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자기 전에 옷 갈아입어야겠어. 숯불 냄새가 잔뜩 배었어. 아, 이 냄새, 좋! 아! 으~~~~ 좋아."
주말 오후 그릴에 고기를 구워 먹고는 몸을 동그랗게 말아 너의 셔츠에 코를 파묻는다. 너는 애처럼 연이어 좋다고 말하는 나를 바라보며 얘가 또 사람 당황스럽게 만든다는, 그러나 싫지 않다는 속내를 담은 엷은 미소를 흘린다.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는 이 찐득하고 강한 재 냄새를 따라오는 추억들이 있다.
"으, 추워. 어디 들어가 있을 때 없을까?"
"저기, 불 피워 놓은데 있다. 저기에 가서 몸 좀 녹이자."
"난 이거, 나무 타는 냄새가 좋더라."
너와 함께 처음 떠났던 해돋이 여행. 15년 전 왜목 마을로 서서히 기억이 되감긴다.
이제 열아홉, 스물을 맞이한 너와 나는 참으로 호기롭게 해돋이를 하겠노라 떠났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바깥세상에 깜깜이로 산 스무 살 나. 그 날 처음으로 낯선 곳을 향하는 시외버스를 타 보았다. 처음 하는 일에 유난히 겁이 많은 나였건만 그 날만큼은 겁도 없이 여러 번 갈아타야 하는 버스에 홀로 몸을 실었었다. 방학이라 집에 가 있는 너를 서산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혼자 버스를 타고 서산까지 가야 하는 것이 겁나고 불편하기보다는 꽤나 더디게 가던 버스의 느린 속도에 안절부절이던 앳된 내가 있었다. 서산에서 만난 우리는 함께 당진을 향하는 또 다른 시외버스에 올라탔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도착한 왜목 마을이었다. 추위를 몹시 타는 나에게는 해돋이를 하기까지 너무도 긴 밤이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그 흔한 모텔방에도 들어가지 못할 만큼 어렸었다. 지금 생각해도 간질간질할 만큼 그때의 우리는 참 풋풋하고도 순수했었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작은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가 몸을 붙이고 숨죽이던 시간. 서로의 숨소리와 심장의 두근거림까지 전해지던 그 적막 가운데 우리가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기억되는 그 공간의 일부가 머릿속에 떠다니고, 그 시간의 떨림과 긴장감이 또렷이 가슴에 새겨져 있을 뿐이다.
연애를 하면 남들 안 다니는 으슥한 곳을 그리도 잘 찾게 된다더니, 우리의 발길은 어느새 낮은 뒷산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한 밤중이라 찾는 사람 없던 그곳이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기에 명당인 석문산 정상이라는 것은 10년도 더 지난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그 야트막한 동산 꼭대기 벤치에 앉으려 하니 낡은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해진 티셔츠를 꺼내 수줍게 의자 위에 깔아주던 네가 생각난다.
"웬 티셔츠를 가져왔어?"
"날이 너무 추우니까. 너는 추위를 많이 타잖아. 옷을 얇게 입었을지도 모르고...... 혹시나 추워하면 너 입으라고 하려고 가져왔어."
낡은 티셔츠 한 장에 너무 감동받아 이 남자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스무 살의 설렘이 떠밀려온다. 그렇게 전하던 마음과 받은 마음이 맞닿아 서로의 입술이 처음 만나던 그 밤. 너와 나의 마음이 뜨끈해지는, 서로에게 지쳐있을 때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우리 둘만의 보물단지 같은 추억이다.
어찌어찌 추위와 졸음을 이겨내며 바닷가 수많은 인파 속에서 발갛고 말간, 뜨거운 것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해가 뜨는 모습을 보는 것이 처음이라고 속삭였던 것 같다. 너랑 같이해서 참 좋다고 소곤거렸던 것도 같다. 여전히 등 너머에서부터 꺼져가는 장작들이 뿜어내는 냄새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내 옷에도 너의 옷에도 배어버린 그 냄새 때문에 코를 킁킁거리며 걱정했었던 나도 떠오른다.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외박의 목적지를 추궁당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근심의 기억도 그 향에 남아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뒤섞여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간신히 난 자리에 나를 앉히고는 그 앞에 서서 버스 손잡이에 몸을 맡긴 채 네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도착하는 내내 눈을 뜨지 못하던 네가 거기에 있다. 그리고 그런 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해하던 내가 있다.
같은 감정으로 공유하게 되는 추억이 일상 사이로 스며들어 설렘을 만든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때, 가끔 장작 냄새를 만나게 될 때, 우리에게는 함께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등 돌리고 서 있는 순간이 오더라도 다시금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시간을 금세 마주하게 된다. 아마도 지속되는 그 설렘이 우리 둘의 인생에 또 다른 열정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