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한 줄 모르고 포기한 것들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걸 이해하게 된 순간

by 감정수집가

내 결혼 소식을 친척들에게 전했을 때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촌들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결혼하려면 눈을 좀 낮춰야 해.

모든 게 다 좋은 사람은 없어."


당시 나는 이상형에 맞는 사람과 결혼한다고 생각했고

포기한 게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도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내려놓은 것들이 참 많았다.




20대 초반에는

취미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그림 그리고, 바느질 같은 공예도 좋아했다.


여자들에게는 비교적 흔한 취미지만

남자들 중에서는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취미가 꼭 같을 필요는 없지.' 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대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화려한 언변과

눈에 띄는 패션센스를 가진 사람 보다

과묵하고 수수한 사람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유머센스나 재밌는 스몰토크는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었다.


감정기복이 큰 사람보다는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잘 웃고 생기 있는 사람도

포기하게 되었다.


그땐 선택이라고 믿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포기였다.




남편을 사귀고 시간이 지나자

처음에는 장점으로 생각되었던 점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면

공감해 주거나 조언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과의 대화는 늘 짧게 끝났다.


"내 얘기 듣고 있어?"

"응."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 힘들었구나 하고 생각했어."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남편과는 재밌고 활기찬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내가 한참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

웃는 경우는 드물었고

"그래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화를 하고 나면

기운이 빠졌다.




어느 날 남동생이

옷을 같이 사러 가자며 자취방에 놀러 왔다.


오랜만에 동생과 시간을 보내니 즐거웠다.

동생은 공감을 잘해주고

재밌는 이야기를 잘한다.


우리는 티키타카가 잘 맞았고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공감대 덕분에

옷을 고르면서 재밌게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동하던 중

갑자기 동생이 길에서 화를 냈다.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동생은 오히려 더 날카로워졌다.


추측하기로는 생각보다 쇼핑이 길어졌고

이후로 다른 약속이 있어서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나는 동생의 그런 모습이 익숙했다.


다음 가게에서

동생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골라주고

분위기를 잘 풀었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이런 사람이 연인이라면

나는 오래 버티지 못했을 거라는 걸..


남편은 잘 웃지도 않지만

잘 화내지도 않는 성격이었다.

적어도 나한테 갑자기 이유 없이 화내는 일이 없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일장일단이 있다는 것을.


동생은 대화가 즐겁고 다정하지만

감정이 격해질 때가 있다.


남편과의 대화는 심심할 때가 많지만

늘 비슷하고 예측 가능하다.


어른들이 말씀이 맞았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나는

완벽한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단점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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