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히려 다행인 사실들
결혼 생활에 무지막지한 영향을 미치지만 결혼 전에는 체크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바로 습관이다. 작게는 치약 짜는 방법부터 집안 청소하는 횟수까지 습관의 문제는 꽤나 중요하다. 그래서 습관의 문제는 생각보다 꽤 심각하다.
나는 남자 치고는 깔끔한 편이다. 양말을 이틀 연속으로 싣어도 발 냄새가 전혀 나지 않을 만큼 청결하며 먼지를 무지하게 싫어해서 책상 옆에 늘 공기청정기를 틀어놓고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내의 깔끔한 성격과 비교하면 나는 명함도 못 내민다.
아내는 무슨 강박관념이 있는 것처럼 청소에 집착을 한다. 매일 퇴근하고 들어오면 부엌 바닥부터 물걸레로 닦고 바닥에 조그마한 부스러기라도 떨어져 있으면 엄청 잔소리를 해댄다. 아이들은 밥 먹다가 뭐라도 하나 흘리게 되면 순간적으로 긴장하며 엄마의 눈치부터 살핀다.
그런데 내가 조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그토록 바닥의 청결함에 예민한 사람이 바닥이 아닌 곳, 그러니까 바닥 위에 있는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주로 바닥이 아닌 곳에서 생활한다(소파나 침대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단 소리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밝히고 싶은 아내의 습관은 바로 아내의 방귀다. 방귀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지 그게 무슨 습관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생각을 다르다. 아내는 습관적으로 꼭 안방에 들어와 내 앞에서야 마음 놓고 방귀를 뀌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아내의 방귀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도무지 믿지를 않는다. 심지어는 우리 집 아이들도 믿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욱 억울하다.
참다못한 내가 뭐라 하면 아내는 생리현상인데 어떡하냐고 도리어 나에게 화를 낸다(우리 속담에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있는데 꼭 그 상황이다)
왜 꼭 나있을 때에만 방귀를 뀌냐고 따져 물으면 회사에서는 창피해서 하루 종일 방귀를 참는다는 것이다. 그 대답에 더욱 열받은 나는 하루 종일 참아온 방귀를 왜 한꺼번에 나있을 때에만 해걸하냐고 따지고 물으면 부부는 한 몸인데 남자가 뭘 그리 따지냐고 또 다시 화를 낸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아내는 방귀를 뀔 때 꼭 나를 조준(?)한다는 점이다. 나는 방귀 뀔 때는 적어도 엉덩이를 사람을 향하지는 않는 것이 '인간 된 도리'라고 따져 묻지만 별로 효과는 없다. 자신의 방귀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내 의견을 무시해 버리기 때문이다.
난 가끔 아무래도 이 여자가 자신이 방귀 뀔 때마다 얼굴이 노래지면서 파닥거리는 내 모습을 보며 일종의 쾌감 같은 것을 느끼는 SM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덧 붙이자면 내가 아내의 방귀 문제로 정말 힘들 때는 아내가 자면서도 방귀를 뀔 때이다. 한 번을 자다가 큰 소리로 빵 하는 소리에 잠을 깬 적이 있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정말이다. 잠결에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잠을 청하려는 순간 옆자리에서 다시금 빵 하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가 아내의 방귀 소리임을 알게 되었다. 난 솔직히 살면서 그렇게나 큰 방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 내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아내의 첫인상은 평소 나의 이상형에 가까웠다. 난 애교 많고 여성스러운 스타일보다는 조금 차가워 보이는 도도한 차도녀 스타일을 좋아하는 편인데 아내의 첫인상이 딱 그랬기 때문이다. 또릿 또릿한 말투에 차분하면서도 논리적일 것 같은 모습.. 평소 나의 이상형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러나 결혼 후 아내의 모습은 나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내는 말투만 또릿또릿 했지 말의 요지는 불분명했다. ‘여보 그거 한번 찾아봐요 그거 있잖아요 그거.. 아이 무슨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그거 말이에요 그거..’
아내는 분명 한국말을 하고 있는데 내용을 잘 모르겠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내는 집안을 통틀어 장녀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지기를 싫어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스타일이다. 물론 난 그런 모습에 반하긴 했지만 결혼해서 살다 보니 이건 아니지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내는 자기보다 8살이나 많은 나를 늘 이겨 먹으려고 한다. 승부욕 있는 것은 좋은데 왜 그 승부욕을 집에서 나한테 발휘하는지 모르겠다.
자기주장이 강한 것까지는 좋은데 아내는 쓸데없는 자기 자랑도 많이 한다.
‘여보 난 대학 다닐 때도 아르바이트하며 내 손으로 학비 벌어 졸업했어. 그런데도 항상 A만 받았어 난 뭐든지 A급 여자야. 그래서 가슴도 A컵이야 ㅎㅎ…’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사실 아내는 변태다. 그토록 깔끔을 떠는 아내는 유독 냄새 취향이 독특해서 방귀 냄새를 좋아한다. 방귀 냄새가 구수하단다. 그런데 자기 방귀는 냄새가 안 난다고 어쩌다 내가 방귀 한 번 끼면 그 냄새를 맡으려고 내 곁에 가까이 온다. 변태가 틀림없다. 근데 사람들이 이걸 도무지 믿지 않는다. 어우 열받아.
억울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종종 나보다 8살이나 어린 아내가 요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하고 게다가 20년 차 직장인으로서 돈도 잘 버니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음이 틀림없다는... 목사인 내가 듣기에 상당히 비성경적인 말을 하곤 한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보통 여자가 요리를 잘하면 청소를 못한다던가, 혹은 돈을 잘 벌면 외모가 별로라든가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아내는 요리도 잘하고, 청소는 심하게 잘하고 게다가 돈도 잘 벌고 외모도 준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공평하다. 아내는 요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얼굴도 예쁘지만... 가장 중요한 성질머리가 더럽기 때문이다. 아내는 평생을 막내로 살아온 여리디 여린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거센 여자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마음이 힘들어진 나는 언젠가부터 마음을 바꾸어 먹기로 했다. 아내를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다른 관점으로 보니 정말로 아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아내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20년이 넘게 일을 해온 아내...
피곤할 텐데도 늘 퇴근하자마자 부엌에 달려가 바닥을 청소하고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
무엇하나 잘난 것 없는 남편의 방귀 냄새까지도 사랑해주는 아내...
그리고 무엇보다 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언제나 나를 웃게 만드는 평생 친구 같은 나의 아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아내는 나에게 보배와 같은 존재였다.
서로 완벽히 다르지만 다르기에 서로에게 더욱 필요한 존재였다.
간혹 나는 아내가 모든 면에서 내 생각대로 움직여 주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툼이 없어서 좋을 것 같지만 그런 존재는 굳이 아내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AI 로봇이나 가사 도우미로도 충분할 테니 말이다.
매일 저녁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때론 다투기도 하고
때론 삐져서 말도 안 하기도 하고
때론 서운해하기도 하지만
어느덧 우리 부부는 없으면 서로 심심하고 허전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함께 말을 나누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
평생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고 사는 사람은 얼마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을 파랑새에 비유하는 것 같다.
늘 곁에 있는데 알아보지 못하는 동화 속 파랑새 말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만일 부부 사이에 조금이라도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서로의 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보기 바란다.
서로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한번 바라본다면 아마도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 부부는 수많은 부부 싸움을 통해
결국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내가 존재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혹시 아는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나처럼 어느 순간에
전생에 나라를 구했음을 깨닫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