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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Oct 23. 2021

데카르트의 오류

혹시 데카르트의 오류라는 말을 들어 봤나?

아니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그 유명한 천재 데카르트가 무슨 오류를??


데카르트는 생각하고 있는 '나'를 모든 존재의 근본 토대로 본 그야말로 인간 지성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능케 한 천재였다. 그로인해 인류 지성이 한 단계 레벨 업 된 것이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오류'란 그가 '생각하는 나'를 너무 단순하게 봤다는 데 있다


프로이트를 비롯한 현대적 지성은 한결 같이 '나'의 실체를 단순하게 보지 않는다

적어도 '생각하는 나'의 의식은 잠재의식, 무의식 등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오늘날에는 고등학생들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즉 내가 나라고 인식하는 나의 의식은 사실상 전체 의식의 5퍼센트도 안 되는 표면 의식에 불과하며 나머지 95% 이상은  의식 너머에 잠재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데카르트의 오류란 그저 5% 정도 표면에 떠올라 있는 인간의 자의식(에고)을 '나'의 전부로 봤다는 데에 있다


실제로 이 오류는 많은  부작용을 일으킨다

이 에고적 자아가 자신의 인격의 전부라고 생각될 때 우리는 커다란 혼란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사실 이 질문은 구원의 핵심이기도 하다

진정한 자신을 찾는 것이 바로 평안이요 구원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시간성이다

'나'라는 에고는 시간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기억이 발생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나'의 정체성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나의 정체성, 그러니까 나를 나로 여기는 나의 에고는 과거의 나에 대한 기억에서 나의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소리다. 뭐 그리 복잡하게 이야길 하냐고? 미안하다. 그러나 이 부분은 내가 득도(?)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과거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면 나의 정체성이 무너진다는 소리다. 

나의 정체성이 무너지면 에고는 커다란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에고가 에고일 수 없게 되니 말이다.


그 순간 비록 에고는 혼란에 휩싸이지만 진정한 나는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즉 혼란스러운 나를 넘어서 그 혼란함을 정리하고자 하는 진정한 '나'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즉 '나'라는 존재가 시간 속에 갇힌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 구원의 첫걸음인 것이다. 너무 어렵다고? 

아니다. 단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낯선 개념일 뿐이다


우리가 창조된 존재인 것처럼 시간과 공간도 창조된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다는 말이다


반면에 우리의 영혼은 영원한 존재다 

창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의 육체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만 우리의 영혼은 시공간을 넘어서 존재한다.  

영혼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한다는 말은 영혼에게는 죽음이 없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죽음이란 단지 에고의 착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육체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우리의 에고는 육체의 유한한 생명을  자신의 전부로 간주한다 

에고는 시공간의 특 속에 갇혀 있기에 자신의 본 모습을 모르기 때문이다


구원이 갇힘에서 풀려나는 것을 말한다면 

영혼의 구원이란 영혼이 시공간에 갇혀있다는 망상에서 일깨워 주는 일일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소멸하지 않는다. 갇혀있지도 않다. 본질적으로 자유롭다. 다만 우리의 에고가 자신이 소멸할 수 있으며 갇혀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을 뿐이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은 

원래 영혼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면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뜻일게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와 아내는 그 존재가 소멸한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 나의 인식에 벗어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누구인지를 깨닫는 것이 

안식과 자유함을 누리는 비결이며 구원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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