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선생님에게 배우다

무엇을 어떻게 정리하고 수집하여 확장할지에 대하여

by 인증중독자

딱 길을 잃기 좋은 때이다.

바탕화면에 깔린 수많은 폴더트리 속에서 길을 잃는다.

닥치는대로 스크랩해 놓은 노트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리고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내 머리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러니깐 내가 답답한 것은 이것이다.

매일 매일 생산되는 나의 경험과 지식들을 축적할 만한 마땅한 그릇(system)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전과 다른 속도 때문에 그저 벌어지는 일을 쫓는 것만해도 숨이찬데,

그저 쫓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걸 체감하고 있기 때문에 조급하기만 하다.


쏟아지는 정보속에서 나는 가치판단의 기준조차 없다는 것에 절망한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가장 급해보이는 불을 끄며 오늘 하루를 모면하는 것이다.


길을 잃지 않는 완벽한 가이드와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꿈꾼다. 혹은 만들고 싶다고 꿈꾼다.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250년 전의 다산 선생님은 이 어려운 것을 해낸 분이다. (정말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그는 경전의 미묘한 뜻을 낱낱이 파헤친 걸출한 경학자였다. 그 복잡한 예론을 촌촌이 분석해낸 꼼꼼한 예학자였다. 목민관의 행동지침을 정리해낸 탁월한 행정가요, 아동교육에 큰 관심을 가져 실천전 대안을 제시한 교육학자며, 지나간 역사를 손금 보듯 꿰고 있던 해박한 사학자였다. 그래서 나는 그야말로 현대가 요구하는 통합적 인문학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화성 축성을 설계하고 기중기와 배다리와 유형거를 제작해낸 토목공학자요 기계공학자였으며, '아방강역고'와 '대동수경'을 펴낸 지리학자였고, 한편 '마과회통'과 '촌병혹치'등의 의서를 펴낸 의학자였다. 그래서 과학자인가 싶어 보면, 또다시 그는 형법의 체계와 법률 적용을 검토한 법학자로 돌아왔고, 어느새 속담과 방언을 정리한 국어학자가 되어 있었다. 백성의 아픔을 함께 아파한 시인이자 날카롭고 정심한 이론을 펼친 문예비평가였다.
그는 결코 고지식한 지식인이 아니었다. 이론과 현장을 아우를 줄 알았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주자하고도 맞섰고, 실용에 맞지 않으면 임금 앞에서도 승복하지 않았다. 그의 도저한 자신감과 자기확신을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그는 누구의 말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 어떤 권위 앞에서도 주눅드는 법이 없었다. 오직 스스로 따져보아 납득한 것만 믿었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늘 합리적이었고 실천 가능한 대안이었다. 그가 가장 혐오했던 것은 현실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공리공론이었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_정민_p.13-14


알맹이 없이 그럴싸한 일들에 시간을 너무 많이 쏟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본다.

들으나 마나한 쓸데없는 주장을 세우거나,

그저 허접스런 이야기를 하며 깊이 없이 먼지만 날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끄러워진다.


한동안 정약용 선생님에게 제대로 전수받으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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