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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Nov 21. 2022

성경 속 ‘두란노’ 는 독재자(tyrant)입니다

두란노 서원은 못된 주인 소유의 작업장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흔히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아미도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자 라는 의미에서

쓰이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어떤 면에 빗대어 말하는가  

생각해 본다면

이 말은 그리 단순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초대 교회의 모습이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그저 몇 가정 모여서

떡을 떼며 교제하는 단순한 모습으로

정형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독교의 본래 모습을 알고자 한다면

처음 기독교가 발생했던 당시의

삶의 정황 속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슷한 행위, 같은 말이라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그 의미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노예라는 말이 현대인에게 주는 어감과

성경 당시의 사람들에게 주는 어감은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노예’하면 대부분 우리는 19세기 미국에서 학대받던

아프리카 출신 노예의 처잠했던 이미지를 떠올리립니다


그러나 성경 시대의 노예들의 생활환경을 조사해 보면

우리의 상상과 다른 부분이 꽤 많다는 점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예배에 대해 논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대 교회의 예배는 분명 스피커와 와이드 스크린이 있는

오늘날의 예배와는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나오는 ’두란노‘라는 단어는

교회, 선교단체, 출판사 등의 이름으로

널리 애용되는 우리에게 친숙한 말입니다


그러데 두란노라는 말은 영어 tyrant를 번역한 말로

본래 폭군, 독재자를 의미합니다


많은 성경 주석가들이 부정적 의미를 지닌 이 말이

서원의 이름으로 쓰인 것을 의아해합니다


서원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스콜레는

본래 ‘여가’ 혹은 ‘여가 활동’ 등을 뜻하는 단어였습니다


이 개념에서 파생되어  

상류층 사람들이 여유 시간에 강의를 듣고

공부하는 행위를 가리키게 되었고

후에 ‘함께 모여 공부하는 사람들’을 지칭하거나

‘공부하는 건물’ 즉 학교(school)을 의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후 1세기 전후에는

중소 상공인들이 자신들의 일터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했다는 것이 최근 학자들의 연구결과입니다

즉 서민들이 상류층 문화를 흉내 내려는 욕망이

언어에 반영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아파트 이름을 ‘~캐슬”로 짓고

식당 이름을 ‘경회루’니 ‘자금성’ 이니 하고 짓는 것도

아미 비슷한 맥락일 것입니다


따라서 ‘두란노 서원’의 진짜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바울이 강의실에 고상하게 앉아

청중들에게 현학적으로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그보다는 오히려 고린도에서 바울이 육체노동을 했던  

작업장(일터)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두란노’ 란 이름은 (독재자, 폭군이란 부정적 어감으로 볼 때)

못된 작업장 주인의 별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가능하고


또한 성경 본문에 등장하는 손수건이나 앞치마 같은 물건도

작업장에 흔하게 사용되는 도구였을 것입니다


즉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은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바울이 몇몇 동역자들과 함께 육체노동을 했던 작업장, 즉 일종의 공방이었고

여기에서 낮 시간에는 노동을 하고,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성경을 가르치는 모습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두란노 서원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새롭게 이해된 정황을 염두에 두고

다시 한번 성경을 읽어 본다면


좁고 빽빽한 자리, 일하느라 어수선한 공간,

불쾌한 땀냄새 가득한 공간에

피곤한 몸으로 모여 예배하고 성경공부했던

1세기의 두란노 작업장의 모습을

새롭게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 20장에 나오는

그 유명한 드로아에서 유두고가 창에 걸터앉아 예배하는 도중에

졸다가 떨어져 즉사한 사건이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이러한 예배 분위기는 아마도

쾌적한 분위기에서 예배하는 데 익숙한 현대인들은

단 10분도 견디기 힘든 예배 모습일 것입니다


복음은…

비록 담고 있는 진리의 내용에 있어서는  변함없을지 몰라도

우리가 그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에는

그 복음이 전해지는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신학적, 교리적 진술은

당시를 살아간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현실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지


바울 사도와 예수님의 제자들의 머릿속에 있다가

그 설계도대로 지역 사회에 이식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기독교의 복음은

구체적 삶의 공간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땀내 나는 사람들에게 선포되었고

그 현실 속에서 실천된 것이었지


신학자들의 연구 논문을 통해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이 바로 이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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