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탕, 매운탕이 왔어요. 날마다 오는 매운탕이 아니에요.
주로 광어나 우럭 등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들로 매운탕을 끓여먹었습니다. 민물고기 매운탕은 왠지 흙냄새가 나서 별로였거든요. 잘못 끓여진 매운탕이어서 그랬던 걸까요?
그런데, 여기 랄라에서는 어쩔 수 없이 민물고기 매운탕을 끓여먹습니다. 싱싱한 생물의 바다 것들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대신 여기는 강은 많거든요. 그래서 낚시를 많이 해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제대로 된 매운탕을 끓여먹으려면 일단, 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건져 올려야 합니다. 그것으로부터 매운탕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Maramec spring park이란 곳이 있어요.
미주리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팟 중 하나라고 공원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송어(Trout)를 치어부터 양식했다 날마다 일정량을 강으로 방류하기 때문에 송어 낚시의 최고 스팟이라 할 수 있지요. 그래서인지 항상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낚시 고수들은 금방 낚을 수 있습니다. 시즌마다 오픈 시간이 다르긴 한데, 송어를 방류하는 시간은 대략 6:30에서 7:30 사이예요.
송어 낚시 명당에 사람들이 쫘악 자리를 잡고 방류하기 전부터 만발의 준비를 하고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방류를 알리는 알람이 삐익~ 울리자마자 낚싯대를 던지면, 고수들은 10분, 덜 고수들은 30분 안에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한 사람당 4마리씩으로 잡을 수 있는 마리수가 엄격히 제한되어 있거든요. 고수가 많이 잡았다고 해서 옆사람에게 넘기는 일이 발견되기라도 하면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뭐, 그래도 초보들은 한 두 마리 잡는 것도 어렵습니다.
어쨌든, 매운탕 끓여먹고 싶은 날, 새벽부터 신랑을 머라멕 스프링 파크로 보냅니다. 신랑은 새벽에 나가는 일이어도 혼자 시간 보내며, 취미 생활하는 거라 생각하니 신나 합니다. 그래도 생색을 내며, 처자식 먹여 살리기 힘들다는 말도 꼭 보탭니다.
"무조건, 꼭, 잡아야 해."
"두 마리만 잡아도 매운탕을 끓일 수 있어. "
"잡으면 손질할 때 머리는 꼭 챙기고."
그럼 저는 잔소리를 보태 압박수비를 합니다. 저번에는 잡아서 손질해온 물고기를 보니, 머리를 죄다 잘라서 버리고 왔습니다. 매운탕의 생명은 생선 대가리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합니다.
아, 여기는 물고기를 잡아도 알아서 각자 손질해야 합니다. 한국처럼 씻어주고, 비늘 벗겨내주고, 잘라주는 척척 시스템이 없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송어뿐 아니라 다른 물고기들도 대부분은 살만 떠서 스테이크를 해 먹기 때문에 물고기 손질하는 곳에 있다 보면 물고기 머리는 모두 버려집니다. 만약에, 만약에, 한 마리도 못 잡으면 가서 그 생선 대가리라도 얻어오라고, 압박을 해 봅니다. 매운탕은 국물 맛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생선 머리가 있으면 일단 국물은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결연한 의지로 신랑이 새벽에 출발하면, 매운탕거리를 준비해서 아이들과 후발대로 공원을 향해 출발합니다. 폰도 터지지 않는 곳이라 출발 전부터 시간, 장소 약속을 하고는 만나자마자 묻습니다.
"잡았어?"
"몇 마리 잡았어?"
"매운탕 끓여 먹을 수 있어?"
매번 용케도 매운탕 끓여먹을 수 있는 마리는 잡습니다. 신나서 공원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준비해 온 부르스타, 냄비, 물을 꺼내 준비를 시작합니다. 밖에서 먹으면 온갖 살림살이를 바리바리 싸들고 다녀야 해서 좀 불편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또 이런 게 낭만 아니겠냐며, 막 이러면서 먹기 위해 온갖 정성과 에너지를 쏟아가며 준비합니다. 여기 살면서, 정말 먹는 거에 너무 몰입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시원한 바람맞으며 베이스 육수를 냅니다. 멸치, 다시마, 자른 무 넣고 국물을 우려냅니다. 충분히 육수가 우러나면 멸치랑 다시마는 건져내고 만들어 온 양념장을 풉니다. 전날 저녁에 매운탕 먹을 생각하며 신이 나서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만든 양념장입니다. 양념장에는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액젓, 마늘, 생강, 맛술 등이 들어갑니다. 그다음에 메인 재료인 송어를 넣습니다. 충분히 끓여지면 간을 보고 양념장을 더합니다. 이제 곧 야채들도 들어가니, 좀 짜다 싶게 간을 맞춥니다. 매운탕에는 푸릇푸릇한 것들이 들어가야 보기에도 좋고 맛의 레벨도 올라가는 법이지요. 마침 쑥갓과 청경채, 깻잎이 있었습니다.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집니다. 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야채들이 여기에서는 구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차 타고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을 나가야 구할 수 있으니까요. 한껏 흥분해서 깨끗이 닦고 손질해 왔습니다. 폭발할 것 같은 기대감을 덤으로 얹어 야채들을 탕 안에 넣어줍니다. 그리고는 한소끔 더 끓여냅니다. 마지막으로 물고기 수프의 비밀병기, 소엽 가루를 넣고, 파를 넣어주고 파르르 한번 더 끓여냅니다.
드디어. 신랑이 집 나간 지 6시간 반 만에 매운탕을 영접합니다.
일단 국물부터 한 술 뜹니다. 역시, 맛있습니다. 저는 제가 만든 음식도 왜 이리 맛있나 모르겠습니다. 송어 고기도 한 점 떼어 국물에 적셔 먹습니다. 역시, 냄새 하나 없이 부드럽고 맛있습니다. 민물 매운탕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매운탕에 김치 하나 있으면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우게 됩니다. 밖에서 여럿이 먹어서 더 맛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 셋도 매운탕 국물에 홀려 밥 한 그릇씩을 말아 뚝딱 먹어 치웁니다. 그러고는 밥을 더 달라고 참새떼처럼 몰려듭니다.
옆 테이블의 미국인들은 달랑 피크닉 바구니 하나 올려놓고 칩이랑 주스로 점심 때우는데 말입니다. 우리 테이블만 피난 온 사람들처럼 짐이 한가득입니다. 준비의 번거로움은 잊은 지 오래, 먹으면서 저는 말합니다.
"쟤네들은 얼마나 딱한지... 이 맛있는 음식을 평생 한 번도 못 먹어보다니. 생선으로 이렇게 맛있는 탕을 끓여먹을 수 있는데, 그걸 모르고... 맨날 소금, 후추 간이나 해서 구워 먹고 말다니... 너네가 매운탕 맛을 알아?"
우리를 이상하게 혹은 호기심 가득하게 바라보든 말든 매운탕에 코를 박습니다. 정말, 매운탕 맛을 모르는 그들이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참, 자알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