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를 안 따먹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성경 창세기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선악과 사건이 아닐까 합니다
바로 이 선악과 사건으로 말미암아 지상 낙원이었던 이 세상에 고난과 고통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선과 악의 문제는 비단 성경에서 뿐만이 아니라 고대 시대부터 사람들에게 커다란 의문을 안겨준 모순 덩어리 문제였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 학파 중 쾌락주의의 원조로 알려진 에피쿠로스라는 사람은 세상에 만연한 악을 바라보며 이러한 질문을 남겼습니다
그 유명한 에피쿠로스의 명제입니다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신이 악을 막을 의지는 있지만, 막을 능력은 없는가?
그렇다면 그는 전능하지 않은 것이다
반대로 악을 막을 능력은 있으나 의지는 없는가?
그렇다면 그 신은 악한 것이다
악을 막을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이 세상에 악은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
악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는가?
그렇다면 왜 그를 신이라 불러야 하는가?
어디 하나 반박할 틈을 찾기 어려운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에피쿠로스의 이러한 질문에 오늘 날의 크리스천은 과연 어떤 답변을 할 수 있을까요?
구약 성경 창세기 2장에는 선악과가 등장합니다
16절과 17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이 말씀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너무나 황당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먹으면 죽는 열매를 뭐 하러 만드셨을까?'
더군다나 성경은 하나님이 그 선악과나무를 동산 중앙에 두셨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동산 중앙은 어디서나 가장 잘 보이는 곳입니다
이건 뭐.. 먹고 죽으라고 만드신 거나 다름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선악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야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도대체 왜 만드셨을까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질문처럼 만일 하나님이 악을 막을 의지는 있지만 막을 능력은 없다면 그런 하나님은 전능하지 않은 것이고 반대로 악을 막을 능력은 있으나 의지가 없다면 그 하나님은 악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만일 악을 막을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다면 도대체 이 세상에 악은 어디서 온 것이며, 반대로 악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다면 도대체 왜 그를 하나님이라 불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의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선과 악이 과연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입니다
과연 선이란 무엇일까요?
또한 악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선과 악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선이란 좋은 일, 옳은 일, 착한 일을 행하는 것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고 거짓말하지 않고
뭐 이런 행위를 가리켜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사람을 죽이는 행위 같은 것을 악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절대적'으로 악한 행위일까요?
그렇다면 전쟁에서 군인이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선일 까요? 악일까요?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을 진멸하는 것은 선일까 악일까 하는 문제도 고민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순히 어떤 행위를 가리켜 악이라 하기보다는 그 행위의 정당성을 따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똑 같이 사람을 해치는 행위라 하더라도 강도가 하는 것과 전쟁에서 군인이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법과 도덕의 잣대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하면 선한 것이고 법을 어기게 되면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도 절대적이 될 수 없는 것이 법이나 도덕은 상황과 문화,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에서는 성매매나 낙태는 불법이고 어떤 나라에서는 합법입니다
이슬람 국가에서의 법을 지키는 선한 행위는 크리스천에게는 악인 것이죠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선한 일이지만 일본 사람에게는 악이겠지요
도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도덕은 단지 테두리가 넓은 법에 불과합니다
도덕이란 단지 어느 지역, 어느 문화의 테두리에 한정된 권장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오해하는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선과 악을 살인이나 도둑질, 성매매처럼 특정해서 가리킬 수 있는 어떤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행위들은 시대나 상황, 문화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사실 '절대적'인 선과 악의 개념을 규정짓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여기서 '절대'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과 악의 개념은 상대적' 개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절대라는 말은 (상) 대를 끊는다는 뜻입니다
비교할 대상, 즉 상대가 있을 때에만 가능한 개념이 절대라는 개념입니다
'선'이라는 개념은 '악'이라는 상대적 개념이 있을 때에만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악이 없다면 선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선의 개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국어사전적 의미로서의) 상대적 개념의로서의 선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선은 '절대적 의미'로서의 선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절대적 의미'로서의 선이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선의 개념은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것이 바로 '선'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더러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부르는 유대 관원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컽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는 말이 핵심입니다
즉 하나님은 절대적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이유는 존재와 존재물을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존재 그 자체이신데 그 하나님을 자꾸 우리가 아는 어떤 존재물의 하나로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 혼돈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존재 자체는 절대적입니다
절대적이기에 비교될 수 없습니다
이름으로 불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고 엄청 선하시고..
수 없는 미사여구로 부른다 할지라도 이미 그렇게 불린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존재는 그저 존재입니다
선의 개념 또한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선의 개념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선이라는 개념과 선 자체와 혼돈하기 때문입니다
존재와 존재물이 다르듯이 선 자체와 선은 다릅니다
존재가 그저 존재이듯이 선 또한 그저 선입니다
그래서 사실 존재 자체가 바로 선입니다
존재는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 안에 어떠한 나뉨도 없습니다
나뉨이 있다면 이미 상대적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존재는 오로지 하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바로 선 자체입니다
오로지 하나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선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선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성경에서 말하는 선이란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고
오직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우리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선이란 그저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구원이란 우리가 선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 나라'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한 행위를 해서 선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되어 선하게 된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선과 악을 바라봤을 때 비로소 선악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선악과 문제는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만들어 '먹지 말라' 금령을 명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모든 중요한 문제는 모두 명령문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기도하라
모두가 명령문입니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하지만 이러한 명령들은 모두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에 반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명령문의 형태로 주어지고 이것을 어길 시에는 제재가 가해진다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왜 주셨을까요?
그 자유의지를 통해서 관계가 세워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금지는 관계의 핵심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금지 명령은 바로 관계의 핵심입니다
부부 사이의 관계의 핵심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동의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만나면 안 되고 서로에게 거짓말하면 안 되고..
이러한 금지 사항에 따르는 것이 부부 관계의 핵심일 것입니다
이것을 어기면 부부 관계는 깨지고 맙니다
사실 에덴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일종의 상징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나무 열매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선악과가 아닌 바윗 덩어리, 선악암이어도 상관없다는 말씀입니다
관계를 상징하는 그것이 동산 중앙에 떡 버티고 있어서 언제라도 어디서나 우리가 하나님 나라 안에서 바른 관계로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바로 선악과의 역할이었고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신 이유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선이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고 이 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금령을 지키는가 안 지키는가 하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그의 명령을 지키는가 안 지키는가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선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겠다는 마음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고 반면에 하나님은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이라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태도를 일컬어 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관계의 단절이 곧 악입니다
정리하자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의 태도가 곧 선입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법을) 나의 의지대로 따르는 것이 곧 선이고 그것이 바로 구원이고 그런 상태가 바로 천국의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실 창세기 선악과 사건은 우리의 구원이 어떤 모습인가를 미리 보여주는 예표와도 같습니다
선악과를 먹기 이전의 상태 즉 모든 것을 분별하되 판단하지 않는 마음, 모든 것을 남으로 여기지 않는 마음의상태가 구원받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바로 구원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선을 행해서 구원을 받고 싶으십니까?
구원받아서 천국에 가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우선 먼저 하나님 나라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의 모든 피조물을 남이 아닌 나처럼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기계적으로 따를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요 참된 즐거움임을 체험적으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구원을 단지 소망하는 삶이 아니라 구원을 누리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