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장님 아니고 알바생인데요..
퇴사후 5개월째 나는 드디어 알바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며 야심차게 회사를 박차고 나온 나의 계획은 너무나 짧고 허무하게 끝을 향하고 있었다. 다음달 돌아올 카드값과 월세, 관리비,잡비 등등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월급이라는게 들어와야 할 처지여서 마지못해 떠밀리듯이 알바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쩌렁쩌렁) 나이가 어떻게 된다구요?"
"(기어들어가는).....마.....흔....여섯.......이에요......"
"(또 쩌렁쩌렁) 이런일 해봤어요?..결혼했어요?
"(더 기어들어가는) 아..아뇨...직장만 다녀봐서 편의점은....처음..결혼은 .....(왜 물어봐?) 안했어요..."
"(다 들리는 혼잣말).........에...이거 못할텐데......흠....."
마땅한 사무실이 없는 편의점에서는 면접을 볼만한 자리가 라면 시식대밖에 없었는데, 전자레인지옆에 삐딱하게 기댄 점주는 내 이력서를 성의없이 뒤적뒤적 거리며 대놓고 탐탁치 않아 했고,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이 기분나쁜 면접을 가장한 호구조사를 당하는 와중에 나는 열중쉬어 자세를 해야할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야할지 그게 더 고민이 되었다.
게다가 점주는 귀가 잘 안들리는 것인지 필요이상의 큰 발성으로 에? 몇살? 이라며 매장이 쩌렁쩌렁 울리게 나의 면접을 친절하게 손님들께 생중계 해주었다. 이 불편하고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안그래도 쪼그라든 어깨가 더이상 굽어질데가 없을 정도로 굽어진 나는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픈 맘밖에 들지 않았다. 수억을 줘도 여기선 일하고 싶지 않아 여차저차 면접을 마치고 허둥지둥 나왔는데 바깥의 매서운 겨울 칼바람 보다 방금 전 상황에서 느낀 모멸감과 수치심이 살을 더욱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퇴사를 하면서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알바뛰면 세끼는 아니어도 두끼는 먹고 월세는 내고 살수 있을테니 하면 되지라는 나름의 귀여운 계획은 있었다. N잡러니 프리터족이니 하는 이들의 영상도 꽤나 인기가 있었고 편의점 알바 주 5일 8시간과 서너시간 숏타임 카페나 식당 알바 두개정도 뛰면 풍족까지는 아니어도 기초생활비 정도는 될테니 또다른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 전까지는 임시방편으로 삶을 유지할수는 있을거라는 생각이었다.
알바를 한지 4개월여가 흐른 지금 이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것 같다.
이 계획은 철저히 20대~30대 학생과 취준생 정도에 적용되는 시나리오라는 것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처럼 40대 중반의 비혼여성이 할수 있는 알바는 나의 희망업종인 카페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고 그 흔한 편의점마저 점주의 선호순위에서 한참 떨어진 집단이라는것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이십여년간 회사만 다녀봐서 이 알바라는 세계속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다. 이력서를 거의 100군데 가까이 내보고서야 그나마 면접제의가 오는곳은 열댓곳 내외정도 였고 그나마 연락이 오는곳은 삼겹살, 순댓국, 감자탕 등 우리가 흔히 식당이모라 부르는 아줌마들이 일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아줌마라니...나름 동안이라는 얘기도 종종 듣고 40대로 보는 사람도 반반정도이다 보니 나는 스스로를 이모 내지는 아줌마 집단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요즘 트렌드에 맞게 고양이를 반려하는 싱글 비혼녀라고 스스로를 간지나게 포장하고 있었던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의 모습과 세상이 나를 정의하는 모습사이의 간극이 이리도 큰것인줄 순진하게도 나는 알바를 해보기전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세상은 나를 식당이모로 보지 카페 알바언니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어느덧 알바생이 된지 4개월정도가 흐른지금 그래도 운이 좋게 40대중반인 나를 써준 유일한 카페가 있었고 더욱 운좋게 나보다 두살이 더 많은 언니 알바생과 같은 타임에 일을 하게 되어서 너무나 만족하며 근무를 하고 있다. 둘다 정리정돈과 위생에 민감하고 니일내일 따지지 않는 성격이라 같이 일을 하면서 다른시간대 MZ 알바들 일을 왜 이렇게 이기적으로 하냐며 험담하며 일하는 재미가 정말 꿀이다 꿀..!
또 한가지 재미가 있다면 어린 친구들이 알바생으로 있을땐 손님들이 여기요, 저기요..라고 부르지만 내가 있을때는 99퍼센트가 " 사장님~" 이라고 부르며 뭔가 조심하는 느낌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꽤 어린친구들은 "테이크아웃컵으로 바꿔주세요, 휴지가 없어요, 포크 하나 더 주세요" 등등의 말을 할때면 꽤나 공손해지는 태도를 느끼곤 하는데 속으론 나 나름대로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것 같다. 굳이 먼저 나서서 "나 사장님 아니고 알바생이에요"라고 고해성사를 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매니저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다른 시간대 어린 알바생들이 무례한 학생 손님들과 언쟁을 벌인 일이 많다고 하는것에 비해 나의 중년 마스크가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줄은 몰랐다.
늦깍이 알바생으로서 고용하는 사장님과 점주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여느날처럼 N잡을 위해 알바사이트를 뒤지던 중에 '10대, 40대는 채용하지 않습니다' 라는 문구가 적힌 탕후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공고중에는 지원가능 연령을 기재해놓는 곳이 있고 연령, 학력 무관이라고 기재해놓은 곳이 있지만 (실상은 무관하지 않다는 점^^) 대놓고 세부내용에 이렇게 써놓은 것을 보니 당사자인 나는 화가 나기보다는 꽤나 서글펐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10대는 미성년자이니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쳐도 쳐도 40대가 무슨 죄로 이런 취급을 받아야하나 싶어서였다. 사장 입장에서야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이력서 검토를 안하면 그뿐이지 이렇게까지 보란듯이 속마음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별것 아닌 이 문구 하나로 인해 알바를 간절히 필요로하는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