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김장하는 남편

매년 속 터지는 아내

by 이동엽

재혼할 당시 나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늦깎이 교회 전도사였다. 나는 아내에게 결혼하면 밥은 안 굶길 자신이 있다고 했다. 아내는 그런 나를 믿음직스러워했고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년 배추와 무를 사다가 정성스레 김장을 했다. 그래서 밥은 안 굶겼지만 아내의 속은 터졌다.


우리 부부가 함께 마트에 가면 늘 의견이 충돌한다. 아내는 육식을 좋아하고 난 초식남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주로 육류 코너를 기웃거리고 나는 야채 코너와 생선 코너에 머무른다. 더구나 아내는 손이 커서 뭐든지 많이 산다. 계란도 한 번에 3판은 기본이고 우유도 매번 벌크 포장을 사서 유통 기한 내에 못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장을 보다 예산을 초과하면 그건 순전히 아내 때문이다.


가끔 아내가 가계부가 적자라고 투덜거릴 때면 나는 늘 가계부를 나한테 넘기라고 큰소리친다. 가계부를 넘겨받으면 절대로 적자가 나지 않게 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아내는 고집스레 움켜쥐고 있다. 아마도 나에게 가계부를 넘겨주면 정말 매일같이 밥하고 김치만 먹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아내와 나는 경제관념이 다르다. 둘 다 허투루 돈을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어떻게' 허투루 쓰지 않느냐는 점에서는 서로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면 아내의 경우

- 결혼한 이후 여태껏 자신을 위해 제대로 된 외출복 한 벌을 산 적이 없다

- 단 돈 몇 푼을 아끼려고 마켓을 두세 군데 옮겨 다니며 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 그러나 아이들이나, 가족을 위해서는 아끼지 않고 좋은 것을 사주려고 한다.


반면에 나의 경제 관념은 돈을 쓸 데와 안쓸 데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다. 문제는 구분하는 기준이 아내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아내가 생각하는 '돈을 쓸 데'란 아이들과 가족과 관련된 것이다. 아내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비록 돈을 모으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써야 된다고 생각한다. 자주 외식은 못하더라도 외식할 땐 언제나 음식을 넉넉히 시키고 비록 자신의 옷을 안 사더라도 아이들 컴퓨터와 휴대폰은 매번 최신형으로 사준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돈을 쓸 데'는 '돈이 필요한 곳'이다. 설령 그곳이 우리 가정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곳이면 그 곳에다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느 곳이 되었든 필요한 금액 이상으로 돈을 쓰면 낭비라고 생각한다. 음식을 시킬 때나 만들 때는 언제나 조금 모자랄 듯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재정적인 부분에서 아내와 나는 자주 부딪힌다.


하지만 우리 둘의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누군가 쓰던 중고 물건이나 입던 옷도 마다하지 않고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남에게 물려받은 중고 가구나, 옷, 신발이 꽤 많다. 얼마 전 아내의 친구가 타주로 이사를 한다며 필요 없는 가구가 있는데 가져가겠냐고 연락을 해 왔다. 우리는 두 말없이 기쁨에 넘쳐 맨발로 뛰어갔다. 이런 면에선 정말 찰떡궁합이다.


친구 집에서 파라솔이며 야외용 의자 세트 등 생각보다 많은 물품을 챙겨 받게 되었다. 모두 필요한 물품들이어서 고마운 마음에 물건들을 정리한 뒤 우리는 친구 부부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친구 부부가 결혼 한 지 꽤 되었는데 불구하고 아직 자녀가 없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처음엔 무슨 사정이 있나 하여 조심스러워했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참 감동스러웠다.


친구의 남편은 어릴 때부터 꿈이 있었다고 한다. 백만장자가 되어 노숙자 쉼터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친구네 부부는 UCLA 대학 근처에 살았는데 남편은 집 주위의 노숙자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냥 돈 몇 푼 주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허락되는 한 햄버거 같은 음식을 사 와서 노숙자가 다 먹을 때까지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이다.


처음에 아내의 친구는 그런 남편에게 불만이 많아 서로 자주 다투었다고 한다. 남편이 지저분한 노숙자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싫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숙자 쉼터를 만들겠다는 남편의 소망에 절대로 찬성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남편과 타협을 하게 된 부분이 노숙자가 아닌 고아들을 후원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가능한 많은 아이들을 후원하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아이를 낳거나 입양을 해서 소유물처럼 예쁘게 키우기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여러 명의 아이들이 한 번이라도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보살핌 받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면 그것이 한 아이를 멋지게 키워내는 일보다 훨씬 더 행복한 일일 것이고 또한 그렇게 보살핌을 받은 아이들이 자라나서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받은 사랑을 사회에 되갚는다면 그것만큼 보람된 일이 어디 있겠냐는 남편의 말에 감복했다는 것이다.


평생을 이기적인 마음으로 살아온 아내의 친구는 남편의 솔직하고도 진지한 마음에 이끌려 남편의 꿈을 함께 이루어 가기로 동의했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 부부는 열심히 돈을 모은다고 한다.


실제로 그들 부부는 악착같이 돈을 모아 벌써 자신 소유의 빌딩도 있고 주식도 많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여전히 절약하며 산다고 한다. 그들도 우리처럼 누군가 쓰던 물건을 준다고 하면 버선발로 나가고 중고 물품을 애용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것을 나누는 데에도 열심이었다.


친구 부부 집에서 얻은 야외용 의자 그리고 파라솔 세트를 차에 싣고 오면서 남편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돈을 아끼는 면에 있어서 우리 부부를 닮은 친구네 부부를 보면서 그 모습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아서였다. 아니 오히려 아름답게 보여서였다.


돈을 어디다 쓰고 어디에 보람을 느끼느냐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아내처럼 가족을 위해 쓰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남을 돕거나 자신을 위해 쓰는데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린가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부부처럼 늘 다투기만 할 것이다.


우리는 친구 부부를 보며 우리는 한 가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서로의 경제 관념을 인정해주고 존중하며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기쁨으로 누리며 산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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