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세계의 덫
거대한 철문 안으로,
소년 한 명이 던져진다.
사방이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어디인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곳.
이 공간은 구불구불 길들이 엉키어 있지만, 출구는 알 수 없는 미로이다.
소년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모여 사는 정원 한가운데서 눈을 뜬다. 지워진 과거와, 여기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본능만 남은 채.
미로의 벽돌은 날마다 방향이 바뀌어 길을 기억할 수 없으며, 미로 안에는 살아있는 괴물들이 소년들을 언제고 노리고 있는 상황.
살아남기 위해서는 죽음을 무릅쓰고 벽돌 사이를 지나며 출구를 찾아야 한다. 누군가는 미로 속으로 사라지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곳에서.
'이 미로는 무엇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그들은 깨닫는다. 이건 단순한 구금이 아니라는걸.
이것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실험장이며 그들의 모든 선택과 행동, 희망과 절망의 모든 순간이 관찰되고 분석되며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을.
결국 소년들은 미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게임이 시작되는 것에 불과했다.
영화는 그렇게 텁텁한 찜찜함을 남기고 막을 내린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 보았던 <메이즈러너> 영화의 장면들이다. 내가 아는 한,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시 영화를 보는 내내 숨을 막히게 하는 불편함과 두려움이 엄습했던 기억이 나는데.
온 사방이 막히 미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같이 죽음을 무릅써야 하는 생존의 고투에 그러했고.
철저히 계획된 판 안에서 모든 것이 통제. 감시되는 소름 끼치는 상황에 그러했으며.
빠져나온 그 순간마저도 해방이 아닌 또 다른 굴레의 시작이라는 그들의 결말에 그러했다.
그럼에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현실일 수 없기에 그 당시 느꼈던 잠깐의 공포 역시, 그 순간에 머물렀다가 기억 너머로 사라졌다. 당시 나에게 이 영화는 그저 상상의 결과물로써, 감상의 대상었지 현실 세계와는 무관한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기억 저편으로 희미하게 사라졌던 영화가 지금에 와서, 2025년을 살아가는 내 머릿속 한가운데로 떠오른 이유는.
나에게 이것은 더 이상,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픽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스토리로만 그쳤다면 좋았을 법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이제부터는, 우리가 빠져든 소셜미디어라는 가상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SNS의 그림자는 <메이즈러너>의 주 무대인 미로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 온라인 세계를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지배자, 알고리즘.
그리고 그 알고리즘을 통제하는 가장 뒷배후의 존재.
내 눈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피로를 일으키는 온갖 콘텐츠를 볼 때마다.
그럼에도 한 번 들여놓은 발을 쉽사리 빼내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숫자와 반응이 그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임이 드러날 때마다.
나는, 극단적인 기술 비관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문명을 크게 누리는 것에 누구보다 감사함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한편으로,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기술의 발달을 마냥 손 벌려 환영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 기술 문명의 한복판에 있음으로, 그 그림자가 더 잘 보이는 것일까.
인정 욕구.
소속 욕구.
비교 욕구.
표현 욕구.
자극추구 욕구.
가상 세계에서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관계 속에서 갖게 되는 모든 욕구가 가장 즉각적이고, 가장 폭발적이면서도 가장 중독적으로 충족된다.
철저히 인간의 깊은 욕구를 기반으로 설계된 세계 안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스스로 의식하지 않는 한.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중독'이라 하지 않는가. 내 의지가 아닌 때조차도, 스크린에 빠져들어 스크롤을 넘기고 올리며 가상 세계의 미로를 헤매고 있는.
게다가 그 세계는 우리를 현실로 다시 놓아줄 마음이라곤 갖고 있지 않다.
그 세계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일 뿐.
이 세계에 오래 머물게 하고, 머리에서 생각이 떠나지 않게 하며, 우리의 모든 생각과 의식을 지운 채 오래도록 즐기게 하는 것.
우리의 선택, 취향, 움직이는 경로 이 모든 것은 치밀하게 학습되어, 우리를 옭아매는 장치에 사용된다.
미로는 매일 바뀌고 빠져나갈 출구란, 애초에 만들어지지 않았으리라.
이것이 바로 가상 세계의 무서운 그림자다.
우리는 편리함과 함께 모두가 연결되는 넓은 세계를 얻었지만 동시에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에 갇힌 것일지 모른다. 연결되면 될수록 더욱 갈구하고 갈망하며 끊어짐을 두려워하게 된 채.
기술은 우리에게 자유를 약속한다.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겠다고.
하지만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는 그것조차도 이미 예측되고 계획된 유도일 수 있다면?
기술이 약속한 자유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사슬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사슬을 교묘하고 주도면밀히 제어하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큼은 의식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영화 속 소년들이 서로를 지키며 미로의 비밀을 하나씩 밝혀갔듯이, 우리도 이 미로 속에서 적극적으로 길을 찾아가야 한다.
기술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재정립하며, 우리의 주체성과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
기계에 내맡겼던, 스스로 선택할 권리.
그 선택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다시 찾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그리고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것에 그 어떤 것보다 충실해야 할 것이다.
우리를 속박하는 손에 들린 이 작은 기계를 한 번쯤은 내려놓고.
손가락 터치 한 번이면 전 세계와 연결되는 행동을 한 번쯤은 멈추고.
세상을 오감으로 감각하는 일에.
내 눈앞의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일에.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것에.
온전히 이 현실에 머물러 보는 것에.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적극적으로 사유하며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일들에 마음을 더욱 두는 것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충실해야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통제하는 미로 속에서, 헤매지 않기 위해서.
깊게 숙고하고 스스로 선택하며 길을 만들어가는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기술 문명과의 관계 속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 극단적인 단절도, 극단적인 수용도 옳은 태도는 아니다.
기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
디지털 세계 속에서도 나만의 기준과 선택지를 스스로 세우는 것.
미로를 헤매는 객체가 아닌, 기술의 주인이 되어 미로를 지도로 바꿔 버리는 주체로 다시 서는 것.
우리가 앞으로 지켜가야 하는 건, 이러한 것들이 아닐까.
현실 세계로 빠르게 돌아와, 우리의 주체성을 회복하자.
우리를 둘러싼 가상 세계의 그림자를 의식하고.
하나하나 나의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각성에서부터 우리의 자유가 다시 시작될 것이라,
나는 믿는다.
* [하날빛의 글 정원]
글로 이끈 삶을, 글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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