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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름모 Oct 24. 2021

Force yourself

이제 그만 괜찮다고 하자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출판하기 위함도 아니고, 그냥 마음에 떠도는 것들을 잡아서 기록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퇴고를 여러 번 해본 적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부담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항상 브런치에 쓰는 글은 생각 없이 술술 나오곤 했는데, 이상하게 이 주제는 나에게 하는 따끔한 충고 같아서인지 한 단어 한 단어가 잘 안 써진다. 허나 매번 그랬던 것처럼 Done is better than perfect. 그냥 쓸 거다!



열아홉에 처음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엄격해졌던 것 같다. 힘든 직장도, 여러 꼭지로 다가오는 열등감도, 나의 역량 부족도, 사람에게 미움받는 일들도 어렸던 나에게는 너무 버거웠다. 하지만 도망칠 수 없고 버텨내야만 한다는 강박에 괴로웠다. 부모 자아(Parents ego)는 모든 내 생각과 행동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고, 항상 스스로를 나무랐다. 모든 행복은 나의 바깥에서 생겨났다. 외부에 의존하다 보니 급작스럽게 행동의 원천인 외부의 무언가가 끊겼을 때 불안하고 우울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암흑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선택했던 방법은 "괜찮아" 였던 것 같다. 일기장에도 적혀있다. 스스로 했던 질문의 답을 보면 모든 문장의 끝이 "괜찮아"로 끝났다. 그때 당시에는 나에게 조금 더 관대해도 된다는 의미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문제는 이 괜찮아버릇이 이제는 치트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린 지금이다.


올해 3월까지 2년 조금 넘게 다녔던 직장은 나에게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내가 어떤 Weaknesses와 strengths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성격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개선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적극적으로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내 주변에는 이러한 갈증을 해결해 줄 삶의 선배들이 존재했기에 업무적으로도 개인 탐색 방향으로도 크게 성장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처음 이 조직에 들어갔을 때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내가 너무 싫었다. 다들 자기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찾아내고 해결해 나가는데, 나의 존재는 무언가 도움되지 않는 혹 같았다. 인정받고 싶었고 구성원의 일원으로써 뭐든 해내고 싶었다. "괜찮아"라는 말은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나는 괜찮지 않았고, 괜찮은 정도로 남아있고 싶지도 않았다. 한동안 괜찮지 않은 사람으로 업무에 몰두했고, 점차 자리를 잡게 되었다. 얼마 되지 않는 조직 구성원들과 생활하다 보니 나의 역할은 점차 커졌고, 어려워졌지만 익숙해졌다.


문제는 내가 점차 "괜찮아"라는 말을 다시 쓰게 된 것이다. 내가 몸 담았던 직장은 입퇴사가 굉장히 잦았다.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며 점차 사번이 한 자릿수가 되어갈 때쯤부터, 나는 괜찮다고 느끼는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 조직의 특성을 잘 알았기에, 적당하게 일하기 시작한 거다. 물론 나쁜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나의 성장을 발로 차 버렸던 건 맞다. 스트레스, 피드백, 조언 같은 것들은 귀찮았다. 누구나 만족할만한 무난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무난한 실적을 보며 만족했다. 데드라인은 내가 조절하면 그만이었다. (써놓고 보니 참 스타트업 구성원으로서 별로였다.) 그쯤 갑작스럽게 기술영업과 같은 일을 맡게 되었고, 직무가 맞지 않아졌다는 이유로 퇴사했다. 괜찮은 상태가 좋았는데, 괜찮지 않아 지니까 그냥 도망쳤다. 다른 핑계들도 많겠지만 이게 팩트다.


최근에는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요즘 내 상태는 전혀 좋지가 않다. "괜찮아" 말하며 적당히 일하는 습관이 생겨버린 게 복병이다. 그냥 열심히 달리지 않는 나에게 화가 난다. 열심히 안 하니까 진도가 안 나가는 게 당연한데, 자꾸 거기다 대고 스스로 괜찮다고 하는 게 너무 싫다. 아무것도 못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말한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는 게 무조건 좋은 건 줄 알았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이해하지 않으면, 내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누가 괜찮다고 말해주겠어? 라며 자기 위안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다. 일으로 표현을 했지만 사실 모든 분야에서 다 그렇다. 나는 업무적인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경험도 지식도 부족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학습하고 틀려도 도전하며 성장해야 한다. 지금 와서야 이 사실을 다시금 새기게 되었다.


난 그만 괜찮아야 한다. 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면,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움직여야 한다. 생각만 하고 괜찮다고 말해버리면 그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최근에 나는 사라진 내 열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는데,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답을 찾은 것 같아 기쁘다. 완벽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서 그만 괜찮기로 했다.


하지만 실수할 때는 가끔 괜찮았으면 좋겠다. 감정적인 괜찮음 말고, 객관적으로 괜찮았으면 좋겠다. 넘어지는 것도 실패하는 것도 객관적으로 괜찮은 거니까. 다음 시도의 좋은 도약이 될 거야.


여전히 나는 내가 너무 좋다. 나의 결점을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동시에 성장하고 싶다.

쓴소리 들을 준비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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