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과 변명>을 읽고
유난히 따스했던 날들 중 드물게 추웠던 날, 나는 서울로 향했다. 절친한 친구가 기어코 대학을 졸업하고야 말았던, 바로 전날의 일이었다. 부산에 적응해 얇은 오픈 숄더와 아빠에게서 뺏은 후드집업 하나를 둘러 입고 다니기엔 꽤나 쌀쌀한 하루였다. 만날 때마다 추위에 떠는 날 위해 목도리를 준비해준 친구에게 감사한 날이기도 했다. 졸업식을 앞두고 우리는 서점으로 향했다. 책을 사랑하는 우리에게는 만날 때마다 하는 의례 같은 것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준비성이 철저한 그녀를 따라 간 서점은 작았다. 크게 유명한 책도 없고, 독립서점처럼-맞을 지도 모른다- 처음 보는 류의 도서가 많았다. 이번에는 지르지 말아야지, 얼마 전 샀던 세 권의 책을 생각하며 부러 대충 둘러 보고 있는데, 기어코 하나의 책이 내 시선을 사로잡고 말았다. 그리고 펼치자마자 나오는 문구..
"뻔한 것은 뻔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바로 그 이유로 뻔한 것은 뻔하지 않게 이야기를 할 필요가있다. (...) 우리가 듣는 것은 언제나 전형성의 독특한 배치다."
- 증명과 변명, p.7 -
서사의 중요성, 클리셰의 이유 따위에 매료되어 있는 내게 이런 문장이라니.. 이건 사라는 신의 계시일 터. 무시할 수 없다. 책이 계산대에 오르고 카드가 오가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책을 구입한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는데 그건 <증명과 변명>이 20대 청년 남성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 책은, '우진'이라는 죽음을 계획한 한 남성의 삶을 통해 20대 청년 남성에 대해 조명한다. 퍽 신기했다. 여성, 퀴어, 장애인 등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에세이는 많이 봤어도, 평범한 기득권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애인과 싸운 탓에 그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에 불타던 내겐 더없이 적합한 에세이였다.
책은 흥미로웠다. 유성애적인 사회에서 성관계를 '강요'받는 남성들, 정치에 의해 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외주 받는 남성들 등. 전혀 생각지 못한 관점으로 20대 남성을 조명하였다. 그러나 그를 통해, 우진을, 20대 청년 남성을 이해하게 되었느냐 물으면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그들에 대한 의문점은 많고, 우진에 대해서는 갈피를 잡기 힘들다. 도리어, 이 이야기는 내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우진이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지는 못하겠으나, 적어도 그와 나는 닮은 부분이 많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우진에게 가장 중요한 단어 하나를 말하라하면, '인정'이다. 그는 아버지로부터의 불인정으로 인해 인정받고자 하는 강박에 시달렸고, 이는 6수, 주식 투자 등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강박은 필연적으로 불안과 우울을 낳았고, 궁극적으로 그는 자살충동에 시달리게 되었다.
'모태솔로', '장수생', '주식 투자자' 등 저자는 각종 단어들로 그를 묘사하며 그의 트라우마를 추적해나가지만, 쉬이 도달할 수 있는 '성관계', '대학', '돈' 등은 모두 명확한 답이 되지 못했다. 이를 보며,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나는 언제 처음 우울을 경험했으며, 무슨 이유로 '죽고싶다'는 생각에 잠식되었을까.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이다. 어느 매체에서 나온 어린 학생의 자살. 특별함에 목매달던 나에게 '최연소 자살'이라는 타이틀은 매력적이었다. 아직 휴대폰도, 검색능력도 없던 탓에 은근슬쩍 어른들에게 죽음에 관해 물었다. 그렇다. 내 자살충동의 시발점은 '죽음에 대한 동경'이었다.
자라며, 동경에는 괴로움이 더해졌다. 일상, 가정, 교우관계, 학업. 늘어가는 과업 속에 쉬이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 '자살'이었다. 덧붙이자면, 애정을 바랐던 탓도 있다. 아니, 진솔하게 말해, 내게 괴로움을 줬던 이들이 슬퍼하길 바랐다. 그들이 괴로워하고 후회했으면 했다.
생각할수록 생각은 커진다. 어느날부터 내게 자살은 필수불가결한, 인생의 과업으로 여겨졌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런 과정 속에서 내게 '인정'은 큰 비중을 차지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날 증명하고 설득하고 싶다. 동시에 가장 원치 않기도 하다. 누구나 나의 능력, 재능, 성격을 인정해주었으면 하면서도 제까짓 게 뭐라고 날 인정하고 말고 하느냐, 내가 왜 증명이라는 걸 해야 하느냐 하는 게 나의 알 수 없는 심리였다. 이는 자신만의 기준을 바라면서도 증명에 몰입한 우진과 유사하다.
인정과 관련하여 우진이 느낀 '강박'과 '충분하지 않음' 또한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인정욕구 -증명욕구라고 할 수도 있다-에는 필연적으로 강박이 연계된다. 잘 보이고 싶고,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박적 행위를 낳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뭘 해도 충분하지 않다는 불만족을 느끼게 된다. 무얼 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은 내게 고질적인 허기였다. 때문에 이 파트를 보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던 것 같다.
계속해서 우진과 나의 유사점을 말하는 까닭은, 나와 가깝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20대 청년 남성은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와 내가 다르다는 것보다는 같은 세대의 문제를 앓고 있는 동일한 인간임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의문점이 생긴다. 이토록 유사한데 왜 나는 줄곧 이해하고 싶었던 20대 남성을 수용할 수 없었나. 문득 친구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타인에게서 내가 보이는 순간 그가 미워져."
- 02년생 철학과 졸업생 -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내가 줄곧 이해하고 싶었던, 그러나 이해할 수 없었던-혹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누군가의 모습은, '나'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순간, 나도 저자처럼 '그 사람'을 인터뷰해보고 싶어졌다. 과거의 점층적으로 쌓아올려진 그의 모습을 넘어 '지금'의 '그'를 알고 싶어졌다.
때문에 이 책을 바탕으로 그를 취재해보려 한다. 그것이 글로 공개될지, 마음속의 이야기로 남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노력해보려 한다.
마지막으로, 늘 폐 끼치는 것을 두려워했던 우진을 보며,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으려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민폐 좀 끼치면 어떠냐. 나도 민폐당하며 사는 세상인데. 우리 그냥 서로 민폐 끼치고, 민폐에 짜증내면서, 그러면서 살자. 그냥, 그렇게 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