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만추의Write with me (7)
도착지를 입력하세요
도착지를 입력하는 칸에서 커서가 깜빡, 다시 또 깜빡.
지난 여행지는 지도에는 없는 곳이었다. 지금 사는 곳과 같은 듯 다른 평행세계를 다녀왔었다. 지도에 없는 곳을 갈 때면,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았고,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해야 해서 힘들었다. 이번 행선지도 미지의 세계가 될까?
커서가 여전히 깜빡, 깜빡.
좀처럼 마음을 정할 수 없는 건, 선택지가 너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선택지를 좁힐 요량으로 몇 가지 조건을 끄적여 보았다.
1. 바다가 있을 것
2. 다른 나라에 침략당해 언어와 문화를 빼앗긴 역사가 있을 것
깜빡이던 커서가 글자를 품기 시작했다.
ㅅ
ㅡ
ㅋ
ㅗ
ㅌ
ㅡ
ㄹ
ㄹ
ㅐ
ㄴ
ㄷ
ㅡ
말을 타고 스코틀랜드의 산지를 누비는 인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컬로든 전투와 타탄체크, 게일어와 레드 코트들. 작가가 아웃랜더 엄청 재밌게 봤나 봄.
아 깜짝이야.
최근에 보고 있는 드라마 <아웃랜더>에 깊이 빠져들었나 보다. 이런 곳은 여행지로 금물이다. 내 옷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옷을 입은 글이 탄생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로 갈 생각에 들떴던 마음을 꾹꾹 누른다.
도착지는 다시 빈칸이 되고, 커서만 깜빡 또 깜빡.
어디로 가면 좋을까. 누군가 말하길, 좋은 공간이란 인물에게 낯선 공간, 인물과 어울리지 않아 갈등을 일으키는 공간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어떤 작가는 신들만 이용할 수 있는 온천으로 떠났고 또 어떤 작가는 9와 4분의 3 승강장으로 가, 기차를 타고 마법 세계로 떠났다.
나는 이번에 어디로 가면 좋을까. 바다가 있는 공간. 누군가의 침략을 받은 공간. 내지와 외지. 본토와 식민지. 내지인과 우치난쥬. ‘우치난쥬?’ 글자 위로 쌓여있던 먼지를 털어내듯, 머릿속으로 튀어 올라온 그 단어를 입 밖으로도 뱉어 본다.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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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지(Departure) : 경기도 수원
도착지(Arrival) : 오키나와
좌석(Seat) : 창가 앞 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