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새엄마는 늘 나쁜 사람처럼 나올까?

새엄마도 보통 사람이라구요

by 이동엽

보통 서양에서는 사악한 여자 하면 코가 비쭉 튀어나오고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마녀를 생각한다. 그러나 동양 문화권에서 나쁜 여자의 대명사는 뭐니뭐니 해도 계모, 즉 새엄마다. 콩쥐 팥쥐 엄마도, 효녀 심청이의 엄마도 모두 계모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와 재혼 후 아내는 새엄마라는 호칭을 갖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왠지 나쁜 여자가 될 것 같은 불안감말이다.


아내는 워낙 주변에서 재혼 가정의 문제는 다름 아닌 아이들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충고를 많이 들어왔던 터라 아이들에게 무척이나 조심을 했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울 때도, 아이들 물건을 사줄 때도, 하다못해 내 아이들을 부를 때와 막내 아이를 부를 때의 목소리 톤 마저도 걱정을 했다. 매사에 자신이 하는 행동이 행여나 '새엄마'스럽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아내는 12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엄마와 함께 낯선 미국 땅에 건너와 외할아버지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친정집에 얹혀살다 보니 장모님은 뭐든지 조심을 시키게 되었고 특히 잔소리가 심하셨는데 당시 어린 아내 생각에는 장모님이 쓸데없는 일에까지 조심시키고 잔소리하시는 것 같아 여간 스트레스를 받은 게 아니라고 했다. 아내는 그게 너무 싫었고 자라면서 점차 엄마와의 갈등도 커져갔다고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내는 어릴 적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내는 아이들에게만큼은 좋은 기억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간절했다. 가족과의 즐거운 여행의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고 눈치 보지 않는 풍족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단다. 그런 아내가 지금 새엄마가 된 것이다. 그러니 그런 마음이 간절한 만큼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좌절감과 고통 또한 컷을 것이다.


뭘 해도 부자연스러운 것이 새엄마이다. 사실 사춘기 아이들은 친부모가 대하기도 힘들다. 뭘 물어봐도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조그마한 일에도 신경질을 내는 것이 사춘기 아이들의 특징인데 더구나 새엄마와의 관계는 말해 무엇하랴. 아내는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점점 더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아내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이런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속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목사의 아내, 즉 '사모' 되었기 때문이다. 목사의 아내가 이런 문제로 고민한다는 사실 자체가 스스로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게 시간은 지나갔고 큰 아들은 대학을 졸업했고 둘째 딸아이는 대학 기숙사에 들어갔다.


몇 주 전 기숙사에 있는 둘째 딸이 가족 카톡방에 카톡을 했다. 뜬금없이 김밥이 먹고 싶다는 것이다.


딸아이는 태어난 지 1년 만에 암으로 엄마를 잃었기에 엄마의 빈자리에 대한 사무치는 마음이 있다. 반면에 어릴 적 엄마와 그리 살갑게 지내지 못했던 아내는 새로 생긴 딸에게도 그리 살가운 편이 못되었다. 잘해주고 싶은데 도무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딸이 대학 기숙사에 들어갈 때까지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딸이 뜬금없이 김밥이 먹고 싶다고 카톡을 한 것이다.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무시했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직장 생활을 하느라 주말에는 좀 쉬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반가워하며 주말에 김밥을 싸 들고 기숙사에 깜짝 방문을 하자는 것이었다.


한국에는 5월에 어버이날이 있지만 이곳 미국에는 ‘마더스 데이’를 성대히 치른다. 물론 ‘파더스 데이’도 있지만 어머니의 날 만큼 주목받지는 못한다. 이 날에 좀 괜찮은 레스토랑을 예약하기는 거의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모든 엄마들이 주인공이 되어 감사와 축하를 받기 때문이다. 그런 마더스 데이에 아내는 김밥을 싸 들고 딸아이 기숙사 방문을 계획하는 것이다. 당신이 축하받아야 할 ‘마더스 데이’인데 그래도 괜찮겠냐고 되묻는 나에게 아내는..


세월은 참 빨리 지나간다며 어느덧 자기 나이도 엄마가 어린 동생과 자신을 데리고 아빠와 사별했을 때의 나이를 훌쩍 넘겼다고 담담히 말했다. 어릴 적에는 그저 엄마의 까탈스러운 성격과 잔소리가 무작정 싫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마 또한 당시의 상황 가운데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며 슬며시 웃는다. 아내는 딸 아이의 김밥을 싸며 자신의 엄마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모든 부모는 자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모든 자녀는 그 사랑을 좀처럼 깨닫지 못한다. 그러다 정작 자신이 부모가 되고 나서야 문득 '아 엄마가 날 키울 때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야 비로소 부모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랑이라는 말은 누군가를 직접 사랑해보지 않으면 결코 깨우칠 수 없는 말이다. 우리가 말로만 사랑할 수 없는 이유이다.


마더스 데이를 하루 앞둔 토요일에 아내와 나는 딸의 기숙사에 다녀왔다. 우리의 방문에 깜짝 놀라며 기뻐하는 딸아이와 준비해 간 김밥을 함께 나눠 먹으며 모처럼 만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집 떠나면 누구나 효자 효녀가 된다더니 딸아이와 아내는 그간 나누지 못했던 지난 날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회포를 풀었다. 아내 또한 오랜만에 딸에게 엄마 노릇했다며 기뻐했다.

그렇게 토요일을 보낸 아내와 나는 다음 날 ‘마더스 데이’에는 장모님에게 다녀왔다. 이번엔 장모님 에게 딸 노릇하고 온 것이다. 자신 또한 마더스 데이의 주인공으로서 조금 손해 보는 느낌도 들었지만 어머니 날에 부모로서 대접받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녀 노릇을 해보는 것도 꽤 괜찮은 경험인 것 같다고 오히려 즐거워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진정한 기쁨은 오히려 주는 데에 있다. 진정한 기쁨의 원천인 사랑이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퍼주고도 못내 아쉬워하고 오히려 더 해주지 못해 안달하는 부모의 마음이 사랑의 참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자연스러운 사랑의 진리를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가 이혼과 재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쪼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아 조금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알게 된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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