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와 나누는 시공간의 밀도

by 하나

그리 이른 아침도 아니건만 물안개가 호수면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구름 속을 들여다보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처음보는 눈앞의 풍경에 넋을 놓고 있다가 발목을 타고 올라오는 아침 이슬의 꿉꿉함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발짝을 뗄 때마다 신발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습기찬 잔디들이 낯설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서서 내려다보니 심난한 눈동자가 방황한다. 그 틈을 타고 커피향이 스며든다. 힘을 얻은 다리가 또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커피가 있었고 사람이 있었고 멍멍이들도 있었고 큰 나무도 한 그루 있었다. 그 사이 사이로 아이들의 소리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했다. 그 날 우리는 그런 시간과 공간에 있었다.


우리는 아이에 대해 육아에 대해 또 머리숱에 대해 그냥저냥 시시콜콜한 일상들을 나누고 있었다. 신은 왜 필요한 자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않는가라는 이야기도 했었던 것 같고 중국의 수많은 민족들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던 것 같았다. 아이가 자라면서 부부가 서로에게 소홀해지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도 오고갔다. 그 시간과 공간 안에서 우리가 나누던 것들은 그런 것들이었다.


어느 순간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그녀의 두 눈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태양과 마주했다. 발갛게 타오는르는 것을 향하던 그녀가 다시 감정의 끈을 단단히 묶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촉촉해진 눈가를 닦아내고 있었다. 그 시간 내내 나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물안개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감히 그녀 안으로 차오르던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가늠해볼 수도 없었다. 그것이 아픔이었는지, 기쁨이었는지 또는 후회였는지, 서러움이었는지 짐작해볼 수도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조용히 그녀의 옆에 앉은 채로 그녀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공유하지 않는 척 저 너머를 내다보는 일 뿐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그저 그 때, 그 곳에 존재하였을 뿐인데 온 몸이 아려왔고 가슴 안에서 뭔가가 꿈틀 대었다. 그녀의 감정이 흘려보내던 것을 여전히 알아차릴 수 없는데 나의 몸과 마음이 반응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길이 없다. 그녀가 없는 나의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그 날의 그녀를 생각하면 온 몸이 뜨끈해지고 눈가가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 날 그녀가 올려다보던 태양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난 그냥 내가 그녀에게 위로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내가 위로받은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아무말 없이 있는데도 상대와 나누는 시간과 공간의 밀도가 높아진다. 그 고밀도의 시공간을 나만 느끼는 것인지 상대도 느끼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왠지 모를 친밀감과 믿음 같은 것들이 생겨난다. 끈끈한 무엇인가가 나를 상대에게로 잡아끈다. 그러고 나면 전해진 사적이고도 몽글거리는 감정들이 상대를 내게로 밀어준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지각의 존재가 된다.

그런 경험은 아무 상대에게서, 아무때나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인생에 있어서 이런 고밀도 시공 세계를 몇 번이나 만날 수 있게 될까. 내 잔잔하고 심심한 생이 이렇게 또 한번 유해지고 깊어져간다. 그래서 참, 기대되고 살아볼만한 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