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사별

한 번도 힘든데... 장난해?

by 이동엽

“여보 나 아무래도 득도한 거 같아”


뜬금없는 나의 말에 잠자리를 준비하던 아내가 빵 터졌다.


"아니 무슨 목사가 득도 타령이야"


허긴.. 나도 우습긴 하다 목사가 득도라니...


그런데 정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의 의미, 삶과 죽음, 이런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한 것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삶에 대해 초연해지면 득도한 거 아닌가?


내가 늦은 나이에 목사가 된 것은 순전히 죽음 때문이었다

10년의 간격을 두고 마주한 두 번의 죽음 덕분이었다


첫 번째 마주한 죽음은 엄마의 죽음이었다. 군대에서 야외 훈련 중에 평소 약간 말을 더듬던 옆 소대 소대장이 심각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너.. 너 너의 어어어 머니 도.. 돌아가셨다. 빠.. 빨리 외 외출 준비해라” 고 전해 주었던 엄마의 죽음이었다


두 번째로 마주한 죽음은 아내와의 사별이었다. 이번엔 바로 내 눈앞에서였다. 아내는 몇 번 쿨럭이더니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았다. 내가 삶 가운데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의 죽음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는 그야말로 나의 모든 것이었다. 아버지와 사이가 별로 안 좋았던 나에게 엄마는 나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였고 나 또한 울 엄마에겐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이었다


강원도 최전방 부대에서 군 생활하면서 가장 바랬던 것은 오로지 제대하여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이 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 정기휴가 때 뵙고 온 엄마였다. 조금만 더 있으면 제대하니까 그때 또 다시 보자고 손 흔들어 주시던 엄마였다. 그런데 그 엄마가 죽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사별한 아내는 직장 동료였다. 미인에다가 똑똑하기까지 했던 회사의 광고팀 대리였다. 아내는 둘째 아이 출산 직후 그동안 임신으로 인해 미루어 왔던 머리 뒤쪽 종양의 조직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피부암이었다. 임신 10개월 동안 행여 뱃속의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조직검사를 미루었는데 그동안 암세포는 이미 임파선으로 전이가 되어 손을 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 아내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결혼 전에는 엄마가 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엄마가 죽은 후에는 아내가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심리학자들이 말하길 결혼 전의 사람에겐 엄마의 죽음이 가장 큰 트라우마로 남고 결혼 후에는 배우자의 죽음이 가장 큰 트라우마로 남는다고 한다. 결국 나는 인생의 가장 큰 트라우마를 두 번 연속 제대로 경험한 것이다


이후 나는 삶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답을 찾을 길은 막연했다. 그나마 삶과 죽음에 대해 적극적인 탐구가 이루어지는 곳은 종교였다

그 당시 나의 종교가 불교였다면 나는 아마 머리 깎고 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사별한 아내 역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는데 딸을 잃은 장모님은 나에게 조심스럽게 신학교에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 오셨다. 얼마 동안의 고민 후 나는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목사가 되었다.

이전 08화도시락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