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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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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Dec 12. 2018

하나. 바지락 칼국수

신랑과 내가 최고 애정 하는 메뉴 중 하나는 칼국수이다. 다른 도시에 데이트를 가거나, 일을 가거나, 사는 곳을 옮겼을 때도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입에 잘 맞는 칼국수 집을 발굴해내는 것이었다. 칼국수 중에서도 특히 바지락 칼국수를 좋아한다. 다니던 고등학교 앞에 살이 실한 바지락만 넣어 끓여내주던 바지락 칼국수 집이 있었다. 정말 좋아하는 식당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즐겨 찾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즐겨 찾았었는데 지금은 사라져 버렸다. 유조선 사고로 서해안에 기름이 유출되고 갯벌이 죽어가던 2007년 이후 몇 년 간은 뜸했던 것 같다. 그러나 추억의 그 식당이 사라져 버린 일은 생각할수록 짠한 일이다. 배신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오늘은 그때 그 식당에서 먹던 바지락만 잔뜩 넣어 끓인 진하고 시원한 국물의 칼국수를 먹고 싶었다.

모름지기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제일은 신선한 식재료 이건만, 여기에서는 생 바지락을 구할 수가 없다. 한국 마트에 가면 바지락을 삶아서 얼려놓은 팩을 판다. 그나마 그것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며 위안해본다. 아뿔싸, 사다 놓은 바지락이 한 팩밖에 없다. 아쉬운 대로 어제 사다 놓은 냉동 홍합을 꺼낸다. 평소 사던 홍합과는 달라 보여서 조금 비싸더라도 샀는데, 역시 다르다. 푸르스름한 빛깔과 단단한 껍질이 나는 다르다고 말하는 것 같다. 온전히 바지락만 넣어 끓인 국물을 맛보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다. 홍합과 바지락을 여러 번 씻어내어 큰 냄비에 넣고 물을 가득 채워 끓인다. 다시마도 몇 장 넣어주고, 냉동칸에 있던 오만둥이도 한 주먹 넣어준다. 칼국수의 생명은 국물이니까. 어울릴 만한 것을 다 넣고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워본다.

올라오는 거품을 몇 번씩 걷어내며 끓여낸 국물에 마늘을 넣어 풍미를 더한다.


칼국수를 끓일 때는 항상 육수를 가장 큰 냄비로 한 솥 끓인다. 가족이 다섯이나 되니 식구가 많기도 하지만, 끓여놓으면 칼국수가 싫은 사람은 그냥 국으로 먹어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으면 소분해서 얼려두었다가 된장찌개에도 넣고, 순두부 찌개에도 넣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온 가족이 국물을 사랑하는 우리 집에서는 생각보다 육수가 많이 남지 않는다.


신랑과 점심으로 같이 먹으려 했는데, 오늘은 밖에서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뭐, 나 혼자 근사하게 먹어보기로 한다. 냄비 하나를 더 꺼내 칼국수 면을 따로 삶는다. 깔끔한 맛을 살리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귀찮더라도 약간의 움직임을 더하면 훨씬 좋아지는 법이다. 면을 삶았던 냄비를 깨끗이 닦은 후 끓여놓은 육수를 적당량 옮겨 담는다. 그리고는 애호박을 썰어 넣고, 삶아 놓은 면도 넣는다. 파르르 끓어오르면 청양고추 같은 세라노(Serrano) 고추를 넣고, 파를 넣어준다. 널찍한 면기에 담아내고, 얼마 전 담은 김장 겉절이를 더한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식탁이다.



 참 따뜻하고 시원하다. 예전의 그 맛은 아니지만 나름의 맛으로 위로해본다. 이리 따뜻하고, 정성을 들여 더욱 따뜻한 식탁을 차려내는 것은 혼자 밥을 먹는 나에 대한 응원이다. 그래야 가족들이 돌아왔을 때 더욱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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