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기는 수천 번 왔다

쉽게 질리는 사람의 장기 연애

by 감정수집가

나는 쉽게 질리는 성격이다.


”울정도로 감동했는데 덕질을 하지 않는다니 신기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친구가 말했다.

나는 덕질을 해본 적이 없다.


학창 시절에도 유행하던 아이돌을 좋아한 적이 없었고

울면서 감동적으로 본 애니메이션도

며칠만 지나면 흥미를 잃어버렸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몇 달 지나 다른 일을 하고 싶었고

이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이사를 하고 싶어지곤 했다.




반대로 남편은 하나를 오래 좋아하는 사람이다.

한 음식에 꽂히면 며칠 내내 같은 걸 먹고

늘 비슷한 일상을 반복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오래 연애했는데

권태기가 한 번도 안 왔는데 신기해.”


데이트 중 남편이 말했다.


”나는 권태기가 수천 번 왔었는데?”


내 말에 남편은 꽤 당황한 표정이었다.




남편과의 데이트는

지루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했다.


남편은 꽤 까다로운 편이었다.

안 먹는 음식이 많았고

처음 가는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항상 불만이 많았다.


음식이 맛이 없고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지 않고

직원이 불친절하다며

집에 가는 내내 이야기를 했다.


불만을 피하려면

자주 가던 식당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늘 같은 곳을 가다 보니

나는 금방 질려버렸다.




자극을 추구하는 나와 다르게

남편은 항상 예측 가능한 사람이었다.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잠을 자고

감정기복도 거의 없었다.


함께 있어도

특별히 재미있는 일도

크게 싸울 일도 없었다.


반복되는 일상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져서

나중에는 어쩌다 싸우는 일 마저

새롭고 재밌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오래 만날 수 있었는 데에는

내 성격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친구관계에서

의리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한 번 친해지면

쉽게 관계를 끊지 않는 편이다.


친구가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옆에 남아 버텨주는 사람이었다.




모든 걸 쉽게 질리는 나지만

이상하게도 인간관계의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람을 만날 때

늘 진심으로 좋아했고

그 관계가 오래 이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람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변했고

시간이 자니며 멀어지는 일도 많았다.


그런 경험이 반복될수록

나는 점점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권태기를 이겨내고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연애를 하며

나는 남편을 많이 닮아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던 나였지만

요즘은 익숙한 사람들만 만난다.


매번 새로운 식당을 찾던 나도

이제는 실패할 바에

자주 가던 곳을 선택한다.


여전히 새로운 자극을 찾고 있지만

예전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




나는 여전히 쉽게 질리는 사람이지만

안정적인 사랑에서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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