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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Feb 23. 2022

일어나 걸어라 VS 네 죄가 사해졌다

어느 말이 더 쉬울까?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병 고치러 온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걸어라' 라는 말과

'네 죄가 사해졌다' 말 중에 

어느 말이 더 쉬울까?



어떤 사람은 네 죄가 사해졌다는 말이  더 쉽다고 말한다

죄 사함 받았다는 말은 당장 확인 안되니 별 문제 없겠지만

만일 많은 사람 앞에서 '일어나 걸어라' 했는데 

행여 못 걷는다면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수 없기 때문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본다면 

그 당시 신성모독죄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이스라엘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 만이 행할 수 있는 죄사함의 선포를 

일개 개인이,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공공장소에서 한다는 것 또한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런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가 느끼는 혼란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씀 하시기 때문이다


본문의 기록을 꼼꼼히 살펴본다면


마 9:5~6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하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말은 곧

'일어나 걸어라' 하는 말이 훨씬 더 쉽지만  그러나 나는 

오히려 더 어려운     '죄가 사해졌다' 는 말을 한다 왜냐하면 

내가 (인자가)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너희로 알게 하기 위해서... 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중풍병자가 일어나 걷는 것은 현대 의학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많은 사람 앞에서 당장에 누워있는 병자를 일으켜 세운다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공공장소에서, 신성모독적인 말을, 공식적으로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사람들에게는 일어나 걸어라 하는 것이나 

네 죄가 용서되었다 하는 것이나 

둘다 모두 다 쉬운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예수에게는 다르다

예수에게는 일반 사람들 과는 달리

일어나 걸어라 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


예수께서는 이미 여러 기적을 통해 

눈먼 자도, 귀신들린 자도 깨끗이 치료한 경험이 있었고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도 예수의 그런 능력을 의심없이 믿었기에

거기까지 환자를 힘들게 메고 왔을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능력으로 중풍병자를 낫게 해주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군중들고 만족할 것이고  시비에 휘말일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반면에 죄사함을 선포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즉각 신성 모독으로 그자리에 와있던 바리새인들과 분쟁에 휘말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일어나 걸어라' 하는 쉬운 말 대신에 

'네 죄가 사해졌다' 라는 어려운 길을 택한다


왜냐하면 단순히 중풍병자를 일어나 걷게 하는 것은

 예수에게 있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자신의 치유사역을 스스로가 기적이 아닌 표적이라고 강조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지금까지 많은 병자들을 치료하신 것은 그들이 너무나도 무지하기 때문에 

알아듣기 쉽게 시청각 교재를 사용하신 것이지 그것이 본질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에게 있어서 기적은 그저 가르침의 도구요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깨우침이었지 병의 치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육신의 병이 아니라

삶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였다


인간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병없이 오래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기쁨으로 누리며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혼동하고 있다. 

단순히 예수 믿으면 병이 낫고, 복 받고, 모든 것이 잘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왜 예수 믿는데 내 병은 낫지 않느냐고 불평을 한다 

왜 예수 믿는데 내 사업이 망하냐고 불평을 한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사역하는 목적을 분명히 하기를 원했다 

예수의 관심은 우리의 사업과 건강에 있지 않다

예수가 진정 원하는 것은 

우리가  매 순간 매순간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즉 우리가 구원받은 삶, 진정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병없이 건강하고 돈많은 삶과   

매순간 만족스러운 감사한 삶이 있다면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건강하고 돈많은 삶?


물론 건강과 돈은 행복한 삶을 누리는데 필요하다

그러나 건강과 돈이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건강과 돈은 단지 행복한 삶의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돈과 행복, 건강과 행복은 양자 택일해야하는 동등한 어떤 것이 아니다

하나는 다른 하나를 위한 수단이요 방법일 뿐이다


수단과 목적이 있다면 무엇을 택해야 하겠는가?

당연히 목적이다 (수단은 목적을 위한 것이니까)

이렇게 간단한 답이지만

돈, 건강 앞에서는 너무나 어렵다

마치 돈과 건강이 곧 행복과 동의어 처럼 여기며 살아왔으니까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사람들이 돈과 건강을 행복과 같은 것으로 여기긴 마찬가지 였던 것같다

그래서 예수도 바로 그점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것이다



우리에게 삶이 허락된 이유는 

돈 많고 병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삶을 기쁨으로 누리기 위해서 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그 기쁨은 진리에 대한 깨달음으로만 가능하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가르침은 바로 이런 뜻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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