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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Oct 24. 2022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돌아온 탕자’ 이야기

돌아온 탕자 이야기의 충격적 진실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 이야긴 매우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워낙 유명하여 수많은 화가들이 소재 삼아 작품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중에서도 유럽 미술사에서

위대한 화가 중의 한 명으로 평가받는 램브란트는

 이 이야기를  소재삼아

 ‘탕자의 귀환’이란 걸작을 남깁니다


그림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흔히

 이 이야기를 아버지의 품을 떠났다가 돌아온

탕자에 관한 이야기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돌아온 탕자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에는 3명의 등장 인물이 나옵니다


집을 떠났다가 돌아온 탕자 아들과

아버지와 함께 집을 지키고 있던 맏아들

그리고 아버지입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가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나누어 달라고 합니다


사실 당시에 부모가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유산을 미리 달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매우 불경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둘째의 몫을 나누어 줍니다


유산을 챙겨 받은 아들은

먼 나라로 떠나가

거기서 허랑방탕한 삶을 살다가

재산을 모두 낭비합니다


나중에 끼니마저 거르게 되자

하는 수 없이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종살이 라도 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거지 꼴로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가 버선발로 뛰어 나가

반기고

잔치를 벌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유럽의 수많은 화가들이 그린 장면이

바로 이때 아버지가 탕자 아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모습이고


이는 또한 수많은 설교가들의

 설교 포인트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집 나가서 개고생 하다 거지 꼴로 돌아온

탕자 아들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없는 사랑으로 따뜻이 품어주시고

안아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곧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떠나 개고생 그만하고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는 겁니다


언제든지 꾸짖지 않고 받아 주시는

아버지의 품 안으로,

교회의 품 안으로 돌아오라는 겁니다


그러니 전도하기에

이처럼 잘 들어맞는 이야기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이야기의 1 막에 불과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는 맏아들이 등장합니다


맏아들이 밭에 있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집 나간 동생이 돌아와서

아버지가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순간 맏아들은 열이 받습니다


아니 몇 년 동안 아버지를 도와

뼈 빠지게 일한 자신한테는

염소 새끼 한 마리 잡는 일 없더니


유산을 미리 챙겨나가

창기들과 말아먹은

후레자식이 돌아왔다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다니

도대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하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사실 맏아들의 분노는

무척이나 공감이 갑니다


맏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의 행동은

너무나 불공정하기 때문입니다


창기들과 노느라 재산을 말아먹은 아들을 위해서는

잔치를 벌여주고


죽도록 일만 하는 자신에게는

기껏 그 잔치에 참여하여 즐기기나 하라고 한다면

누가 열심히 일을 하겠습니까?


실제로 이런 일이 주변에서 일어난다면

그 누구라도 맏아들처럼 열이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결말이 예상 밖입니다

마치 아버지가 오히려 맏아들을

꾸짖는 듯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내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쩝


우선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늘 그렇듯이 이 이야기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먼저 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누가복음 15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절부터 보면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하신 이유는

비유에서 둘째 아들로 여겨지는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자


이에 착실한 맏아들 격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못마땅해 수군거리기 시작하고


바로 이들에게 뭔가 가르침을 주시려는 목적으로

지금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즉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의 대상은

둘째 아들 격인 돌아온 탕자가 아니라


매사에 성경의 규정대로 행하는

맏아들 격인 종교적인 사람들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은

전체가 비유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3개의 비유는

모두 잃음과 다시 찾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비유에서 목자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되찾고

두 번째 비유에서 여인은 잃었던 동전 하나를 되찾습니다


그리고 지금 살펴보는 세 번째 비유에서

잃은 것은 탕자인 둘째 아들일 것 같지만


사실 세 번째 비유에서 잃어버린 바 된 것은

두 아들 모두입니다



<잃어버린 두 아들>


즉 맏아들 또한 잃은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사람이나 종교를 등진 사람이나

모두 영적으로 잃어버린 존재라는 것입니다


비유에 나오는 두 형제는

행복과 만족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두 가지 기본적인 길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맏아들이 보여주는

관습 도덕 전통 질서를 소중히 여기는

도덕적 순응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둘째 아들이 보여주는

관습과 전통 등

개인의 자유를 가로막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자아 발견의 길입니다


이 두 가지 삶의 방식은

방법은 다르나 그 추구하는 마음은

다를 바 없습니다


못된 둘째 아들이 원했던 것이 아버지의 재물이었던 것처럼

착한 맏아들 역시 원했던 것은  아버지의 사랑보다는

아버지의 재물이었습니다


둘 다 아버지와 멀어져 있기는 똑같습니다


방법 상 하나는 아주 못되게 굴었고

또 하나는 지극히 착했을 뿐


둘 다 아버지의 마음을 멀리 떠난

잃어버린 아들들이었던 것입니다


두 아들 중 그 누구도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둘 다 동일하게 사랑의 잔치로

불러들여야 할 잃어버린 아들인 것입니


그래서 비유 속 잃어버린 아들은

하나가 아니라 둘인 것입니다


죄는 단순히 규범을 어기는 것 그 이상입니다

스스로 하나님 노릇한다면

충성했어도 죄인입니다


결국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과 멀어지는 길이 두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그분의 규율을 어기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든 규율을 열심히 지키는 것입니다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형 부류의 도덕적인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성경의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지 즉 복음은

오늘날 교회에서 설교되는

종교적 메시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설교되는 메시지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종교인이 되어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한마디로 맏아들이 되라는 메시지가 대부분이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은

맏아들의 편도

그렇다고 둘째 아들의 편도 아닙니다


둘 사이의 중간 어디쯤도 아니고

그것은 전혀 다른 무엇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종교나 무종교,

도덕이나 부도덕,

보수나 진보 등의 개념으로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도덕적인 착한 사람과

부도덕한 나쁜 사람들로 가르지 않으십니다


진정한 복음은

착한 사람은 천국 가고

나쁜 사람은 지옥 간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비유 속의 아버지는

두 아들이 모두 틀렸는데도

둘 다 소중히 여겨

사랑의 잔치 속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에서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비유의 주인공은 바로 아버지입니다


탕자를 영어로 prodigal son 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형용사 prodigal 은

 ‘제멋대로 굴다, 방탕하다’라는 뜻보다는

 ‘낭비한다’, ‘무도할 정도로 씀씀이가 헤프다’ 는 뜻이 더욱 강합니다


결국 이 이야기에서 가장 prodigal 한 사람은,

가장 방탕한 사람은

돌아온 탕자도 아니고

맏아들도 아닌

바로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거지 같은 탕자 아들에게도

위선적인 맏아들에게도


대가 없는 사랑을

낭비하듯이 퍼 붓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이 전하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히 집 나간 탕자 아들을 향해 어서 빨리 돌아오라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맏아들과 둘째 아들로 대변되는

세상의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누가 누구를 향해 분노하거나

조롱받을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사람이나 종교를 등진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잃은 버린 바 된 아들들이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이들을 불러

사랑의 잔치, 기쁨의 잔치, 하나 됨의 잔치에 초청하는 아버지의 사랑만이

우리가 믿고 의지할 근거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실족하는 이유는

세상 유혹에 넘어져서도..

신앙심이 약해져서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실족하는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께 해드린 만큼

하나님도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주셔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도덕적 비행을 하나도 저지르지 않은

신앙심 깊은 성직자라 할지라도


가장 방탕하고 부도덕한 사람 못지않게

영적으로 철저히

잃어버려진 상태일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죄란 단순히 규범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올라 스스로

선과 악의 재판관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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