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심
"여보, 난 왜 아직도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왜, 뭐 또 모르는 거 안다고 했어?"
"뭐... 그런 셈이지."
어제저녁은 동네 아줌마들과 모임이 있어 좀 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그만 그 일이 벌어졌다.
"하나 씨가 직감이 뛰어나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금방 다 알아차려요."
"그래? 막 뭐 초능력 이런 거야?"
"에이, 초능력 그런 건 아니지요. 큭큭."
" 뭐 소머즈 같은 거야?"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말을 듣자마자 웃었고 얼떨결에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나는 '소머즈'가 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난 왜 웃고 있는 거지?' 그 순간 옆에 앉은 나만큼 촉이 좋은 언니가 물었다.
"하나 씨, 소머즈 알아?"
"아, 뭐, 대충. 그러니까 뭐 그런 거....."
나는 그 순간 '아니요, 몰라요.'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데 왜 웃었는지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잖아. 내가 모르면서 아는 척했다는 걸 인정해야 하잖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뿐.
"원더우먼은 알아?"
"네...."
"원더우먼 같은 여자인데, TV 시리즈물. 원더우먼보다 더 전에 나온 거야. 아마 그래서 모르는가 보다."
"어머, 하나 씨는 소머즈를 안 본 세대구나."
"하나 씨 진짜 어리구나. 세대차이 난다."
언니들은 추억에 젖어 신나게 이야기하는데, 난 너무 창피했다. '또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 안 했다.'라는 생각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항상 완벽해야만 하는 걸까.
"여보, 그래서 어제 너무 창피했어."
"나도, 모르는 걸 모른다고 다 말하지는 않아. 꼭 말해야 할 필요 없을 때는 그냥 있기도 해 종종."
"응, 그래도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지는 않잖아. 어제는 좀, 까발린 듯한 기분이었어. 정말 창피했어."
발가벗은 듯한 창피한 경험이었으니 앞으로는 안 하게 될까?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아는 척하며 두루뭉술 넘어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심리와 행동의 시작점은 무엇일까. 몇 날 며칠을 생각해 보고 책도 읽어 보았다. 그리고는 새로 알게 된 것들도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방법들도 정리가 되었다.
'아들러의 인간 이해' 중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극심해질수록 정신생활에는 긴장감이 높아진다. 그로 인해 행동의 자유는 심각하게 제한되고 그에 맞는 성격 형태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허영심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허영심이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있다. 허영심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누구나 조금씩은 그런 성향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허영심을 공공연히 드러내면 별로 호의적인 인상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 감춰져 있거나 여러 다양한 형태로 위장하게 된다.
허영심이 어느 일정한 범위를 벗어나면 매우 위험해진다. 그것은 사람을 무가치한 일과 비용, 노력에 몰아넣는 것 말고도 실질적인 면보다는 외형적인 면에 치우치게 만들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하고, 기껏해야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에 대해서만 관심을 쏟게 만들기 때문에 현실과의 접촉점을 쉽게 잃어버리게 된다.
자신에 대한 충일감이 결여되어 있을수록 그들은 특별히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우월해지고 싶어 한다. 어떤 사람이 몹시 눈에 띄는 허영심을 드러낼 때 그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기 평가가 매우 낮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들 중에는 이런 무력감을 자기 허영심의 출발점으로 확실히 의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날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허영심과의 완전한 분리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허영심. 자신의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필요 이상의 겉치레나 외관상의 화려함에 들뜬 마음.
한 번도 나의 성격 리스트에 '허영심'이라는 단어를 올려놓지 않았다. 나에게는 절대 해당되지 않는 단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 그런 생각 자체가 스스로를 우월하다 느끼는 '허영심'의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서 크고 작은 '허영심'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예외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또한 내가 그것들을 어떤 겸손함으로 위장하여 표현했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반복되는 실수와 자아 성찰을 해왔다. 앞으로는 반복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조차 없다. 그러나 내 안의 '허영심'은 보물 단지가 아니라고 늘 생각하며 지내겠다. 어떻게 하면 그것들을 깨버릴 수 있는지 자문하며 고민하겠다. 그러다 보면 적어도 나의 비판이나 비난이 상대의 의미 있는 것에 상처 입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믿어본다. 그만하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