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사건

그놈의 도시락 때문이었다

by 이동엽

사람은 늘 사소한 일에 삐치기 마련이다. 생사가 걸려있거나 인생의 방향을 틀만한 중대한 일에는 좀처럼 삐질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재혼 가정이 파국으로 치닫는 엄청난 사건도 어찌보면 너무나 사소한 감정의 어긋남에서 비롯되곤 한다.


그놈의 도시락 때문이었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막내는 고등학교 첫 해를 집에서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등교를 하게 되었다. 막내의 등교 첫날이라 그런지 아내는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에도 불구하고 도시락을 준비하러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아래층 주방에 내려갔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내가 막내 도시락을 대신 싸주고 싶지만 내가 준비한 도시락은 아이도, 아내도 영 맘에 들어하지 않으니... 난 그저... 고마울 뿐이다.


이른 아침에 아내가 김밥을 싸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김밥에 대한 옛 추억이 떠올랐다. 나 어렸을 때 김밥은 소풍 때가 아니면 감히 접해볼 수 없었던 특식 중의 특식이었다. 막내 덕분에 오랜만에 김밥 한 꼬투리라도 얻어 먹을 생각을 하니 흐믓했다.


2년 전 만해도 아이들 도시락 담당은 나였다. 이제는 대학생이 된 딸 아이 도시락과 함께 매일 아침 2개의 도시락을 준비했었다. 도시락이란 단지 ‘학교에서 먹는 밥’일 뿐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아이들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저 집에서 먹는 밥과 반찬을 도시락 통에 옮겨 담으면 그만이었다. 가끔 볶음밥 등 ‘특식’을 해줄 때도 있지만 대개는 보온 도시락 밥통 속에 밥을 넣고 그 위에 반찬 거리를 얹는 덮밥 형태의 도시락을 싸주는 것이 전부였다.


아내는 딸 아이가 대학 기숙사에 들어간 지금, 홀로 남은 막내의 도시락은 이제부터 자기가 준비하겠다고 했다. 나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아내는 손이 커서 그런지 김밥도 크게 만든다. 웬만한 어른도 아내가 싼 김밥 한줄이면 배가 많이 부를 것이다. 예전에도 아내가 가끔 쉬는 날이면 아이들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줄 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손이 큰 아내는 마음도 커서 그 큰 김밥을 두 줄씩 싸주곤 했었다. 물론 아이들은 김밥을 남겨왔고 남겨온 김밥은 냉장고에서 하루 이틀 숙성(?)된 후 계란을 입혀 전으로 변신되어 재활을 노리거나 이 마저 찾는 사람 없으면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지곤 했다. 나는 몇번이고 아내에게 아이들이 김밥을 다 못먹으니 한 줄씩만 싸주라고 말했지만 아내는 귓등으로도 안들었다.


도시락 준비를 마친 아내는 출근 준비때문에 바빠서 내 몫이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부엌 뒷정리를 부탁했다. 잠시 나를 설레이게 했던 김밥에 대한 추억이 사라졌다.


오후에 막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역시나 남겨온 김밥 한줄을 냉장고에 넣는 것을 보았다. 한 줄만 싸주라고 그렇게 이야기 했건만 꾸역꾸역 두 줄 싸준 것이다. 슬쩍 화가 났다. 먹지도 못하고 남겨올 것 뻔히 알면서도 꾸역꾸역 싸주더니 정작 먹고싶은 사람은 못먹는 상황에 화가 났다. 그 자리에서 남겨온 김밥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카톡을 했다.


‘여보 매번 똑같은 말해서 미안한데.. 언제나 이렇게 남기는데 이럴 바엔 차라리 집에 있는 사람 먹을 수있게 조금이라도 남겨 놓으면 안되요? 오늘 아침도 고기 볶고 김밥을 열심히 만드는 것 같더니만 와보니 설거지 거리만 있고 남아 있는 음식은 하나도 없네요. 좀 서운하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아내가 미안해 할것을 기대하며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곧바로 답장이 왔다.


'아니 그냥 좀 이해하고 넘어가면 안돼요? 내가 막내 도시락 싸주는 게 그렇게 잘못 됐어요? 도시락 싸주는 것도 못하게 해? 정말 어이가 없네요’


헐.. 사과를 기대했는데 토마토가 온 것이다. 참고로 난 토마토를 무척 싫어한다.


그날 저녁부터 아내와 냉전에 들어갔다. 냉전이라 함은 한 공간안에 있으면서도 마치 없는 사람인 양 서로를 소가 닭 보듯 하는 것을 말한다. 근데 닭 보듯 하니 아내가 진짜 닭처럼 보여졌다. 싸움닭 말이다


속에 맺힌 말이 있으면 풀어내야 한다. 속으로만 부글거리며 소통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한번 아내에게 서운한 감정에 서로 말을 하지 않고 하루를 지내자 미운 마음이 마치 온실 속 잡초처럼 마음 속에서 무성하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 해 딸 아이 도시락에는 별 신경도 안쓰더니 이제 막내 도시락에는 특별하게 신경을 쓰네…’

‘그러고 보니 첫째나 둘째는 뭘 먹든 별로 신경 안쓰는 것 같더니만 유달리 막내만 챙기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냉장고에 과일을 사다 놓고 저녁 시간에 접시에 담아 막내 방으로만 올려보내던데…’


자꾸만 이런 생각이 떠오르며 서운한 감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대부분 재혼 가정의 문제가 자녀에 관련된 문제라는 주변 어른들의 충고가 절실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문제야 어떻게든 참고 넘어갈 수 있지만 서로의 자녀에게까지 문제가 확대되면 쉽게 넘어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아내가 슬며시 꼬리를 내리고 사과를 해오면 못이기는 척하고 받아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사과할 기미가 안 보였다. 보통 우리 부부의 냉전은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아내가 우리 사이의 냉전을 못견뎌 하기 때문에 늘 먼저 대화를 걸어왔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풀어져 냉전이 끝나곤 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하루를 넘겼고 더 길어 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서로를 투명 인간 보듯하며 한 집에 같이 있으려니 여간 불편하게 아니었다. 점차로 집에 있기가 싫어졌다. 급기야는 혼자 살 때가 그립기까지 했다.




최악의 냉전에 들어간지 이틀 후,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부부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아침에 어쩌다 서로 피하지 못하고 얼굴이 마주쳤고 서로의 감정을 이야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모든 부부 싸움은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한 결과이다. 아내는 아내 대로 바쁜 와중에 도시락을 싸준 자기에게 삐진 나에게 기가 막혔고 나는 나대로 서운한 나의 감정에 충실했던 것이다. 사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만 있다면 싸울 일은 별로 없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아내에게 느꼈던 서운한 감정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사별 경험' 때문이었다.


사별한 아내는 암 환자였다. 아내는 둘째 딸아이를 출산 후 정확히 1년을 투병 생활했다. 당시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 옆에서 24시간 간병을 했는데 간병 말기에는 나 또한 많이 지쳐 있었다. 밤새 신음하며 뒤척이던 아내가 잠이 들면 그제야 그 옆에서 쪽잠을 자며 환자 수발을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잠든 아내 옆에서 신문을 뒤적이는 것이 유일한 낙이였는데 그날 따라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눈에 띄었다. 어느 평범한 경찰관이 사상 최대 금액의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기사였다. 당첨 금액이 무려 400억원이 넘는 액수였다.


1년 가까이 간병인 생활을 하던 나는 잠시 상상의 나래를 폈다. 400억이면 1년에 10억씩 써도 40년 동안 쓸 수 있는 돈이네.. 1년에 10억이면 한달에 1억 가까이 쓸 수 있다는 소린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니 400억이란 돈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문득 속으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만약에 누군가 나에게 400억 이라는 돈과 아내의 완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내의 완치를 선택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옆에서 해골처럼 누워있는 아내 vs 평생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400억 이라는 돈. 당연히 아내의 완치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기사가 실린 신문을 구겨 버리고 잠든 아내를 미안스레 쳐다 보았다.


그리고 나서 얼마 안있어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떠난 후 문득 400억과 아내를 저울질 하던 생각이 났다. 다시 스스로 에게 물어 보았다. 이번엔 판돈을 1000억으로 키워 보았다. 1000억원과 아내가 다시 살아나는 것,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지난 번에 잠시 고민을 했다면 이번에는 단 0.001초의 주저함도 없었다. 아내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1000억원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000억원으로도 보상이 안되는 것이 아내의 존재였다. 이토록 명확한 사실을 아내가 죽고 난 다음에야 깨달은 것이었다. 그 후로도 아내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오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내 곁에는 새로운 아내가 있다. 재혼한 아내다. 아무리 섭섭한 일이 있어도,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아내는 나에게 1000억원 보다도, 아니 그 무엇보다도 가치있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런데 그런 아내에게 겨우 김밥 도시락으로 삐지다니..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땅의 모든 부부는 1000억원 보다 많은 가치를 옆에 두고 살고 있다. 부디 부부 싸움을 하더라도 이 사실 하나만큼은 꼭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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