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마름모 Jan 03. 2022

나의 모양

얼마 전, 누군가에게 나의 모양을 부정당했다.


그 사람이 먼저 나에게 좋다고 했다. 같이 있고 싶다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고백했다.

별 생각없이 알았다고 했고 만나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그는 나의 모양을 부정했다.


그는 내가 지나온 길들로부터 만들어진 내 모습에 의문을 품었다.

그런 모습은 매력이 없다며- 내가 매력을 느꼈던 어제의 너는 오늘의 니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엔 우울했다. 어느정도 호감이 있었던 사람에게 매력없다는 말을 직설적으로 들으니 당황스러웠다.

함께 와인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눈물을 참느라 다른 것들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처음에는 내 모습이 부정당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뭔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느꼈다.

나보다 그는 더 어른스러운 사람이고, 나는 아직 어려서 저만큼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해 부족한가보다-

그에게 내가 얼마나 어린애처럼 느껴졌을까 하는 마음에 두 배로 속상해서 울적했다.

이대로 그를 보내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 같이 시간을 더 보내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집에 혼자 버스를 타고 돌아와 생각을 곰곰히 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전화를 했다.

이런 말을 들었는데,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이야기를 꺼내어 물어봤고, 친구들은 버럭 화를 내며 내가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되짚어보니, 지금의 내 모습은 여태껏 내가 살아온 날들의 흔적이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가치관 덩어리인데. 본인이 그 모습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니, 바뀌어보라고 권유하는 그가 이상해보였다. 마구 나를 질책했던 순간들이 떠올랐고 나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몇 번의 연습끝에 그에게 전화를 했다. 당신의 말에 나는 상처를 받았다며 겨우 얘기를 꺼냈다.

그는 [알고 있다, 당연히 상처받을만 하다, 하지만 난 솔직하게 말을 한거다-] 라고 답했다.

상처받을 걸 알면서 얘기한거야?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어디서부터 불안하고, 어떤 말에서 두려웠는지 계속 파악하려 애썼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나.

소중하게 갈고 닦아온 귀한 나의 내면.

어느 누구에게도 부정당할 수 없는 나의 모양을 마주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누군가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나로써 존재할 가치가 있고 반짝거리니까 충분해.


더불어 그가 진짜 사랑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좋아하면, 진짜 사랑하면, 모양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을텐데.

이런 생각 끝에, 그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보려 노력해볼까- 고민했다.

누군가가 온전히 마음을 준다는 것을 느끼면 조금은 온전히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냥 그만두기로 했다.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던 짧은 연애도 곧 막을 내릴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Force yourself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