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결혼

사랑이 커피라면..

by 이동엽

나는 결혼을 두 번 한 목사다. 아이들 엄마와 사별 후,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 재혼했고 그 이후 목사가 되었다.


지금부터는 두 번째 결혼이라는 새로운 만남을 통해 인생에 있어서 내가 어떠한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는지를 함께 나누려 한다




재혼할 당시 나의 아이들은 고등학생과 중학생이었다. 말하자면 큰 아들은 집안에서 '가장보다도 지위가 높다'는 고3이었고 딸은 마블 코믹스의 타노스도 건드리지 못한다는 중2였다. 그리고 아내에게는 고3과 중2보다 더 세다는 '초등학생' 아들이 있었다


재혼을 결심했을 당시 왜 주위 분들이 그토록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내었는지 그 때의 나는 잘 몰랐다. 그러나 재혼 후 그 이유를 깨닫게 되는 데는 몇 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 아내는 큰 아들과의 관계를 어려워했다. 나와 비슷한 체구의 고등학교 졸업반의 큰 아들과의 관계가 서로 간에 어려웠을 것이다.


아내는 큰 아들이 자기에게 무슨 불만이 있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빨래를 한 후 아들 옷을 가지런히 서랍에 넣어주면 다음 날 온통 서랍 속 옷을 흩트려 놓는다는 것이다. 필경 자신에게 무언의 반항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불평했다. 그런 아내를 위해 나는 중간에서 교통정리를 해 주었다


"아니야 승환이는 나 닮아서 좀 지저분해. 원래 옷 꺼낼 때 버릇이 좀 그래.. 하 이놈의 자식, 아빠의 좋은 점을 좀 닮지..”


"좋은 거 뮈?"


"잘 생긴 거"


"..."



딸 또한 아내와 서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내에게 직접적으로 반항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내와의 접촉은 가능한 피하려 하는 것이 역력했다. 어떤 날은 딸 아이가 자기 방 가구 배치를 다시 해야 한다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내가 도와준 적이 있었는 데 다음 날 아내가 나에게 불평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여보 딸아이가 나를 싫어하는 거 같아 속상해"


"왜? 무슨 일 있어?"


"내가 힘들게 방에 가구 배치 예쁘게 해 주었더니 다시 바꿔 놨잖아.. 나한테 애기도 안 하고”


" 아 놔 이거.. 엄마가 기껏 해놓은 걸 나한테 와서 다시 바꿔 달라는 했던거야? 아니 얘는 내가 당신처럼 힘이 센 줄 아나 봐. 힘하면 당신인데.. 여보, 힘센 당신이 참어.”


아내의 속상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아내는 결혼 전 하나뿐인 막내에게 온통 집중할 수 있었다. 더욱이 혼자 애를 키우던 싱글맘이라 혹여라도 아이가 기가 죽을까 봐 아이가 필요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채워줬었다. 아이가 야구를 좋아하면 야구 장비를 풀세트로 구입해주고 피아노를 가르치기 위해 전자 피아노를 구입했으며 농구를 시작하자 비싼 농구화를 시즌마다 사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서 갑자기 아이들이 셋이 되자 상황은 변했다. 처음에 아내는 막내 농구화 살 때 큰 아들과 딸아이 신발도 당연하게 구입했었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발 사이즈가 커가는 막내 농구화를 시즌마다 사주려고 하니 왠지 큰 애와 둘째 딸아이의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몰래 사주기도 뭐하고... 아이들이 딱히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계속되자 아내의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만 갔다. 나에게 까닭 없이 짜증을 내는 일도 잦아졌다. 그저 나와 결혼만 하면 행복하게 잘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남모르게 감추었던 스트레스가 폭발해 버렸다. 영문을 몰랐던 나는 아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이유를 캐물었다. 아내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차마 자신의 입으로 애들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역시 새엄마라서..’ 이런 말 들을까 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속으로 스트레스만 쌓아갔던 것이다.


울먹이며 속마음을 털어놓는 아내를 꼭 안아주며 나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여보 막내 신발 시즌마다 사줘도 돼요. 그리고 그때마다 큰 애들 신발 함께 안 사줘도 돼요. 새엄마 소리 들어도 괜찮아요.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이 아이들 친엄마가 되지는 않아요"


무슨 소린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아내에게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난 당신이 아이들에게 새엄마 같다는 소리 들을까 봐 전전긍긍 하기보다는 오히려 새엄마로서 당당했으면 해. 농구 좋아하는 아이한테 시즌 별로 농구화 사주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어? 단지 당신 마음속에 혹시 차별처럼 보이면 어쩌나 하는 염려뿐인 것이지.”


"당신은 잘 몰라서 그래요. 이런 것이 얼마나 민감한 문젠데.. 특히나 우리처럼 재혼한 가정 지켜보는 눈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무슨 콩쥐 팥지에 나오는 계모처럼 못되게 굴라는 소리가 아니에요. 단지 새엄마처럼 보일까 봐 노심초사하지 말라는 소리예요. 그리고.. 당신이 재혼 가정의 새엄마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 애써 감추려 하지 말아요. 하지만 당신은 새엄마인 동시에 우리 가정의 하나밖에 없는 엄마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요”


잠자코 듣고 있는 아내에게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라 당신의 솔직한 마음이야. 당신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이 아이들은 내 아이들이다... 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그 마음은 반드시 전달돼요. 그러니 스트레스받지 말고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며 살아요. 아이들 혼낼 일 있으면 혼도 내고 소리 지를 일 있으면 소리도 지르고... 칭찬해 줄 일 있으면 칭찬도 해주고.. 그게 바로 엄마의 역할이고 그게 진정한 사랑이에요"


"그게 말처럼 그리 쉽나? 뭐.."


결혼 초기에 이런 일들을 겪고 나서인지 우리 가정은 재혼 가정으로서는 꽤나 건강하다. 때때로 나는 부엌에서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아내에게 엄마라고 부르고 장난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또한 막내가 나를 아빠라 부르고 스킨십할 때면 속으로 감개무량하다. 그저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내가 사는 미국 엘에이는 먹거리 문화로 유명하다. 워낙 유명한 맛집들이 많아서 웬만해서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힘든 이곳에 그야말로 손님들로 장사진을 치루는 가게가 있는데 바로 대만 태생의 ‘85도씨’라는 베이커리 집이다. 여기에서 파는 인기 메뉴 중에 하나가 한국에서도 '소금 커피'로 유명한 씨 솔트 커피(Sea Salt Coffee)이다.


재혼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커피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때문이다.

사람들은 커피하면 일단 커피 향을 떠올린다. 그윽한 커피 향기와 여기에 곁들인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 생각만으로도 흐뭇해진다. 반면 소금은 짠내 물씬 풍기는 고단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서로 아무 관계가 없을 듯한 두 요소가 함께 섞이면 전에 없던 훨씬 고급스러운 풍미를 낸다.


씨 솔트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사랑 속에 이물질이 섞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혹시나 사랑의 맛이 망쳐질까 두려워서이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는가? 커피에 소금이라는 이물질이 들어가면 맛이 훨씬 더 풍요로워진다는 사실을..


재혼 가정은 이를테면 한 번 깨졌다가 다시 봉합된 유리그릇과도 같다. 접착제로 다시 붙여 그런대로 그릇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깨진 자국을 안고 있는 유리그릇 말이다. 더구나 원래의 조각이 아닌 다른 조각들의 조합이기에 충격에 더욱 취약하다. 사랑이라는 접착제가 강하게 서로를 붙들어 주지 못하면 사소한 충격에라도 금세 금이 가고 깨질 수 있기에 나는 평소 가족 간의 사랑을 강조한다.


소금 커피를 마시며 사랑이 커피와 같다면 여기에 첨가된 소금은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맛을 더욱 풍요롭게 할 소금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 것이다.


솔직함? 조금은 까칠한...


사람들은 보통 사랑하면 커피 같은 사랑을 떠 올린다. 때론 아메리카노처럼 향기롭고 때론 라테처럼 부드러운 커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커피 같은 사랑을 원한다.


우리는 사랑 속에 소금과 같은 이물질이 끼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혹시나 사랑의 맛이 망쳐질까 두려워서다. 사람들은 상대의 맘을 아프게 하거나 실망시키면 사랑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견 맞는 말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비록 쓰더라도 소금과 같은 솔직함이...

비록 까칠하더라도 진솔한 속마음이

사랑을 더욱 풍요롭고 고급스럽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85도씨의 소금 커피가 그러한 것처럼...

이전 01화재혼하면 뭐가 젤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