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나안하나이하나 Feb 18. 2022

아줌마들은 오늘도 줌바를 춘다_화려한 언니들

 최근 헬스장을 두 곳이나 다니고 있다. 두 곳'이나'라고 쓴 건 내가 원래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는 작심삼일의 표본이었다.

 작년 초, 남자 친구와 이별을 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커브스'라고 여성 전용 30분 순환 운동을 하는 곳이었는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30초마다 이동을 하며 근력과 유산소 운동을 반복해야 하는 시스템이 의외로 잘 맞았다. 운동 시간도 35분 정도라 부담도 없었다. 드디어 내 인생에 맞는 운동을 찾았구나 싶었다. 코시국이기도 하고 이별 후 텅 빈 마음과 시간의 공백을 메우려 별생각 없이 다니다 보니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났다. 그간 나름 살도 많이 빠지고 건강해졌다. 4살 연하의 남자 친구도 만났다... 가 헤어졌다. 짧고 깊은 연애를 마치고 나는 다시 마음과 시간의 공백을 운동으로 메워보려 했다. 하지만 이제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공백이 쉽사리 메워지질 않았다. 레벨업이 필요했다.  



 3개월에 10만 원 하는 헬스장을 하나 더 끊었다. 수많은 동네 헬스장들 중에 이곳을 택한 이유는 GX로 요가와 줌바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요가도 배우고 싶고 줌바도 하고 싶 학원은 레슨비가 너무 비쌌다. 한 달에 3만 원 꼴로 요가와 줌바를 함께 배울 수 있는 이곳이 내겐 딱이었다. 웨이트에 빠진 근육남들을 눈치껏 구경하는 건 덤이다. 그래 봤자 다 조카뻘이겠지만. 수업은 격일로 진행된다. 하루는 매우 calm 한 내가 되었다가 하루는 매우 energetic 한 내가 된다. 수업이 없는 금요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8시에 나는 다른 가면을 쓴 사람이 된다. 요가와 줌바, 둘 다 재미있지만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줌바를 꼽겠다. 줌바 수업은 춤추는 것도 재밌지만 무엇보다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오후 8시가 되기 10분 전, 사람들이 하나 둘 GX룸으로 모인다. GX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보통 이런 곳엔 텃세라는 게 있다. 여기는 선생님을 중심으로 3열 횡대로 서는데 1열엔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터줏대감 언니들이 선다. 방해물 없이 거울 속의 내 모습에 심취할 수 있는 자리다. 1열 언니들의 옷은 화려하거나 멋있다는 특징이 있다.


1열 중앙 우측 언니는 무늬 있는 상의를 좋아한다. 호피나 달마티안 무늬 같은 재킷을 입고 춤을 추다가 어느 정도 몸이 달궈지면 재킷을 허리춤에 두르고 딱 붙는 민소매 탑을 드러낸다. 풍만하게 드러난 언니의 가슴과 팔뚝살이 줌바 댄스만큼 열정적으로 흔들린다. 무늬 언니는 춤도 제일 잘 춘다. 머리만 까딱, 손만 까딱하는 나 같은 하수와는 다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정말 열정적으로 몸을 쓰고 움직인다. 맨 앞 중앙에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무늬 언니를 보면 나도 덩달아 힘이 난다. 나는 무늬 언니의 춤 선과 풍만한 가슴이 부럽다.

 

무늬 언니 옆자리 언니는 핑크색을 좋아한다. 핑크 레깅스에 핑크 삭스를 올려 신고 흰색 크롭탑을 입는다. 저 나이에 뱃살 하나 없는 게 대단하다 싶은데 그건 언니 스스로도 자신 있어하는 포인트 같다. 크롭탑을 입는 사람은 우리 수업에서 언니가 유일하다. 가끔가다 살짝 올라간 크롭탑 사이로 희미한 복근도 보인다. 키는 작은데 비율이 좋은 핑크 언니는 와인색 포니테일 머리가 특징이다. 춤출 때마다 와인색의 머리끝이 살랑살랑, 찰랑찰랑 움직인다. 그 뒷모습이 참 예쁘다.  


핑크 언니 옆자리 언니는 항상 15분 정도 지각을 한다. 일이 항상 그 시간 정도에 끝나는가 보다. 언니는 항상 캡 모자를 뒤집어쓰고 나타나 꾸러기를 연상시킨다. 꾸러기 언니는 마른 체격인데 옷은 힙합 스타일이다. 펑퍼짐한 검정 상의에 검정 추리닝 바지를 입는데 포인트는 바지 한쪽을 무릎까지 올려 입는 거다. 반대편 주머니에 손수건을 길게 늘어뜨려 달고 있다가 땀이 나면 슬쩍슬쩍 닦는다. 우리 선생님도 캡 모자를 뒤집어쓰고 바지에 손수건을 항상 길게 늘어뜨린 차림인데 그게 줌바의 기본 복장인 건지 꾸러기 언니가 선생님을 따라한 건지는 모르겠다. 꾸러기 언니는 내가 아는 동생을 닮았다. 그 동생은 아주 곱고 참한 인상인데 처음 꾸러기 언니를 봤을 때, 그 동생인가 싶어서 놀랐다. '얘가 이런 취미가 있었어?' 흠칫 놀랐다가 아니라는 걸 알고는 '그럼 그렇지.'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꾸러기 언니 곱고 참한 얼굴에 힙합 복장을 하고 나타날 때면 나는 어딘가  어색하다.


그 외에 탱크톱 브라에 시스루 그물망을 걸친 언니도 있고, 벨리 댄스 옷에서 볼 법한 화려한 스팽글이 달린 상의를 입고 새파란 레깅스를 입는 언니도 있다. 스팽글 언니는 수업 시간 전에 항상 거울을 보며 이전에 배운 동작들을 복습한다. 나는 스팽글 언니의 열정을 본받고 싶다.       


 무늬 언니, 핑크 언니, 꾸러기 언니 그리고 시스루 언니와 스팽글 언니를 포함한 수업의 대부분의 언니들이 40~50대다. 하지만 GX룸 안에서만큼은 나이불문 모두가 젊고 자유롭다. 나를 드러내고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50분 동안만큼은 오롯이 자유로운 내가 된다. 춤을 잘 추든 못 추든 상관없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라틴의 열정과 자유를 만끽하면 그만이다. 나는 그런 줌바 시간이 너무 좋아서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이 기다려진다.


다만, 통상적으로 GX룸 안에서 불허하는 자유가 하나 있긴 하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라면 이미 눈치챘겠지만 당신이 GX 첫 경험자라면 1열 중앙 자리만큼은 욕심내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뉴페가 분위기 파악 못하고 1열 중앙에 감히 섰다가는 주변 1열의 언니들에게 '여기 자리 있는데요?'하고 한소리를 듣거나 수업 내내 따가운 눈초리를 견뎌야 할지 모른다. 그 약속 하나만 지킨다면 GX 룸 안에서 우리는 모두 젊고 자유로울 수 있다.


나는 아직 3열에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