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
“하나 님은 뭘 좋아하세요?”
고요했던 마음에 3어절의 쓰나미가 미친 듯이 밀려왔다.
질문을 받고 나서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기에 말문이 막혔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
하지 않고 살아서 더욱 막막했던 것 같다. ‘좋아한다는 건 뭐지?’, ‘얼마만큼의 좋은 느낌이 들어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지?’, ‘좋아함의 크기는 무엇이지?’, ‘요즘 나는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살지 않는데’ 이런 생각들이 두둥실 떠다녔다.
대화는 어떻게 마무리되었지만, 질문은 나에게 떨어지지 않았다. 과거에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떠올려봤다. 좋아하던 음식으로 카레가 있었다. 카레를 너무 좋아해서 하루 3끼 일주일 내
내 먹었다. 그러고 나서 카레는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 피하고 싶은 음식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카레를 피한지 10년. 이제는 카레를 먹긴 한다. 다만, 예전과 같은 좋아함이 아니라, 누군가가 권
한다면 피하지 않을 정도다.
카레 말고는 성악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평생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중학생 때 성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행히 재능이 조금 있어 성악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그
렇게 입시를 위한 성악을 7년 정도 하다가, 성악과에 입학했다. 입시 곡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과 행복함에 빠져 전보다 더 연습했다. 학기 중에는 연습실 문이 닫
히기 전까지 연습했고, 방학에도 기숙사 생활을 하며 연습했다. 하지만 이렇게 좋아하던 것도 결
국엔 마음을 접었고, 지금은 다른 것을 하며 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잘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나만 없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
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데, 나에게는 좋아하는 것들이 없어 삶
이 그다지 행복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나이 먹도록 나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여러 가지 시도와 경험을 하면서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되어 좋아하는 것
과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같이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거지? 나는 좋아하는 게 정말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며 점점 더 혼란
에 빠졌다.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깊이는 얼마나 돼야 하는지, 어떤 느낌이 들어야 좋아한다고 말
할 수 있게 되는 건지 감이 하나도 잡히지 않았다. 성악이나 카레를 좋아했던 것만큼의 깊이라면
이젠 없고, 그렇다고 약간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감이 안 잡혔다. 분명히 좋아하는 것이 있을 텐데 좋다고 느끼는 그 감정이 도대체 어떤 건지 몰랐다.
“'엄청 좋음’은 ‘엄청 싫음’이 될지도 모르니까 ‘조금 좋음’ 정도로만 좋아해 주세요1.” 그림책 작가
님의 에세이에 이런 글이 있었다. 너무 많이 좋아하다보면 작은 문제로 엄청나게 싫어질 수 있으
므로 조금만 좋아해서 좋아함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내용이다. 이 글을 읽고 머리를 ‘탁’ 쳤다.
좋아한다는 건 엄청난 크기의 감정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던 것이었다. 엄청 좋음만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작은 좋아함은 좋아함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놓치고 있었다. 작은 좋아함도
좋아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서 도대체 작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혼자서는 답이 안 나와서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다녔다. 한 분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강제가 아닌데 계속하고 있으면 그것도 좋아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습관화돼서 좋아한다고 못
느낀 걸 수도 있어요.” 이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좋아하는 건 내가 억지로 시
간을 내서 해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강제가 아님에도 계속하고 있던 것들도 있었는데 억지
로 시간 내서 하는 것이 아니므로 좋아한다고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강제가 아닌데도 습관적으
로 하고 있다는 것의 의미는 내가 어느 정도 좋아하니깐 많이 하게 되었다는 거였다.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하다 보니 습관화까지 되었다는 걸 몰랐다.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하늘을 봤을 때, 이쁜 꽃이 있을 때, 갑자기
세상이 너무 이뻐 보일 때면 사진을 찍는다. 그 순간에만 볼 수 있는 찰나여서 좋다. 나중에 그
사진을 봤을 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서 좋다. 그때의 분위기와 상황에 대해 자연스럽게 떠오르
는데, 그러면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좋아한다.
운동은 최소 주 2~3회 한다. 운동할 때 목표 자극 부위에 자극이 가는 느낌이 좋다. 힘들지만
무언가 해냈다는 느낌이 좋다. 한계까지 몰아붙일 일이 없는데, 운동은 한계까지 가는 것 같아서
좋다. 변해가는 몸 모양을 보는 것도 좋다. 체력이 점점 좋아지는 것도 좋다.
책이나 기사를 읽고 나의 생각은 어떤지 도출해 내는 것도 자주 한다. 새로운 무언가를 알게
되는 게 좋다. 무언가를 읽었을 때 그에 대한 인사이트가 있는데 이를 나 자신에 대입하는 것도
재미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다. 생각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
기는 것도, 나중에 보는 것도 재미있다.
돌아보니 습관처럼 하고 있던 것들이 많았다. 습관처럼 하고 있던 이유도 좋거나 재미있어서였
다. 다만, 엄청 좋음이 아니었을 뿐이다. 누군가가 “적당히 좋아해야 꾸준하게 살 수 있다”라고 이
야기한 것처럼, 습관화된 것들은 적당히 좋아해서 습관으로 굳어진 것들인 것 같다.
다시 “하나 님은 뭘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젠 고민하지 않고 바로 이야기할 수 있
을 것 같다.
“저는 이런 것들을 좋아해서 꾸준히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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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짝 욕심이 생겼어]-요시타케 신스케의 책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