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싸움의 좋은 점 5 가지

사실 5 가지가 넘지만..

by 이동엽

흔히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한다. 그러나 자칫 방심했다가는 칼로 '무 베기'가 될 수도 있으니 늘 조심해야 한다.


우리 부부는 부부 싸움을 자주 하는 편이다. 부부 싸움을 할 때면 피가 거꾸로 솟기도 해서 힘이 들기도 하지만 최소한 혈액 순환에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건강을 위해서라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꾸준히 싸우는 편이다. 싸움의 발단 또한 아주 평범하고도 사소해서 우리 부부는 언제 어디서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부부 싸움을 하며 손쉽게 건강을 돌보곤 한다.


부부 싸움을 하게 되는 주된 이유는 서로의 성격과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느긋한 성격인 나는 좀처럼 서두르는 법이 없다. 설거지를 하더라도 점심에 먹은 설거지를 남겨두었다가 저녁때 한꺼번에 하는 스타일이다. 어차피 해야 할 설거지를 하루 세 번이나 손에 물을 묻혀가며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용한 물건은 언제나 '제 자리'가 아닌 '그 자리'에 그냥 놓아둔다. 다음 번에 편리하게 그 자리에서 또 쓰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내는 무슨 일이든지 바로바로 해치워야 하는 성격이다. 설거지는 즉시 바로 해야 하고 사용한 물건은 반드시 제 자리에 놓아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부부 싸움을 자주 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아내와 내가 서로 다른 것은 이 점만이 아니다.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 중에 하나는 반경 1 미터 안에 필요한 모든 것(맥주, 커피, 과자, 바나나, 요구르트 등)을 늘어놓고 편하게 책을 보는 시간이다. 반면 아내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청소와 정리 정돈을 다 마친 후 우아하게 앉아 창밖을 보며 평화롭게 차 한잔 마시는 시간이다.


나에게 있어 집은 사무실 겸 놀이터 겸 설교 말씀을 녹화하여 전하는 스튜디오이기도 하지만 아내에게 집은 퇴근 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소중한 공간이다. 이렇듯 서로 다른 성격과 기질을 가진 두 사람이 한 공간을 공유하며 살면서 부딪히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부부싸움을 하게 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성격이나 습관의 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소한 말실수나 상대를 향한 짜증 섞인 태도 때문이 아닌가 한다. 관계에 있어서 말과 태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전에 흥미로운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거 하나 못해줘?"라는 말이 부부싸움을 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라고 한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것 하나 못해줘?’라는 말은 오로지 자기 입장만을 생각하는 말이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겨우 이거 하나’ 일지 몰라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거 까지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혼 초기, 직장 생활을 하는 아내는 퇴근하고 들어왔을 때 정리가 안된 집안 모습을 보게 되면 짜증과 함께 “집에 있으면서 나를 위해 이거 하나 못해줘”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곤 했다.


그러면 나 또한 피곤한 몸으로 퇴근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슬슬 표정이 바뀌며 ‘아니 출근만 안 할 뿐이지 설교 준비와 집필 활동 게다가 아이들 등하교 시키는 일등 일은 내가 더 많은데 그깟 집 정리가 좀 안되었다고 짜증을 내?’ 하며 언성을 높이게 된다.




보통 부부싸움을 하게 되면 나는 평소보다 문을 두 배 정도 세게 닫으며 무언으로 냉전 상태에 돌입했음은 선포한다. 그리고 냉전 기간 동안 우리 부부는 서로 각자의 세계에 빠져 든다. 나는 나대로 아무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아내 또한 이것저것 챙겨달라는 나의 귀찮게 함 없이 마음껏 인터넷에 몰두한다. 흔치 않은 귀한 시간이다. 부부싸움을 하게 되면 좋은 점 중에 하나다.


그러다가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어제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무심코 대화를 나누다가 ‘아차 우리 어제 싸웠었지?’ 하며 머쓱해하기도 한다(그러고 보면 부부 싸움엔 금붕어 기억력이 특효약이다)


예전에는 부부 사이에 한 사람이 무조건 참고 양보하며 사는 것이 미덕이며 부부가 한 몸을 이루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은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한 몸을 이루라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며 조화롭게 살라는 이야기지 한 덩어리가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그저 참고 넘어가기보다는 부부 싸움을 하면서라도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며 이를 통해 서로를 배려해 나가는 것이,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함께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부부에게 훨씬 더 유익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틈만 나면 다투며 산다. 다툴 때마다 조금씩이나마 상대방이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에 민감해하는지를 더 알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금붕어 기억력인 우리 부부는 조금 전 학습한 상대에 대한 정보를 금세 까먹고 똑같은 이유로 몇 번씩 더 싸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서로에 대해 무관심한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만큼 자괴감이 큰 일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보낸 시간만이 중요하고 의미 있다는 생각에서 "그깟 이거 하나 못해줘?" 라는 말을 쉽게 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의미 있고 누구나 자신이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를 무시한 채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게 될 때 한 바탕 싸움은 피할 길이 없다.


생각해 보면 "이거 하나 못해줘"라는 말보다는 "이거 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훨씬 더 많다. 함께 살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집안 일과 자녀 양육은 누군가 나를 위해 해줘야 하는 일이 아니라 어차피 해야 할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의도적이라도 '이거 해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최선의 솔루션이다. 아울러 다년간 꾸준히 주 1회 이상 부부 싸움을 해 온 우리 부부의 경험상 부부 싸움이 주는 유익함을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정리해 본다.


1. 혈액 순환에 즉효약이다 (단 피가 거꾸로 순환할 수도 있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

2. 독서와 인터넷 등 각자의 여유 시간을 맘 편히 가질 수 있다

3. 원한다면 물건을 집어던지면 근력과 지구력도 키울 수 있다 (그렇지만 되도록이면 폭력은 피하자)

4. 서로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 (이 인간이 과연 어떤 상황에서 뚜껑이 열리는지..)

5. 돈 안 들이고 실내 온도를 높일 수 있다 (아오 열받아)




이전 02화두 번째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