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키워보지 않을래?
이력서를 쓸 때 자기소개서의 가장 전형적인 첫 번째 구절이 있다.
"저는 서울에서 1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 문구..
이 지루하다 못해 쉰내 폴폴 나는 문구로 나를 소개하자면 "1인 6 묘" 가정의 유일한 사람인 1인이며
슬하에 고양이 6묘를 책임지고 있는 호적상 단독세대주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혼자서 6마리요? 결혼은요? 어쩌다가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이다.
쉼표도 없이 쏟아지는 그 질문들은 놀라움이기 이전에 안타까움, 연민, 동정 그리고 애써 감추지 못하는 한심스러움이 적절한 비율로 섞여 묘하게 버무려지고야 만다. 대답인 듯 대답 아닌 답변들을 대충 얼버무리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게 가장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라고...
그렇다... 난 어쩌다 1인 6 묘 가정의 유일한 인간.. 아니 닝겐이 되어버린 걸까.....
시간을 거슬러 기억을 더듬어 8년 남짓한 시간을 올라가 보면 나를 이렇게 만든 시발점, 내가 자칭 타칭 고양이언니라 불리게 된 원흉, 바로 어린 새끼 고양이 하루와 나나를 만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우연히도 방송PD의 길에 들어서게 된지 한 7년쯤 지 날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봄햇살이 따스하다못해 따갑기까지 했던 그날, 우리 촬영팀은 경기도 양주에 있는 한 승마장을 찾았다. 주인장 부부는 동물농장을 방불케할만큼 말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을 함께 키우고 있었고 검은 턱시도 길냥이부부 또한 이 승마장의 일원으로 한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동물을 좋아하긴 했지만 길고양이는 매우 낯선 존재였고 그때까지만 해도 사실 별 관심 없는 대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은 왜였을까... 봄 햇살에 엿가락마냥 늘어져 낮잠을 즐기던 길냥이 부부와 올망졸망 병아리떼처럼 몰려서 아장아장 앳된 발걸음을 걷는 새끼 고양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내가 엄마 미소라는 걸 짓고 있지 않았나 싶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는 차에 타려는 순간, 그날 고양이를 이뻐하는 내 모습에 주인아주머니가 뭔가 느낀 것인지
"고양이 한번 키워볼래요? 제일 예쁜 새끼로 골라줄게요~" 하는 게 아닌가...
"네???"
미처 내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인아주머니는 빛의 속도로 종이박스에 담긴 새끼 고양이를 내 품에 안겨 봉고차에 우격다짐으로 실어버렸고 당황한 내 맘과는 상관없이 차는 이미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그저 불과 몇 초 안에, 우사인 볼트보다 더 빠르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속도로 진행이 되었고,
이렇게 그날 우린 급하게 가족이 되어버렸다.
2008년 5월 15일 ...
근 8년이 지나오면서도 잊을 수 없는 바로 그날...
그 주인아주머니를 많이도 원망했던 바로 그날....
그렇게 원망과 불안 속에서 무계획으로 시작된 하루, 나나와의 동거, 이 두 녀석이 벌써 8살 꽃중년 아저씨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