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하면 뭐가 젤 좋아?

밤에 잘 때…

by 이동엽

재혼 한지 5년 정도 지난 어느 날, 아내와 곱창을 먹다가 뜬듬없이 한 번 물어보았다.


“당신은 나랑 재혼하고 나서 뭐가 젤 좋아?”


잘 익은 곱창을 입에 넣으며 야릇한 미소와 함께 아내가 대답했다.


“밤에 잘 때”..


아니 이 여자가 언제부터 이렇게 야해졌지?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도 내게 물었다.


“그럼 당신은 나하고 재혼하고 뭐가 제일 좋아?”


“음.. 나는 결혼 부조금 두 번 받은 거”


주저 없는 나의 대답에 아내는 격하게 웃으며 깊은 공감을 표했다. 이런 면에선 우리 부부는 궁합이 잘 맞는다.


재혼하고 나서 밤에 잘 때가 제일 좋다는 아내의 말은 사실 농담이 아니었다. 아내는 본래 추위를 잘 탄다. 겨울에는 침대 밑에 전기 장판을 깔고 잠을 잘 정도였단다. 그런데 나와 결혼한 후에 밤에 잘 때 서로의 체온 때문에 너무 따뜻하고 잠도 잘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좋다는 것이다.


그러면 차라리 귀뚜라미 보일러랑 결혼하지 그랬냐며 재차 다른 좋은 점을 물으니 이번엔 진짜 이유를 말한다.


“혼자 살 때는 뭐든지 혼자 결정해야 했었잖아. 자유롭고 편하긴 했지만 늘 내가 결정한 것이 맞나 싶기도 하고.. 잘하고 있는지 걱정되고 불안할 때가 많았어. 그런데 자기랑 결혼 한 이후로 뭐든지 같이 결정할 수 있고 불안하다 싶으면 당신의 의견을 따르면 되니까 참 좋은 것 같아. 음… 말하자면 머리가 새로 생긴 느낌이랄까? ㅋㅋ”


그런 아내에게 그동안은 머리 없이 살았냐고 놀리자 농담 그만하고 나에게도 재혼해서 좋은 진짜 이유를 말하란다. 나 또한 아내와 비슷한 이유지만 좀 더 고급지게 대답하였다.


“음.. 뭔가 나의 존재가 완성된 느낌이랄까? 결혼 전에는 인생이 아직은 뭔가 부족한 미완성의 느낌이었다면 당신과 결혼한 후에 비로소 완성된 느낌이야”


나의 고급진 표현이 맘에 들었는지 아내는 호들갑을 떨며 또 물었다.


“또 없어? 또 다른 좋은 점 없어?


“음.. 있지."

"여자답지 않은 점?”


살짝 삐질 것 같은 느낌이 감지되어 얼른 보충 설명을 이어갔다.


“난 어릴 때부터 애교 많은 공주님같은 스타일보다는 뭔가 도시적이고 지적인 느낌의 여자가 이상형이었어. 말하자면 ‘차도녀’ 스타일이랄까.. 그런데 당신이 꼭 그런 느낌이어서 맘에 들어”


나의 보충 설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내는 “그래? 어떻하냐 차도녀처럼 보여도 난 허당인데 ㅋㅋ” 하며 다시금 환해졌다. 아내의 미소에 순간 방심한 나는 무심결에 한 마디 덧붙였다.


“처음 볼 땐 허당인지 잘 몰라. 살아봐야 알아 ㅋㅋ”




아내와 결혼과 재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새삼 느낀 점이 있다. 재혼을 하게 된 후 좋은 점이 비단 잠잘 때의 포근함과 미완성된 삶의 완성 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함께 웃으며 즐겁게 떠들 수 있는 평생의 대화 상대가 생겼다는 사실이 아마도 결혼 후 생긴 가장 큰 좋은 점이 아닌가 한다.


물론 부부 사이의 모든 대화가 오늘처럼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바가지 긁는 소리와 귀에서 피가 나도록 반복하는 잔소리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바가지와 잔소리마저도 부부 생활의 장점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밥먹을 때 쩝쩝거리는 흉한 버릇은 아내의 잔소리 때문에 많이 고쳐졌고 인터넷 충동구매 습관이있는 아내 또한 나의 잔소리로 인해 질질 새는 돈이 많이 줄었다고 좋아라 한다.




사람들은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한다. 그러나 결혼을 두 번씩이나 해 본 나의 의견은 ‘결혼은 해도 후회... 그러나 안 하면 더욱 후회’라는 것이다. 솔로였을 때 누렸던 자유와 편안함은 부부가 한 몸을 이루어 누리게 되는 안정감과 행복과는 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혼 관련해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재혼 가정이 깨지는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자녀와 관련된 문제라는 사실이다. 재혼을 결심한 사람이라면 서로간의 애정 문제로 인해 문제가 생길 일을 별로 없다. 설령 있다하더라도 대화로 충분히 풀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자녀 문제가 개입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재혼 상대에 대한 사랑이 그의 자녀에게 까지 쉽게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같은 경우 재혼을 고려할 때 아이들의 엄마를 찾은 것이 아니라 나의 평생의 반려자를 찾았다. 당시 주변에서 나에게 재혼을 주선해주신 분들이 몇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내 스타일 아니라며 거절한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엄마가 필요한 어린 자녀들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하는 무책임한 아빠라고 비난했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확고부동했다. 아이들의 엄마나 아빠를 만들어 주기 위한 재혼은 아이들에게도, 재혼 상대에게도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된 이후의 일이지 그 반대는 아닐 것이다.


평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내가 재혼을 하게되자 아이들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되었다. 아내는 막내에게 아빠가 생긴 것에 대해, 나 또한 아이들에게 엄마가 생긴 점이 너무나 감사하게 된 것이다. 재혼하면 당연한 것인데 감사할 일이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재혼 가정의 90% 이상이 자녀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마치 기대하지 않았던 보너스를 듬뿍 받은 느낌이랄까?




재혼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재혼한다고 무조건 행복해 지거나 무조건 불행이 지지 않는다.

그저 인생을 살아가며 지나야 할 길, 넘어야 할 산, 겪어야 할 과정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러나 같은 길과 동일한 산이라도 장애물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힘겨운 고생길에 불과하겠지만

길섶에 핀 꽃에 감탄하고 산등성이에서 바라보는 시원한 절경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그야말로 즐거운 소풍이요 짜릿한 모험일 것이다.


우리 부부는 이왕 나선 이 길을 힘겨운 고갯길로 여기기 보다는 소풍 가는 길로 생각하기로 했다.

비록 도중에 비가 내리고 엉뚱한 길에서 헤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소풍을 나선 길이라면 그 또한 좋은 추억거리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