 미국에 트럼프와 머스크가 날뛰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살기 위해서라도 중국과 유럽, 인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지로 시장을 다각화하고 경제적 실리를 얻어야 한다.


1990년대 초반, 이미 전 세계 경제학자들이 ‘체제 경쟁은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선언했는데도 21세기 AI 시대에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반공’ ‘멸공’을 외치던 신세계 정용진은 사업이란 사업은 다 말아먹다가 얼마 전 중국 알리바바와 계약을 맺었다.


태어나보니 재벌 3세인 정용진도 반평생을 넘게 ‘멸공’을 외치다 이제 정신을 차렸는데, 윤석열도 이제 그만 70년대 박정희와의 접신에서 빠져나와 대한민국에 민폐 좀 그만 끼쳤으면 좋겠다. 혼자 생각하는 건 자유나, 대통령 자리에 앉아 온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볼모로 잡고 술주정을 하는 건 범죄다.











청년은 국민이 아니다?


윤석열은 빨간 넥타이를 매고 자신의 결단이 역사의 한 순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며, ‘국민 여러분과 청년 여러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청년’은 ‘국민’이 아닌가? 이는 정치인 이준석이 항상 ‘남자’와 ‘여자’, ‘젊은이’와 ‘노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 말하거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저소득층 아이’와 ‘고소득층 자제’라고 말하며 갈라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쓰는 언어를 통해 알 수 있다.

윤석열에게 ‘청년’은 지금 자신이 이용해 먹기 가장 좋은 부류다. 여성의 인권신장과 성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페미니즘에 억하심정과 피해의식을 가진, 기성세대가 모든 걸 가져가 자신들에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울분과 자격지심을 가진 2030 남성을 노려 세상에서 고립시킨다. 그리고 그 화를 마음껏 표출하라며 한 손엔 라이터를 쥐여주고, 다른 한 손엔 칼을 쥐여준다.

80년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젊은 대학생들을 비슷한 또래의 계엄군들이 어쩜 그리 잔인하게 살해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있다. 당시 전두환을 비롯한 군 지휘부는 계엄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유를 외치는 저 대학생 놈들은 부잣집에 태어나 종북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부르주아들이다!” 거짓으로 인간의 악함을 일으켜 인간을 마음껏 죽여도 된다는 명분과 면죄부를, 같은 인간이 준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서울서부지법 폭동 피의자가 되어 재판 중인 폭도들에게(만) 윤석열은 안타깝고 미안하다고 했다. 헌법을 준수하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최종 변론에서 끝까지 헌법을 망가뜨리려는 폭도들을 두둔하며 자신의 권력이 마치 세례라고 되는 듯 면죄부를 준 것이다.


끝까지 헌법재판소 판결에 승복한다는 뜻을 밝히지 않은 윤석열은 또 다른 폭동을 준동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국민을 반으로 가르고, 서로 죽도록 혐오하도록 만들 셈이다. 친일 매국 좀비 세력은 윤석열의 뜻에 따라 정작 화를 내야 할 곳에 내지 않고, 책임을 물어야 할 곳에 묻지 않고, 만만한 사람들을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대한다.


최근 대한민국의 20대 남성의 보수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70대 남성과 정치적 입장에서 유사점을 보인다는 분석이 나왔다.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젊은 세대가 느끼는 불안감이나 불만, 상실감이 과거 기성세대가 가졌던 가치관과 유사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윤석열이 솔로몬왕처럼 어진 지도자였다면 국민의 통합을 이루진 못할망정 안 그래도 청년실업률과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에서 특정 세대와 성별을 콕 집어서 “너희들이 가졌어야만 했던 모든 것을 저기 저 여성들과 좌파 종북 세력들이 뺏어갔다!”며 진실을 날조하고 분열시키진 말아야 했다.


사회심리학자인 스탠리 밀그램은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 연구를 통해 권위자가 강력할수록 개인이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고, 명령에 따를 경향이 있음을 증명했다. 한국 사회의 권력에 복종하는 태도는 오랜 기간 사회 구성원에게 내면화된 결과이기도 하다.


반면, 권위가 약하다고 판단되는 상대에게 사람들은 한없이 강하다. 이는 자신보다 힘이 약한 대상에게는 가혹하게 대하며, 사회적 좌절을 해소하려는 심리적 기제이다. 학교와 직장에서 약한 사람에게 유독 가혹하게 구는 ‘갑질 문화’도 그렇다.


윤석열의 최후 변론 이후, 극우 유튜버 안정권과 배인규는 기다렸다는 듯 깡패처럼 우르르 이화여대로 달려갔다. “젊은 여자애들 괴롭히는 게 제일 만만해서”였다. 최근 사이비 기독교 전광훈 파로부터 화교라 몰리며 사이가 틀어진 신남성연대 배인규는 코너에 몰리자, 이화여대에 가서 힘자랑을 했다. 코너에 몰린 정치인 이준석이 갑자기 엄한 동덕여대에 가서 힘자랑한 것처럼. 그들은 혼자 있을 땐 한없이 비겁하고, 패거리가 있어야 큰소리를 친다. 친일 매국 좀비 세력은 그래서 절대 1인 시위를 하지 않는다. 늘 패거리로 몰려다니며 조폭처럼 군다. 내세울 논리와 이성이 없기 때문이다.



IE003420723_PHT.jpg 이화여대에서 드러누운 친일 매국 좀비, 배인규와 안정권 ⓒ 오마이뉴스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는 여대생들에게 “시집이나 가겠냐”며 온갖 성적 욕설로 희롱하고, 급기야 멱살까지 잡고 위협하며 폭력을 행사했다. 여대에 가면 더 큰소리치고, 더 우쭐해지는 두 인간이 목도리도마뱀보다 처량하고 허약해 보인다. 겨우 여자 앞에나 가야 제 힘이 세진다고 믿는, 상대를 폭력으로 제압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자존감을 느끼며 자위하는 비겁한 인간들, 그들은 윤석열만큼이나 지질하고 추악하다.



high.png 이화여대 재학생의 멱살을 잡은 극우 유튜버 ⓒ 뉴스1




헌법재판관 문형배가 사는 집에 찾아가 시위를 벌이는 친일 매국 좀비들은 어떤가. 그들의 목적은 문형배를 직접 공격하는 게 아니다. 아파트 단지 이웃 주민들을 일부러 불편하고 두렵게 만들어, 그 이웃들의 불안과 불만을 문형배에 대한 증오와 혐오로 바꾸기 위해 저런다. 악질 중의 악질이다. 그들을 지배해 온 권위주의적 권력자들에게 배운 것 그대로 써먹는다. 혐오와 폭력은 이렇게 전염된다. 자신들을 정의의 화신으로 착각하도록 가스라이팅해 이 사회에 혐오와 폭력의 독을 퍼뜨리는 프로파간다의 희생양이자 또 다른 가해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자신의 거대한 존재감에 취해 오늘도 세상에 온갖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들이다.






서울서부지법 폭동을 부추기고, 인권위를 찾아가 난동을 부리고, 급기야 광주까지 침범한 친일 매국 좀비들이 다녀가자, 대한민국 일부 언론은 마치 민주화의 성지 광주마저 윤석열 탄핵 찬반 여론이 반반이라며 여론을 호도했다. 광주가 아닌 대구, 경북, 부산에서 관광버스 64대를 대절해 계약 시위만 하고 도망친 서커스 유랑단인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윤석열의 탄핵 심판뿐 아니라 김건희를 비롯한 최측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는 언론은 무의식적 공모자가 되어 그들을 돕는다. 대한민국 언론이 종교처럼 믿는 ‘기계적 중립’은 허울에 지나지 않고, 스포츠 중계식의 ‘양비론’은 비겁하고 역겹다. 한 국가의 체제를 위협하는 내란만큼 헌법적 가치와 정의가 분명한 문제에서 한발 물러나 마치 대한민국의 윤석열 탄핵 및 처벌에 대한 여론이 정확히 5:5인 것처럼 다루는 언론은 이번 기회에 퇴출해야 한다.


최소한의 보도 윤리나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도 없이 언론의 자유가 헌법으로 선명하게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하는 특정 언론사를 탄압하고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데도 그 어떤 언론도 말이 없다. 이준석이 <김현정의 뉴스쇼> 제작진과 실시간으로 연락해 진행자의 질문과 방송 내용에 개입하는데도 진행자는 갑자기 안식 휴가라며 사라지고 제작진은 끝까지 잘못이 없다며 문제를 제기한 국민을 겁박한다. 윤석열과 한동훈이 검사였던 시절, 그들이 부르는 단어 토씨 하나까지 받아 적어 팩트체크도 없이, 가치 판단도 없이 앵무새처럼 나불대던 기자들은 지금도 어디 붙어 얼마나 뜯어먹을까 고민 중이다.


대한민국 언론은 윤석열 못지않게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다. 이선균, 김새롬 같은 연예인들에게 들이대는 고결한 도덕적 잣대를 정치인에게 들이대 보라. 노동자,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사회적 참사에 대한 문제를 다룰 때 취하는 조롱과 혐오의 태도를 대기업 재벌과 권력자, 기득권 세력에 똑같이 해보라.

그럼에도 광주는 끄떡 않는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민주화의 역사를 볼 수 있는 5.18 민주 평화 기념관도 들렀다가, 맛난 남도 음식도 맛보고 가란다. 그런데 친일 매국 좀비 세력은 뭐 그리 바쁘다고 꽁무니를 내뺐다. 애초에 광주에 온 이유 자체가 광주가 대한민국에서 무얼 상징하는 도시인지 알았던 게다. 마음속 깊은 곳 그들을 미세하게 콕콕 찌르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패거리가 있어 티를 못 내더라도 외롭고 텅 빈 집으로 혼자 돌아가 앉으면 ‘내가 무슨 짓을 했지’ 하는 자괴감이 들 것이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발언권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


윤석열 측 대리인 김계리 변호사가 “저는 계몽되었습니다”라며 돌연 간증에 나섰다. 그녀가 헌법재판관들을 가녀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이 같은 여자로서 수치스러웠다.

나는 ‘계몽’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함께 저 여인이 변호사가 되겠다고 헌법에 손을 올리고 했을 선언을 떠올렸다. 그녀는 분명 헌법을 준수하고, 인권을 위해 싸우는 최후의 보루가 되는 법조인이 되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녀가 윤석열의 탄핵 소추 재판 내내 보였던 인간을 대하는 조롱과 경멸의 시선과 비아냥거리는 태도는 한 인간으로서도, 법조인으로서도 옳지 않았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 의견을 밝히는 건 그녀가 주장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겠지만, 법조인의 자격으로 신성한 헌법재판소에서 피청구인의 변호인 측으로 그녀가 한 말들은 모두 오염됐다.


그녀는 자신의 진영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간첩과 범죄자로 내몰았고, 목숨을 걸고 국회 담을 넘은 국회의장과 국회의원을 비아냥거렸고, 광야에 혼자 선 홍장원 국정원1차장과 곽종근 특전사령관에게 모멸감을 주려 노력했다. 법조인다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법리 다툼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맹신하며 고집하는 건 그녀가 상대를 향해 공격하는 북한의 독재와 전체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는 모순을 그녀 혼자만 모르는 듯했다. 우리는 그걸 망상적 정신 장애라고 부른다.



대한민국 지성의 전당인 헌법재판소에서 "나는 계몽되었다"는 간증을 펼치는 김계리 변호사 ⓒ 헌법재판소



나는 헌법재판소에서 최후 변론하는 그녀의 역겨운 말들을 꾸역꾸역 삼키며 19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의 철학자인 볼테르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발언권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 그녀가 손가락 하나 얹지 않은 수많은 무명 씨의 희생으로 이뤄진 민주주의 덕분에 감히 저런 수준의 실력으로도 헌법재판소에 나와 저렇게 오염된 말을 지껄일 자유가 주어졌다는 것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나는 나의 민주주의를 위해 기꺼이 그녀를 참기로 했다. 그녀가 언급했던 아이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궁금해졌다. 부디 그 아이가 자신의 엄마를 닮지 않기를, 집단 괴롭힘에 앞장서며 쾌락을 느끼는 혐오와 폭력의 열매가 되지 않길 기도했다.








윤석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윤석열은 끝까지 사과 한마디 없었다. 나는 길 가다 군복 입은 사람만 봐도 괜히 심장이 뛰고,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온 국민이 연이은 사회적 참사의 트라우마와 상처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또다시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다.

이제 사과 따위는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눈앞에서 사라져만 달라고 국민이 빈다. 더 이상 찢기고 갈라진 국민을 그만 난도질하라고 호소한다. 윤석열이 사라져도 우리 사회에 남은 깊은 분열의 상처는 여전히 남을 것이다. 윤석열 파면 선고 후에도 사람들은 둘로 갈라져 서로 사상 검증을 할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건 2030 세대다. 십 대에 세월호 참사로 또래 친구들이 바다에 수장되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봤고, 사고 원인을 밝혀달라는 유족의 단신 투쟁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시켜 먹는 어른들을 보았다. 이십 대가 되어선 이태원 참사로 또래 친구들이 서울 한복판 길거리에서 압사당하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봤고, 사고 원인을 밝혀달라는 유족 앞에 정부가 마약 검사지를 들이대는 걸 봤고, 대통령이 나타나 “뇌진탕으로 죽었어?” 하는 걸 들었다. 이제 그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나와 자신의 파면을 방어하는 이유로 이태원 참사에 북한 간첩이 연루되었다는 ‘썰’을 푼다. 그리고 윤석열은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로 또래 친구들을 잃은 젊은이들을 계엄군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윤석열은 그들을 탄핵 반대 집회의 사이비 기독교 세력에 결탁시켜 친일 매국 좀비로 만든다.


모든 국민이 윤석열과 김건희의 지배를 받아 마땅한 것은 아니다. 아주 극소수지만, 12.3 계엄의 밤,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한 일부 지휘관이 있었고, 대통령의 정치인 불법 체포 지시를 폭로한 국정원1차장이 있었다. 지금도 이 나라를 떠받들고, 덜컹덜컹해도 굴러가게 하고 있는 건 아침에 눈을 떠 아이들 밥을 챙기고, 가게 문을 열고, 일터에 나가 제 할 일을 하는 아주 보통의 사람들이다.


이 나라는 30년 후 소멸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에 대한 대비는커녕 발등에 난 불도 끄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절체절명의 시기에 윤석열은 감히 계엄을 했다. 그나마 체면을 차리고 있던 경제를 한순간 쓰레기통에 쑤셔 박았다. 계엄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대외적 신임도와 K-컬처의 긍정적 이미지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고, 한국은 이제 ‘여행 가기 꺼려지는 나라’가 되었으며, 앞으로 온 국민이 갚아야 할 계엄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아무리 양보해도 100조에 달한다. 앞으로 젊은 세대는 더 살기 힘들어질 것이며, 더 위축되고, 더 결혼하지 않고, 더 아이를 안 낳을 것이다. 윤석열이여, 도대체 대한민국에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굿바이, 윤석열!


특권이란 특권은 모두 누리면서 책임은 절대 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정치권력, 군 권력, 언론 권력, 사회 권력을 우리는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 도덕적 책임과 최소한의 양심, 일말의 수치심도 없는 이들에겐 오로지 끔찍하게 엄격한 법적 처벌만이 답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 광장의 촛불 요구가 사회 대개혁으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 힘으로 그 거대한 권력을 끌어내렸다는 상징적 의미를 얻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인 현직 대통령도 법을 어기고 나라의 근간을 흔든다면 당연히 처벌 대상이 된다는 것, 그리고 처벌이 실제로 이뤄진다는 선례가 된 것이다. 박근혜의 선례가 없었다면, 윤석열은 절대 탄핵 소추되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의 계엄 계획 문건이 없었다면 윤석열의 계엄도 없었겠지만.


현직 대통령을 두 번째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은 유난히 ‘권선징악’ 스토리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런 일이 현실에선 드물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뿐 아니라 기업과 군대, 관료제 등 다양한 조직에서 여전히 힘을 가진 자들이 더욱 보호받고, 반대로 힘이 없는 사람들은 가혹한 책임을 진다.


우리는 국민의 힘을 더 키워 나라를 바꿔야 한다. 내란정당 국민의힘이 오염시킨 언어 ‘국민의 힘’의 참뜻을 우리가 가져와 다시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에 찬성한다. 국민 대신 앉은자리에서 제대로 일을 못 하면 선출한 국민이 언제든 끌어내릴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는 무작위로 선정된 시민들이 국민의회를 구성해 개헌 안건을 토론하고, 모든 회의를 공개하며, 소셜미디어로 국민 의견을 수렴해 의회에 넘겨 국민투표에 부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해온 대로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공당의 후보를 패거리끼리 밀어주고 거래하면, 지방자치는 물론 지방의회와 지역경제, 모두 무너진다. 가짜 여론조사를 돈으로 거래하며 능력 없는 이들이 제 식구 챙겨주기로 정치하는 세상, 그런 정치인을 뽑아주는 세상을 이제 끝내야 한다.


우리는 화를 낼 곳에 제대로 내야 한다. 커튼 뒤에 가면을 쓰고 샴페인을 홀짝이는 게임 설계자들을 찾아 화를 내야 한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있는 한 계속된다. 우리는 당연히 플레이어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가스라이팅 되었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다. 당신에겐, 나에겐, 그리고 우리 모두에겐 선택권이 있다.


굿바이, 윤석열! 끝까지 구질구질하고 비겁하고 비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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