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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난 Mar 02. 2024

노력의 결과

네가 전해준 것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릴 적부터 줄곧 열심히였던 친구의 짧은 문자는 슬펐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이들을 치료하고 다니는 한 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뒤, 의사를 꿈꾸게 된 친구는 의대를 목표로 재수했다. 원래도 공부를 잘하던 아이였기에 조금 더 하면 될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여러 번 낙방했고 삼수를 마지막으로 결국 꿈을 포기했다고 한다. 2월이 되어 모든 대학의 결과가 나오고, 또다시 어디에도 붙지 못했다는 것을 보게 된 그 애는 바로 입대하기로 했다고 했다. 응원해 줬는데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오지 못해 미안하다는 그 말이 너무도 슬펐다. 자신의 모습이 미련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는 그가, 그 도전이 우습게 여겨질지도 모르는 현실이 아팠다.


 문득 얼마 전에 본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생각난다. 공시를 준비했으나 번번이 떨어지고 정신질환을 앓게 되어 입원했던 한 청년. 끝내 스스로 죽음을 택했던 그의 독백이 떠오른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것 같아서 놓지 못했다고, 그런데 떨어지면, 자신은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학창 시절 전 학년을 대상으로 심리검사를 했다. 자살률과 학업스트레스가 높아지던 시기, 많은 학생들이 '위험군'으로 분류되었고, 그 아이들을 대상으로 상담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우스운 점은, 상담의 첫마디가 "너희들 장난치지 마."라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곳에 모인 학생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여다보았다면 결코 내뱉을 수는 없는 말이었다.


 죽지 않으면 아프지 않았던 게 된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노력하지 않은 게 된다. 지독한 결과주의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더 많은 우연과 운으로 이루어진다. 태어난 시기, 유년기의 환경과 선택으로 유도된 무수한 사건들.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그 의지를 압도하는 상황의 존재는 분명하다. 설령 어떠한 일이 누군가의 자의로 벌어졌으며 흔히 '결과'라 칭하는 것을 일구지 못한 것 또한 그 자신의 의지부족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러한 명제가 상대의 고통을, 부던한 노력과 감내해 온 시간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들 하면서 동시에 철없는 패배주의자의 자기 위로라고 여기곤 한다. 그냥 인정해 주면 안 되는 걸까. 과도하게 이상적이고 동화 같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마냥 가엽게 여기거나 칭찬해 달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인정해 주는 것이다. 네가 그만큼 힘들었구나, 노력했구나.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더 살만 한 곳이 될 수 있을 텐데.


 친구의 슬픔이 유독 더 안타까웠던 것은 그 애가 가장 자랑스러운 친구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홀로 무언가를, 그것도 잘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과 외로움을 안다. 주변 친구들과 다른 궤도를 감으로써 느낄 자기 효용에 대한 회의와 불안함을 안다. 그것을 견디고 이겨내어 무려 3년을 노력해 온 아이다. 그것도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로. 어릴 적부터 울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하던 친구였다. 얼마나 노력했을지 보지 않아도 알 법하다.


 그나마 그에게 건넬 수 있었던 위로는 희망에 관한 이야기였다.

작년 말부터 재수를-입시를 처음해 보는 것이니  이걸 재수라고 말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만- 준비하고 있다. 다른 여러 요소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 애의 끝없는 도전 또한 내게는 용기이고 힘이었다. 때문에 꼭 전해주고 싶었다. 네가 원하는 결과를 쟁취하진 못했을지라도 그 과정은 무척 아름답고 멋있었다고, 지켜보는 누군가의 마음에 불씨를 붙일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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