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일 수 있길

<사이버펑크>를 보고

by 하난

그곳은 국가가 사라진 곳. 기업만이 남은 채, 생물학적인 몸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곳. 이건, 그런 곳에 내던져진 한 소년의 이야기.

데이비드는 평범했다. 평범하게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세탁 가능 여부에 매달리고, 구식 기계를 장착한 채 학교에서 비웃음 당하는, 그런 평범한 소년이었다. 소년의 삶이 뒤흔들리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구식 기계가 말썽을 부려 반 전체를 뒤업었던 순간? 갑작스런 갱단의 습격에 엄마가 사망한 순간? 죽어가는 엄마를 확인하고도 보험 가입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엄마를 두고 떠나는 트라우마팀을 목도한 순간? 아니면..

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어느 순간, 그는 사이버 펑크가 됐다. 의뢰를 받고, 사람을 죽이고, 루시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죽었다.

<사이버 펑크>는 특유의 묘하고 아름다운, 투명한 색감과 덧그린 듯한 작화가 인상적이다. 빠른 듯 느리게 전개되는 화면 전환과 몽환적인 장면들, 귀를 간지럽히는 음악은 하나의 예술같다. 특히나 현실감 있는, 그러나 미래적인 배경은 눈을 즐겁게 한다. <사이버 펑크>는 작화만으로 이미 충분히 즐겁다.

게임 사이버 펑크에 대해 들은 내게 솔직히 애니메이션 사이버 펑크는 게임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다. 다소 진부한 스토리에, 이해하려면 할 수 있지만 확 와닿지는 않는 감정선, 무엇보다 주인공의 무매력이 큰 걸림돌이었다.

그럼에도 사이버 펑크에는 논할 부분이 있다. 모든 장기가 바꿔끼워지는 곳, 경험마저도 돈으로 뇌에 각인시킬 수 있는 곳. 데이터칩을 이용해 몸을 갈아끼울 수 있는 곳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하나의 데이터에 불과하다면 인간은 인공지능과 무엇이 다른가.

사실 이 문제는 AI가 발전하며 계속되어 논의되어 온 부분이다. 그리고 그 논의의 과정을 거치며 나는 AI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AI의 생존방식은 우리와 너무도 흡사하다. 기존의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걸 학습할 수 있는 '학습력', 학습한 걸 조립해 새로운 걸 창조할 수 있는 '창의력'. 사실 이 핵심적인 두 가지는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이에 혹자는 '윤리'를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윤리적인 존재이며, 이는 날 때부터 당연히 아는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우리가 윤리를 학습하기 전에, 윤리란 존재했을까. 모르겠다. 나의 짧은 식견으로는 윤리조차 '학습'의 과정이다. 사랑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다움', '개별성'을 논해볼 때도 이와 유사한 결론이 나온다. 약간의 차이가 개성이며, 그것이 그다움을 구성한다면, AI들도 다소의 차이를 보이며 무언가를 구성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에게도 개별성은 존재한다.

나는 고루한 비관주의자라 나면서부터 깨끗한, 도덕적인, 사랑이 넘치는 인간상을 상상할 수 없고, 당연한 맥락으로 인간과 AI의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어째선지 간절히 이 둘이 다르길, AI와 나는 엄연히 구별되는 주체임을 확인받고 싶다. 그러니 부디, 내게 알려주길 바란다.

기계가 우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언젠가 다가올지도 모르는 사이버펑크의 세상, 그 전에 우리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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