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아직도 다이어트 중..
아내가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다. 마음만 먹으면 한 달 만에 끝낼 수 있다고 당차게 다이어트를 시작했지만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아내의 체중은 여전히 그대로다.
사실 아내가 새해 계획으로 다이어트를 선포했을 때 제일 좋아했던 사람은 나였다. 평소 운동을 싫어하던 아내가 다이어트의 일환으로 매일 저녁 나와 함께 운동을 하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혼자 운동하느라 심심하던 차에 잘되었다 싶었다.
헬스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처음 입문자에게 각종 기구 사용법을 알려주며 시범을 보여주는 것만큼 재미나는 일도 없다. 더구나 그 입문자가 여자일 경우 더욱 그렇다. 무게를 조금만 쳐도 연신 감탄사를 질러 대며 이렇게 무거운 걸 어떻게 드냐고 놀라워하기 때문에 운동할 맛이 난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다이어트 소식에 마치 새로운 장난감이 생긴 어린이 마냥 들떠 있었다
사실 결혼 전 연애 시절에도 나는 아내에게 운동을 시킨 적이 있다. 직장 다니며 체력 저하로 고민하는 아내에게 매일 저녁 줄넘기 1000개씩 할 것을 권유했던 것이다. 설마 하겠냐 하는 마음으로 권유했지만 실제로 아내는 매일 저녁 줄넘기를 1000개를 끝마쳤다며 전화로 꼬박꼬박 보고를 해서 나를 감탄시킨 적이 있다. 그래서 다음 단계로 이번에는 스쿼트를 매일 100개씩 해볼 것을 권유했었다. 아내는 100개의 스쿼트로 시작해서 석 달만에 스쿼트 횟수를 매일 1,000개로 늘리는 기염을 토해 나를 놀라게 한 경력이 있다.
그렇게 독하고 막강했던 아내였기에 잘하리라 내심 기대했는데 이번엔 영 아니었다. 이유를 물으니 결혼 전 아내를 자극했던 연애라는 강력한 동기가 없어져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미 잡힌 물고기한테 미끼를 안 준다는 말은 남자들만 쓰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아내를 통해 새삼 알게 되었다.
여하튼 다이어트 계획에 빨간 불이 들어온 아내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는지 동네 YMCA에 온 가족을 등록시켰다. 그러나 이미 물고기를 잡아 놓은 아내의 멘탈은 영 회복되질 않았다. 퇴근 후 천근 만근이 되어 지친 몸도 이유겠지만 각 잡고 운동 좀 할라치면 옆에서 (라면을 끓이며) 쉬엄쉬엄 하라고 장난치는 나의 역할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뭐든지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거친 성격의 아내는 장난 그만하지 않으면 '다이어트' 포기하고 대신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리겠다고 위협을 했다(충분히 그럴 수 있는 여자다)
다이어트가 뜻대로 되지 않자 어느 날 아내는 나에게 고민 상담을 해왔다. 사실 나의 방해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는 다이어트 경험이 많고, 또 한 번 한다면 하는 스타일이어서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살을 뺄 수 있었다는 것이다(다만 원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이어트가 지속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거의 20년째 끝나지 않는 다이어트를 계속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매번 힘들게 운동을 하면서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있지? 왜 나의 다이어트는 끝이 나지 않는 것이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는 것이다.
아내의 고민이 접수되었기에 곧바로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당신의 다이어트가 끝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당신은 ‘다이어트’라는... 몸무게 감량이라는..
다이어트 자체를 목표로 하기 때문일거야”
아내는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무슨 말인지 설명해 주었다.
아내는 일단 목표가 세워지면 뭐든지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마침내 목표를 달성하고야 만다. 그러나 모든 목표와 계획이 그러하듯이 문제는 항상 그다음에 온다.
다이어트 또한 마찬가지다. 목표한 체중에 도달하고 나면, 즉 목표가 사라지게 되면 매번 그렇듯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는 얼마 후 또다시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끝나지 않을 경주를 다시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내의 다이어트가 20년째 끝나지 않는 이유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하고 묻는 듯한 표정의 아내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여보, 남들은 인생을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경주에 비유하지만 내 생각엔 인생은 소풍이야"
아내는 세상에 이토록 치열한 소풍이 어디 있냐고.. 인생은 소풍이 아니라 '달리기 경주'라고 항변했지만 나는 무시하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보 만일 인생이 죽는 날까지 뛰어야 하는 경주라면 어디 힘들어서 살겠어? 그처럼 불쌍한 인생이 어딨겠어? 설령 인생이 경주라 해도 나는 소풍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싶어.. 뛰다가 힘들면 언제라도 드러누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소풍 말이야."
정말 그렇다. 사실 나에겐 인생은 정말 소풍과 같다. 하나도 급할 것이 없는 소풍말이다. 인생이 달리기 경주라면 그 끝은 죽음일텐데 뭐하러 빨리 가려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생각에는 인생이 설령 소풍이라 할지라도 소풍 가서 비라도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이다
"여보, 소풍 가서 비가 오면 맞으면 되지 뭔 그리 걱정이 많아? 우리가 인생을 경주처럼 여기며 죽는 날까지 열심히 뛴다면 분명 남들보다 앞서 있겠지.. 그러나 인생이란 경주의 진정한 승리자는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인생을 행복하게 누리고 산 사람이지 않을까?"
나의 말에 아내는 조금 동의하는 듯 보였다.
"난 당신이... 다이어트와 운동을 성취해야 할 목표로 삼기보다는 그저 즐겁게 누릴 수 있는 놀이로 생각했으면 해요. 삶을 보다 풍요롭고 건강하게 만들려고 다이어트를 하는 건데 그 다이어트 때문에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야? 당신은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괜찮아. 지금의 모습에서 몸무게를 더 뺀다고 해서 당신이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아요. 행복은 목표를 이루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에요.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가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행복이 아니야. 괜히 쓸데없이 스트레스받지 말고 무엇을 하든 즐겁고 행복하게 하도록 해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언제나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의 행복을 누리며 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목표와 계획은 중요하다. 그러나 목표와 계획은 나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인생은 목표를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삶을 즐기기 위함이다.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의미 있다. 어느 것 하나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 심지어는 아내의 이혼 경험과 나의 사별 경험마저도 지금의 성숙한 재혼 가정을 이루는데 밑거름이 되었으니 말이다.
다이어트는 해야 한다.
인생을 경주처럼 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각자의 선택의 몫이다.
그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목표와 계획은 다만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수단이요 방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내의 다이어트를 통해 우리 부부는 다시 한번 인생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한 번뿐인 인생, 무엇을 위해 사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