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그의 이름은 "젖소"였다.
흔한 길고양이 무늬중에 검정과 흰색 두가지로 나뉘어진 아이들을 흔히 젖소라고 부른다. 고등어, 삼색이, 노랑이 또는 치즈 등도 그런 무늬를 지칭해서 우리끼리 부르는 은어라고 할 수 있다.
동물병원간호사였던 나는 병원 뒷문 주차장을 주무대로 삼고 있던 한 젖소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녀석은 코에 오서방 점을 달고 사내아이치곤 덩치가 작았고 일미터 이상 나에게 다가오는 법은 없었다. 외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주차장고양이들중에서 짱을 먹을 정도로 날렵하고 특히 왼손 펀치를 날리는 쨉이 아주 볼만한 친구였다.
젖소는 언제나 저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배가 고프지 않을때면 저렇게 병원 안 손님구경을 하곤 했다.
봄이 오면 땅바닥에 뒹구는 꽃잎하나로도 축구를 하고, 여름이면 야외낮잠을 즐겼고 가을바람이 오면 왠지 낭만고양이가 된 것 같은 모습이었고, 혹한이 찾아오면 숨겨놓은 아지트가 있는 것인지 얼어죽지 않고 그럭저럭 잘 버텨주고 있었다. 그렇게 세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을 나와 병원직원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냈다.
흔히 밥을 고정적으로 주는 아이들에겐 특징에 걸맞는 이름을 지어주곤 한다. 언제까지 '무명씨'로만 부를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름을 하사(?)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행위이다. 김춘수의 시 "꽃"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던 의미없는 것이 이름을 불렀을때는 존재의 가치를 서로 인정하고 특별한 사이가 된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내겐 그냥 '젖소'였다. 언젠가 내가 이 병원을 떠나게 되는 날이 오면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었던 이 아이를 잊지 못할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왔기 때문이었다. '참 싱거운 이유다' 싶기도 하겠지만, 이사나 이직으로 더이상 밥을 챙겨주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나는 길냥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 편이다. 내 맘 아프기 싫어 하는 이기적인 행위라 욕해도 별수 없지만, 나에겐 감히 그들의 이름을 짓고 부르는 행위는 영원히 스스로에게 허락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3년이 흐른 어느날 '젖소'는 홀연히 바람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한동안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연신 젖소를 부르며 근무시간 짬짬이 동네를 헤메고 다니기도 여러번, 길냥이들의 생애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
눈이 소복이 내리는 어느 겨울밤,
그와 함께 내리는 눈을 하염없이 함께 바라보며 나눈 대화가 있다.
"젖소야, 너 참 낭만적이다~"
"빨리 봄이 오면 좋겠다..그치?"
"너무 아름다운 밤이지 않니?"
젖소야~ 난 니가 그날 밤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어....
너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걸 이렇게 후회할 줄 몰랐거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너의 이름을 "바람이" 라고 짓고싶어.....
너무 늦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