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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만추 May 04. 2020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에

나는 조금 늦게 유치원에 들어간 편이었다.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엄마에게 이유를 묻기도 전에 ‘나도 혜영이가 다니는 유치원 보내줘.’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엄마 손을 잡고 혜영이가 다니는 유치원을 찾아갔지만, 그곳은 생각만큼 재밌는 곳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검은색 볼펜으로 그려주는 점 없이는 지읒과 치읓을 쓰는 건 어려웠고, 아무것도 없는 네모 칸을 혼자 힘으로 채워 넣어야 할 때는 울고 싶었다. 사람 머리를 빨간색으로 칠했다고 꼽주는 7세 반 언니 때문에 위축되기도 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엄마가 야쿠르트 로고와 개구리 그림이 박힌 도시락을 주면서 ‘유치원 가야지?’라고 말했을 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나에게 오늘 유치원에 가기 싫으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더니 말했다. “그럼 오늘은 그냥 집에서 놀래?”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돌덩이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신이 나서 이불 위를 뒹굴었다. 방문 틈으로, 유치원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와 TV 소리를 지워버렸다. 엄마의 목소리가 컸다기보단, 엄마의 쿨한 제안이 TV보다 더 재밌었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그날 처음으로 자체 휴강의 기쁨을 맛봤다.      


7살이 되자 엄마는 나를 병설 유치원에 보냈다. 병설 유치원이 뭐냐고 묻는 내게, 엄마는 초등학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라고 대답해 줬다. 병설 유치원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엄마가 나를 불렀다. 유치원이 끝나면 줄을 서야 했다. 정문으로 가는 줄, 후문으로 가는 줄. 우리 집은 정문 쪽에 있었지만, 엄마는 나에게 유치원이 끝나면 후문으로 가는 줄에 서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반 선생님께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전했다.     


후문으로 빠져나와, 길을 두 차례 건너고 여러 가게를 지나면 동생이 다니는 유치원이 있었다. 동생이 다니는 유치원은 피아노 학원과 미술학원도 겸하는 곳이었다. 나는 유치원이 끝나면 곧장 동생이 다니는 유치원으로 향했다. 때마침 유치원 수업이 끝난 동생을 데리고 함께 피아노를 배우고 그림을 배웠다. 그리고 동생과 함께 노란색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엄마도 아빠도 없었다. 병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할 즈음 엄마는 옆 동네로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가 어디선가 일거리라며 가져와 집안 가득 쌓아두던 플라스틱 부품과 스티커도 그즈음부터 찾아볼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동생과 TV를 보거나 옆집에 사는 시내와 놀다 보면, 엄마가 혹은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다 계획이 있었다. 추측하건대 동생을 괜히 피아노 학원과 미술학원을 겸하는 유치원에 보낸 게 아니었을 것이다. 나와 동생과 함께 봉고차를 탔던 아이 중 한 명이 자신의 엄마도 우리 엄마처럼 일을 다닌다고 했었다. 아마 그때 우리와 함께 봉고차를 기다리던 아이들 대부분이 그러지 않았을까.     


유치원이 끝나고 다섯 살짜리 동생 옆에 붙어있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양치를 하는 것처럼 어느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됐다. 엄마와 나는 좋은 파트너였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생각엔 그렇다.      


그렇게 1년이 흘렀고, 유치원을 졸업하는 날이 왔다. 엄마는 일자리에 양해를 구하고 졸업식에 참석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엄마의 손을 잡고 후문으로 나왔다. 엄마가 다시 일을 하러 돌아가야 했으니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생 옆에 붙어있어야 하는 미션을 수행하러 동생이 다니는 유치원으로 향해야 했다.      


엄마와 헤어지기로 한 신호등 앞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섯 살, 유치원을 일부러 빼먹었던 그 날처럼 엄마가 물었다. 가기 싫으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냥 집에서 놀자는 엄마의 쿨한 제안을 기다렸지만, 그건 다섯 살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가 일을 다니지 않던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안 가면 안 돼, 엄마?

졸업식이라고 설득도 해보고 졸라도 보고 애교도 부려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자 엄마는 내 어깨를 살짝 밀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겼다. 신호등을 다 건널 때까지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길, 그게 뭐든 동생에게 안 가도 되는 일이 생기길 바랐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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