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와 많은 사람을 만났다. 맑게 웃고 쉽게 눈물짓던 여리고 다정한 사람, 다른 점을 공유하며 즐거워하던 사람, 말이 많지 않지만 그렇기에 한 마디, 한 마디가 힘 있는 사람, 무심한 듯하면서 누구보다 상대를 위하고 있던 사람,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나누어주고 싶어 하는 사람과 외로움에 사무쳐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곳에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온 이들은 각자의 색으로 빛났다.
그들과의 만남은 즐거웠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음에도 비슷한 결의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고, 같은 것에 대한 전혀 다른 견해를 듣는 것도 흥미로웠다. 다소 불편한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았다. 상대에게 경청하고 존중하며 말 하나, 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 너무 좋은 사람들이어서 외레 슬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워홀, 학생 비자로 와 있었기에 짧으면 1달, 길면 1년 이내에 우리는 서로 닿기 힘든 곳으로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사람들. 그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SNS를 통해 계속 연락할 수 있고, 가끔 여행을 통해 만날 수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이 짧은 만남에 공허함을 느끼고야 마는 까닭은, 내가 너무 어린 탓이겠지.
하루를 끝내며 종종 친구들과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신기한 장면을 보았는지. 소소한 일상을 나누던 중 문득 깨달았다. 마음에 남아 누군가에게 전하고 야마는 이야기들은 온통 사람에 대한 것들이라는 것을.
여행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고 하던데, 그게 정말 맞는가 보다. 맛있는 음식, 어여뻤던 장면들, 색다른 체험, 모든 것들이 좋았지만 유독 아쉽고, 행복하고, 그리운 추억들은 온통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친구와 함께 호주에 오며 우리는 참 많은 갈등을 겪었다. 소소하게는 음식부터 크게는 서로의 상처에 대한 것까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에 저 혼자 실망하고 아파하길 반복했다. 그녀와의 갈등에 지쳐 대화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기까지, 참 많이 아팠다. 내가 이기적이었던 걸까, 그녀가 의존적이었던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더 이야기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늘 갈등을 회피하며 살아왔기에 처음으로 마주 보고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겨우 입 밖으로 낸 말이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는 것도 모두 버거웠다. 어느 날에는 그녀를 탓했다. 또 다음 날에는 스스로를 원망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있었던 갈등, 노력했으나 메꿔지지 않았던 서로의 간격에서, 왜 그때 포기하지 않았을까, 차라리 그때 결정했다면 더 낫지는 않았을까에 대해서도 끝없이 생각했다.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멀거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알 것도 같았다. 내가 그녀를 너무 좋아했나 보다. 그 애가 너무 소중하고 가까워서 그 애에게도 내가 그러리라고 기대했나 보다. 투정 부리고 알아줬으면 했나 보다. 위로받고 싶었나 보다.
고작 2달 만에 워홀을 그만두고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그 가장 큰 이유가 친구와의 갈등이라는 게 처음에는 너무 부끄러웠다. 철없는 행동이 아닐까. 여기저기 워홀 갈 것이라고 떠벌리고 다녀놓고 이리 돌아가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지 않을까. 수치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그 짧은 2달 동안 정말 중요한 것들은 잔뜩 배웠다. 누군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데인다는 것도 배웠고 늘 어렵기만 했던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했다.
누군가는 타인에게 슬픔을 드러내지 말라고 말하곤 한다. 비밀을 밝히지도 말고, 의존하지 마라고.
하지만 그건 그 타인이 결국 적이 되리라는 생각 하에서 오는 생각이 아닌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너무 냉소적인 삶이 아닐까.
어떤 사람들은 감정의 높낮이가 늘 일정하도록 유지한다고 한다. 감정이 요동치지 않게끔, 그리하여 언제나 평온을 유지할 수 있게끔.
그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마음껏 요동치며 살아가고 싶다. 있는 힘껏 기뻐하고, 있는 힘껏 슬퍼하며. 온 마음을 다해 상대를 믿으며 살아가고 싶다. 설령 그 때문에 극심한 통증을 겪을지라도 그와 함께했던 순간들, 그날의 기쁨들이 전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마음껏 미워하고, 또 사랑하며 다채로운 세상을 그려나가고 싶다.
지난 두 달간, 울기도 참 많이 울고 웃기도 참 많이 웃었다. 늘 무표정으로 이어지던 삶에서 이토록 격정적인 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리라. 여기서 얻은 감동, 서러움, 외로움, 즐거움. 그 벅찬 감정들을 기억하며 살아가리라.
비록 이르게 돌아가게 되었지만 그 간의 모든 순간들은 가슴에 남아 앞으로의 삶을 지지해 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