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팬티 속사정

by 하나

삼 남매 집 주말이다.

평일에는 깨워도 못 일어나는 애들이 주말만 되면 새벽부터 눈을 번쩍 뜨고 돌아다니는 통에 주말은 참 하루가 길다. 늦게 잠들면 늦게까지 자지 않을까 싶어 늦게 재우는 다음 날은 이상하리만큼 하루가 더 일찍 시작된다.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세 아이 시중들기에 여념 없다 보면 오후 3,4시쯤엔 부부의 마음과 몸에 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아이 셋 육아에 슬슬 고단하다.


"아, 배터리 완전 방전. 충전해야 함."


부부는 스스로에게 휴식시간을 선포한다. 이 시간을 위해 아껴두고 아껴두었던 태블릿을 꺼내 든다. 아이들에게 시청 시간에 대해 신신당부를 해둔다. 부부는 안방 침대에 대자로 누워 휴식을 취한다. 오래간만에 살도 비비고, 입냄새도 맡아주고, 수고했다 토닥 거리기도 하고, 그러다 팬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 셋, 늘어가면서 맘 편히 속옷을 사 입기가 힘들어졌다. 나에게 팬티는 촉감이 중요한지라 꼭 매장에 가서 직접 만져보고 사야 하는 아이템이다. 그런데 몇 년째 나의 상황이 협조적이지 않다. 일단 속옷 매장에 들어서기가 어렵다. 매장에 들어간다 해도 한가롭게 나의 팬티를 고르고 있을 형편이 못된다. 관심 밖의 장소에 들어선 아이 셋은 아마도 엄마를 불러대고 아빠에게 매달리며 짜증을 내다 나와 신랑을 뚜껑 열리기 직전까지 몰고 갈 것이다. 아니면 처음 가 보는 곳이 놀이터쯤 되는 줄 알고 큰 아이를 필두로 하여 매장 사방을 돌아다니며 잡기 놀이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만 해도 뒤통수가 지근거린다. 그렇다고 여유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나오기는 더더욱 싫다. 가끔 속옷도 맘대로 못 사 입는 내가 슬프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맘먹고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몰에 갔다. 간 김에 더 큰 맘먹고 속옷 매장에 들러야겠다고 결심했다. 몰에 있는 실내 놀이터에 아이 셋을 풀어놓고, 신랑에게 미안함을 전하며 부리나케 2층 매장으로 100m 달리기를 하다시피 뛰어갔다. 그리고는 고심하여 팬티를 다섯 장이나 샀다. 팬티를 사본 지가 하도 오래전이라 사이즈를 고민했다. 고민하다 아직 괜찮을 거야 하는 마음에 S를 샀는데 작다. 걸을 때마다 자꾸. 똥꼬에 낀다. 아이 셋을 낳고 골반이 벌어져 전형적인 아줌마 몸매가 된 것을 인정하지 않은 내 잘못이다. M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제 사이즈 알았으니까 온라인으로 M사이즈 주문하면 되겠네."

"그럼 저기 옷장 안에 있는 똥꼬 끼는 S팬티들은 어떡하냐. 내가 그 생각을 안 해 본 게 아니야. 그래서 온라인 몰에 들어가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런데 결제를 못하겠는 거 있지. 몇 날 며칠을 고민만 하다 한 달 가고 두 달 훅 갔지 뭐. 그래서 지금은. 똥꼬에 낀 팬티 이렇게 손으로 빼가며 입는다."


난 리얼하게 모션까지 취해가며 이야기했다. 나는 나의 이 불편하고도 슬픈 일상을 좀 희화화하여 너에게 전하였다. 돈쓰기에 간이 콩알만 해진 나의 작은 마음을 어필하여 약간의 동정이나 연민 따위를 얻어내려 했다. 그러나 너에게 돌아온 대답은 처량한 1인이 되고자 했던 나의 못난 마음을 덮어버렸다. 너는 담담한 목소리로 전했다. 그 아무렇지 않은 듯 해 보이는 목소리 너머로 '나는 지금까지 아무 말 안 하고 있었어.'의 억울함 같은 것이 느껴져 더 짠했다.


"나는 사각팬티는 괜찮은데 그 딱 붙는. 그 뭐냐. 드로즈? 그거 입으면 똥꼬가 끼더라."

"그래? 그래서 드로즈 안 입으려고 하는 거였어? 자기 사각팬티 한 두장밖에 없고 드로즈만 잔뜩 있잖아? 그러니까 내가 팬티 새로 사자고 할 때마다 왜 됐다고 해. 당장 사각팬티 새로 사자."

"그럼 저기 옷장 안에 있는 팬티들은 어쩌냐? 그냥. 나도 똥꼬에 낀 팬티 빼가며 입을란다."

"ㅋㅋㅋㅋ큭큭"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부가 숨 넘어가게 웃어댄다. 참 사람 냄새 돋는 부부의 웃기고도 슬픈 일상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눈을 맞추고 웃는 너와 내가 좋다. 아직 함께 배꼽이 빠져라 킥킥대며 웃을 수 있는 것도 좋고, 아무렇지 않게 팬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다. 심지어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근원적인 이유가 아이 키우느라 여서도 좋다.


부부의 팬티 속사정에는 소소한 일상이 있고, 아이가 있고, 박장대소가 있다. 삼 남매 집 주말 오후가 부부의 남모를 팬티 이야기로 충전 중이다.



부부의 팬티 속사정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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