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중국 마트(중국 마트는 차로 1시간 반을 달려야 갈 수 있다.)에서 사다 놓은 도가니를 해결해야만 했다. 여기 살면서는 마트에 가서 뭐를 발견하면 사다가 쟁여놓게 된다. 자꾸만 먹을 것에 집착하게 된다. 먹고 싶을 때 만들어 먹어야 하는데 재료가 없으면? 아, 싫다 싫어. 당장 집 앞 슈퍼에 나가 살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니까.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상황은 사람을 더욱 갈망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자주 가는 마트 냉동칸에서 우족을 발견하였다. 통 우족이다. 앗싸.
냉장고 속에서 계속 눈치를 주던 도가니를 꺼내 함께 넣어 끓였다.
엄마들이 집 비울 일이 생길 때 곰탕을 한 솥 끓인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아내들이 곰국을 끓이면 남편들이 두려워 한다고 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그 말이 참 이상했었다. 우리 엄마가 끓이는 곰국은 부재를 위한 조치가 아니라 늘 가족들 몸보신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그 말이 이상한 이유를 하나 더 발견하였다. 많은 양을 한꺼번에 끓여내는 곰국은 가족을 위한 정성이 부족한 음식이라고, 그래서 할 일을 다하지 않았다고, 그 말에는 엄마들을 넌지시 책망하는 느낌이 보태졌던 것이다. 나만 그런 느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입장이 바뀌어 내가 도가니탕을 끓이고 있자니, 세상 이렇게 손이 많이 가고 정성 들어가는 음식이 없다. 가족 생각하며 냄새 잡아줄 여러 가지 재료들을 넣어 한 번 끓여낸다. 어느 정도 끓어오르면 죄다 버리고 또 물을 한 가득 받아 다시 끓인다. 다 끓이고 나면 식혀서 굳어 있는 기름을 걷어낸다. 그런 과정을 몇 번씩 반복한다. 불 조절을 해가며, 줄어드는 물의 양을 확인해가며 레인지 앞을 서성거린다. 그렇게 몇 시간을, 며칠을 끓여낸다. 곰국은 그런 음식이다.
뽀얀 국물과 찐득한 도가니를 보고 있자니 엄마가 어릴 적 끓여주던 그 모양새와 제법 비슷하다. 곰국, 도가니탕, 꼬리곰탕, 갈비탕 등 뼈를 우려 만드는 국에 자신이 없었는데, 몇 번 해보니 이것도 요령이 생기게 된다. 간장, 식초, 마늘, 연겨자, 국물과 약간의 맛술을 섞는다. 마지막으로 슬라이스 한 청양고추를 대여섯 조각 넣어준다. 도가니를 찍어먹을 소스가 완성되었다. 고기 찍어먹으라며 엄마가 내어주던 후춧가루 섞인 하얀 소금과는 다른 나만의 소스가 더해졌다. 내가 이만큼이나 자라 진짜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괜스레 뿌듯해진다.
하얀 눈이 데크 가득 쌓였고, 내 앞에 흰 눈만큼 뽀얀 도가니탕이 있다. 소금으로 적당히 간을 하고 쫑쫑 썬 쪽파를 한 주먹 넣은 다음 썰어놓은 도가니를 양껏 집어넣는다. 국물 안에 들어가 습기를 적당히 머금은 도가니를 건져내어 만들어 둔 간장소스에 찍어서 입안으로 넣으면 그래, 내가 좋아하는 식감과 맛이다. 요리 뭐 있나. 내 입에 맛나면 그만이지. 하하하. 도가니를 건져 먹은 다음 국물에 밥을 말아 김치랑 깍두기를 얹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함께 먹으려고 어제 담아둔 깍두기에서 아직 매운맛이 올라온다. 무가 달달하지 못하고 매웠나 보다. 아마도 한 이틀은 더 익혀 완전하게 시어야 맛있게 먹겠다.
날이 추워지니 뜨거운 국물이 자꾸 당기고, 뜨거운 탕을 먹을 생각을 하니 깍두기를 함께 해야만 한다는 알 수 없는 집념이 생겨난다. 그래서 하루 종일 부엌을 떠나지 못한 채 한 솥 가득 뼈를 고아내고 깍두기를 만든다. 지난 날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뜨끈한 도가니 탕 한 그릇을 하고 있다 보니 감기에 걸렸다던 엄마 생각이 났다.
'이제는 내가 뜨끈하게 끓여드릴 수 있는데.......'
또 갑작스럽게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냈다던 친구 생각도 났다.
'몸 추스르게 이 국 한 그릇 따뜻하게 먹이면 좋겠는데......'
도가니탕 한 그릇에 자꾸만 사람들이 생각나고, 마음이 울렁거린다.
<사진을 찍고 보니 간장 소스에 청양고추가 빠졌다. 꼭 청양고추를 넣어줘야 제대로인 맛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