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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난 Apr 26. 2024

렌즈 너머의 너에게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을 읽고

 ⚠️ 카카오페이지 웹소설이자 웹툰인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에 대한 다수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중간 후기

https://brunch.co.kr/@hanan1907/42




 카카오페이지 웹소설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을 드디어 끝까지 다 보았다. 장장 3년에 거쳐 읽은 소설. 정확히 말하면 아직 에필로그까지 다 읽지 못했다. 한창 연재 중일 때 읽다가 바빠져 중간에 그만두고, 그리운 마음에 다시 처음부터 읽다 이제는 이미 끝나버린 이야기를, 저들끼리 떠나버리는 그들의 뒷모습을 볼 자신이 없어 10화 정도를 남기고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왔다. 이토록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한 장르가 오랜만이라 중간까지 읽고 후기를 올려놓고, 또다시 후기를 써보려 한다.


 이미 중간 후기에서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했기에 해당 링크를 첨부하는 것으로 줄거리는 생략하겠다. 이번 후기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을 늘어놓을 예정으로, 난잡한 글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속칭 데못죽은 새로운 가족의 형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선아현의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을 준 박문대에게 방을 제공하는 선아현의 가족들, 생일이면 늘 음식을 챙겨 보내는 큰세진의 부모님, 명절날 자연스럽게 서로를 찾는 큰달과 박문대.  보편적인 가족을 일찍 잃은 박문대와 큰달은 그렇게 서로의 가족이 된다.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고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가족의 형태가 인정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 맥락에서 혈연관계로 구성된 것이 아닌 이들은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나 관념적 가족의 형태는 불안정하다. 마음속으로 가족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서로를 아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제도적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박문대가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맬 때, 수술이 당장 필요함에도 바로 옆에 있던 멤버들은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었다. 그저 초조하게 회사차원에서의 조치를 기다려야 할 뿐이었다.


 큰달이 실종되어 일각을 다툴 때, 박문대는 마지막 연락자로서 구급대원을 만나며 콘서트를 걱정해야 했다. 박문대에게 있어 큰달은 친동생 같은 존재일지라도 실제로는 그저 지인, 친구에 불과했으니까. 법적으로 이어진 가족이 아니기에 일 대신 가족의 생명을 택한 것조차 비난받을 걱정을 해야 했다.


 이러한 요소들은 사회가 변화함에도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하는 법적 제도의 문제점, 여전히 냉소적인 사회의 시선에 대해 고민해보게 한다.

 

 사실혼 관계, 동성결혼 등, 여전히 사회에서 온전히 용인되지 않는 관계가 있다. 그중 특히 동성애와 관련된 이야기가 떠오른다. 누군가는 동성결혼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혐오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서로 사랑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제도적으로 그들의 혼인을 인정해줘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묻는 것이다. 동성결혼이 인정되지 않는 한국에서의 문제점은 여기에 있다.


 수술동의서부터 유산 등 여러 사항에서 법적으로 혼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크게 작용한다. 테스타 멤버들이 박문대의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어서 애가 탔던 것과 같은 사례는 한국에서 왕왕 있다.-여기서 데못죽은 동성애를 다루고 있지는 않음을 밝힌다. 그저 유사한 상황에서 생각났을 뿐이다- 동성애자 커플이 함께 살고 있다 한 명이 큰 사고를 당해 생명이 꺼지고 있음에도 서명할 수 없었던 일. 꽤나 유명한 일례이다.


 사실 이런 일은 커플이 아니더라도 하우스 쉐어를 하고 있는 경우에도 생길 수 있는 문제이다.


 물론 아무나 서명을 가능하게 하거나 유산을 상속받도록 한다면 이는 악용될 여지가 큰 것이 사실이다. 해당 법에 분명한 근거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내용들이 가장 '적절한' 것인지 또한 의문인 것이 사실이다.

 

 당장 바꿀 수 없고, 마땅한 방책이 떠오르지 않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고민해야 한다.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인정받고, 부조리하게 생명을 잃거나 억울함을 당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 속에서야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각설하고. 몇몇 사람들은 데못죽을 '박문대의 우울증 탈출기'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뿐만 아니라 그 주위의 사람들이 서로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결핍을 메꾸어가는 과정으로까지 확대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데못죽의 많은 인물들이 당연하게도 다양한 심리적 문제를 겪는다. 그중 특히 시스템과 관련된 인물인 박문대, 큰달, 청려는 자살시도를 한 내력이 있다. 애초에 모든 이야기의 시발점이 큰달의 자살기도와 박문대, 류건우의 도움이었으니까.


 이와 관련하여 얼마 전 충격적인 경험을 한 바가 있다. SNS를 보던 중 자살방지 기구의 영상이 나왔는데 댓글 대부분이 "그런 데 세금 쓰지 마라." "지들이 죽겠다는데 어쩔 거냐. 내버려 둬라."는 것이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데 있고, 기본권의 기본이 되는 것이 '생명권'이다. 당연히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더불어 복지사회로 접어들며 국가는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게 되었다.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그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이 있겠으나, 적어도 나는 '살만하다'고 느끼는 삶을 이야기한다고 믿는다.


 물론 개인의 모든 영역을 국가가 보호하고 관리할 수는 없다. 저마다의 불행과 우울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는 이유로 국가가 국민을 포기한다면 국가의 존재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자살을 '이기적인 행위' 혹은 '나약한 행위'로 규정짓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누군가의 생에 그토록 냉소적일 수 있다는 데에는 교육의 부재뿐 아니라 그들 자신의 병든 마음도 한몫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죽음과 가장 먼 곳에서 죽음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인 박문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야기를 했으니 그의 주변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이야기의 후반으로 갈수록 테스타 멤버들이 겪은 시련, 극복을 다양하게 다룬다.


 그중 테스타의 멤버인 류청우, 배세진, 김래빈, 차유진은 배세진의 마약 누명으로 그룹이 망하는 것을 경험한 바가 있다. 항소심에서도 내려진 유죄선고. 그로 인한 불명예. 한번 낙인찍힌 '마약그룹'이라는 타이틀은 그들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계약만기로 인한 그룹 해체'를 겪게 했다.


 번아웃이 오지 않을 리가 없다. 노력했기에, 다들 탈퇴하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한 번이라도 대중이 저들을 보게 하려고 바둥거렸기에 그 결말이 지독하게 허무하고 지쳤으리라.


 이후 힘들어하는 김래빈, 차유진, 류청우에게 배세진이 소식을 전한다. 상고심에서 드디어 승소했다고. 끝까지 자신은 해냈다고.


 자신들의 그룹이 '마약그룹'이 아니었다는 사실, 지독하게 따라붙던 꼬리표를 떨구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차유진과 김래빈과 달리 류청우는 그 후로 모든 걸 놓아버린 듯했다.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함께했던 동료가 범법자가 아니었다는 것에 기쁠 수도 있다. 누명이 벗겨진 것이니  벅찰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나는 류청우의 감정에 더 이입되었다. 리더로서 강압적으로 팀을 통솔했던 그. 온화한 성품의 류청우가 본성을 누르고 더 이상의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모니터링했다. 전 국가대표 선수였다는 점을 활용해 온갖 몸 쓰는 곳에 출연하다 한쪽 어깨를 못 쓰게 됐다. 그 지난한 노력에도, 실패했다.


 그리고 나서야 듣는 동갑내기의 승소 소식. 억울하지 않았을까. 누명으로 저의 수년이,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사실이.


 씁쓸했을지도 모르겠다. 또래의 배세진은 저 멀리 나아가고 있는데 저는 더 이상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성공한 테스타를 보며 허무했을까. 박문대의 존재 하나로 모든 것이 극적으로 바뀔 수 있었다는 점이. 저가 리더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기에 실패했다는 생각에 괴롭지 않았을까.


 단단한 사람이어서 더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류청우가 입스와 번아웃으로 힘들어할 때, 멤버들은 류청우에게 조심스러웠다. 실수해도 괜찮다고, 쉬라고 말했다. 배세진에 따르면, 그가 비슷한 경험을 했을 때 그런 말이 가장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류청우에게 필요했던 것은 온전한 신뢰였다. 그가 실수 따위 하지 않으리라는, 그는 해내는 사람이라는 믿음.


 그 점이 좋았다. 김래빈과 차유진에게 기쁨이었던 말이 류청우를 몰아붙이고, 배세진에게 위안이었던 말이 류청우에게는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는 점이. 그리고 끝내 멤버들은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었다는 점이.


 같은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 그렇기에 어디에도 답이 없고, 누군가의 심리적 아픔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고려가 궁극적으로는 누군가의 극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지금, 그 사실은 아픈 사람과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의 지난함을 인정하면서도 언젠가는 괜찮아질 수 있으리라 말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비슷한 맥락에서 류청우의 부상이 교통사고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국가대표로 메달까지 딴 양궁을 포기해야 했던 청우. 그러나 그 사고로 가족여행이 취소되며 류청우의 가족은 살아남았다. 그러나 교통사고를 피한 박문대의 가족은 여행길에 올랐고 화재로 모두, 사망했다.


 초기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박문대는 패닉에 빠진 채 류청우에게 부럽다고 한다. 류청우 또한 박문대의 심정에 공감하며 자신의 이야기가 투정으로 들렸겠다며 그를 위로했다.


 류청우는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물 정도로 건강한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넘어갔지만 늘 마음에 걸렸다. 박문대의 가족이 죽었다고 해서, 류청우의 가족이 살아남았다고 해서, 류청우의 꿈을 앗아간 교통사고를 '다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이 끝에서야 나왔다. 입스로 괴로워하며, 계속해서 저를 신경 쓰는 박문대를 보며, 류청우는 처음으로 저의 속마음을 독자에게 밝힌다.


 전혀 괜찮지 않다고, 그런데 이 마음을 박문대 앞에서 차마 드러낼 수가 없다고.


 기묘한 일이다. 데뷔 후 교통사고에서 류청우 대신 큰 부상을 당한 박문대. 문제가 생길 때면 늘 나서서 해결해 준, 류청우가 의지할 수 있는 형. 류청우에게 박문대는 그토록 소중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래서 류청우는 끝내 저의 가장 곪은 부분을 박문대에게 내보일 수 없었다.


 처음 박문대가 선아현에게 저의 사정을 털어놓고 둘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던 날이 기억난다. 거의 패닉에 빠진 그들을 보며 차유진은 생각한다.




그도 이렇게 서로를 무겁도록 중요히 생각하다가 결국 문제까지 무거워지는 관계를 종종 봤었다.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352화-



 도처 한 아이러니다. 소중해서 말할 수 없고, 소중해서 무거워진다는 게.


 데못죽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렇게 보편적인 고민을 비현실적 요소를 곁들여서 재미있고 너무 무겁지 않게, 그러나 현실적이게 풀어나간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데못죽의 문체를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판타지 소설 작가가 꿈이었던 내게 가장 큰 고민은 문체가 과하게 무겁다는 점이었다. 수식어구가 과도하게 많고 가독성이 떨어진다. 구어체의 표현에 능숙하지 못해 매끄럽지 않다-이 점은 억울한 게, 내 말투가 문어체와 닮은 탓에 자연스러운 구어체 표현이 어려웠다.- 그래서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게 사실을 전하고, 적절히 감정을 묘사하는 데못죽의 구성이 인상적이었고 닮고 싶었다. - 조금이라도 배워보고자 필사를 하고 있다.



 데못죽은 분량이 꽤 있다. 1000화 넘게 연재하는 웹소설이 왕왕 있는 요즘, 640 화대는 적다고 여겨질 수도 있으나 단행본으로 따지자면 30권은 족히 나온다는 걸 고려하면 그렇다. 때문에 재독 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했으니 거의 반년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특히 속도감 있게 읽은 것은 시험준비 기간이었다. 나는 부담감을 쉽게 느끼는 성정인데 때문에 시험기간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도조차 꺼려지기도 한다. 한동안은 그게 심해져 차라리 소설이라도 읽자! 는 마음으로 데못죽을 정독했다.


 그리고 지금, 그 선택이 꽤 좋은 기능을 했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상황은 생각나지 않지만 아마 등장인물이 자신의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장면에서였을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며 스스로 제대로 살아왔는지, 어떠한 선택과 노력이 좌절되었을  그 과정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이었다. 긴 고민 끝에 인물은 문득 깨닫는다. 기간 내에 일을 끝내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가?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기는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그저 자신이 지나온 시간이 아까워지는 걸 염려했을 뿐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며 삶의 기간이 증가했음에도 우리는 시간에 좇기며 산다. 기간을 정하고 그 안에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저 '시간 아까웠네'정도가 끝이다. 내 일이 잘못되더라도 내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인지하고 나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급할 것 없다는 사실 하나가 되레 지금에 초점을 맞추도록, 보다 효율적으로 학습하도록 이끌었다.


 어쩌면 우리는 효율에 집중하다 생명마저 효율로 다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에, 가성비에 좇기다 끝내는 '나' 자신마저도.


 데못죽의 주인공, 류건우가 자살기도를 할 때 했던 생각도 이와 유사했다. 취미를 잃고 다른 것을 찾다 가장 가성비가 좋은 선택, 가장 효율적이라고 여겨지는 선택을 한 것이다.


 끝에 몰렸을 때,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일할 수 없어 돈 쓰는 데만 기여하는 미성년자라는 신분.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기이한 압박감에 허덕였다. 그리고 내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것을 느꼈을 때, 나아질 방도를 떠올리다 그것보다 빠르고 간편한,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죽으려고 했다.


 무엇을 위한 효율이고 누구를 위한 능률인가.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되어 온 '빨리빨리'의 문화, 극단으로 치달은 효율주의는 현대인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그것이 일구어낸 업적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인륜을 지키며 사람답게 살자는 것이다.


 효율적인 삶은 빠를지언정 덧없다. 사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쓸모없는 것들이다. 우연히 집어든 비현실적인 소설 한 권, 지나가다 마주친 강아지의 웃음, 친구가 들려준 은은한 선율의 음악. 쓸모없는 것들이 있기에 우리는 생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진부하다는 이유로 외면하지 말자. 인간은 인간 자체로 목적이어야 한다는 한 철학자의 말을 잊지 말자.


 과학으로 점철된 현대 사회에도 인문학은 필요하다.



 돌아가서, 데못죽의 다른 인물들에 대해 더 말해보자. 2 회독의 좋은 점은 주인공에게만 초점을 맞추었던 첫 회독에 비해 다른 인물들을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김래빈의 이야기를 먼저 해보고 싶다. 테스타의 막내이자 날티 나는 외모와 달리 깍듯하고 예의 바른 프로듀서 겸 래퍼. 천재라는 단어가 부족할 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닌 그는 약간의 입력만으로도 굉장한 곡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덕분에 테스타가 더 뜰 수 있었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그도 슬럼프를 겪는다. 여기서 그가 겪었던 슬럼프의 이유는 다소 독특하다. 그 까닭이 '칭찬'이었기 때문이다. 과도한 칭찬과 찬양으로 부담감을 느낀 김래빈은 '잘해야 한다',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좋아서 시작했던 일이 되레 그를 짓눌렀던 것이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어릴 적 무엇이든 잘하던 사촌언니가 대단해 보였고, 책도 퍽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공부를 꽤 열심히 했다. 할수록 성적이 좋아졌고 성취감에 더 열심히 했다. 선순환이었다.


 극상위권에 오르자 관심이 쏟아졌다. 학교에서도 유명인사가 되었고 지나가는 어른들마다 칭찬을 일삼았다. 한때는 으쓱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잘 알지 못하는 이들마저 내 성적을 알고, 당연하다는 듯 좋은 성과를 기대하는 사람이 늘자 불안해졌다. 이렇게 기대해 주는데 못 하면 어떡하지?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떡하지?


 '나'라는 존재가 '학업'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정의되는 기분. 모두가 나에게 집중하는 감각은 끔찍했다. 시험기간이면 마킹을 잘못해서 최악의 성적을 받는 꿈에 잠 못 이루었고, 스트레스로 열이 났다. 머리가 너무 아플 때면 통증을 줄이고자 벽에 머리를 박았다.


 아마 결이 사뭇 다를지라도 다들 비슷한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리라 생각한다. 여전히 학업에 열중하는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일대 일 과외 선생이 되어 한 명, 한 명에게 말해주고 싶다.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그저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다고.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어떠한 하나의 요소가 한 사람을 정의 내릴 수는 없다고.


 어린아이들이 마음껏 사랑받고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


 아이들이 자라는 소리를 도담도담이라고 한다.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감각을 전해주는 그 단어처럼 아이들의 성장이 고통스럽지 않길 바란다.


 고통이 있어야 성장한다고들 하는데, 고통이 없어도 성장할 수 있을 때가 있다. 부러 아픔을 주고 싶지는 않다. 그 한 문장으로 아이들이 느끼는 슬픔이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아이들은 무엇을 잘못하든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단 하나만을 제외하고.


 그와 관련하여 박문대와 같은 팀 멤버이자 비주얼로 유명한 우아한 선의 무용을 하는 매인 댄서, 선아현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다.


 선아현은 어릴 적부터 발레를 전공하며 뛰어난 성적을 보인다. 수석을 놓치지 않는 그는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엄친아였다. 다정하고 모난 것 없는 성품, 부유한 가정, 뛰어난 용모와 놀라운 실력까지.


 하지만 너무 잘나면 시기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선아현과 함께 발레를 전공하며 방대한 자아를 지녔던 채서담은 선아현을 교묘하게 따돌리며 괴롭힌다. 선아현이 '내가 예민한 걸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교묘한 움직임이었다. 이에 트라우마가 생긴 선아현은 말더듬증까지 얻게 되며 자존감이 크게 하락한다. 자존감 하락은 실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무대에 서면 원래만큼의 기량을 보일 수 없었고 이에 그의 자존감은 더더욱 떨어지게 된다.


 학창 시절 한순간의 따돌림은 평생 동안 그를 갉아먹었다. 근래에도 대두되고 있는 학교폭력 문제. '타인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당연한 이치와 합의를, 지금의 아이들은 배우지 못하고 있다. 각종 미디어의 영향 탓인지 그 행태가 갈수록 교묘해져 명확한 증거를 수집하기도 어려울 때가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을까. 무작정 처벌의 수위를 높이는 것은 위험하다. '어차피 처벌받는다'는 생각에 폭력의 수위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처벌을 통해 행동이 교정된다고 보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나의 부족한 지혜로는 명료한 결론을 도출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쭙잖게 덧붙여 보자면, 가장 큰 원인은 '공감 능력의 결여'가 아닐까 싶다. '타인의 마음을 알아차리려는 노력', '타인과 나를 동일시하는 능력'. 공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물론 선천적 요소가 크다.  그렇지만 그것만이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공감도 지능이고, 노력의 결과이기에 공감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연습은, 타인이 나를 이해해 주는 경험, 이야기를 통한 감정이입의 순간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현대의 어른들은 얼마나 아이들에게 공감해 주는가. 혐오가 만연하는 사회에서 예전 같은 관용은 보기 어렵다. 아이들은 얼마나 이야기를 접하는가. 유아기부터 암기식 학습이 선행되는 지금, 아이들에게 이야기는 사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아이들에게 떳떳한가.


 늘 그렇듯 해답은 단순하고 복잡할 지도 모르겠다. 사회 구성원의 인식과 태도 변화.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되 더 넓은 관용이 필요한 미숙한 존재임을 인식할 것. 그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경험을 제공할 것.


 그것이 선행되었을 때, 각종 처벌과 지도는 진정 빛을 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각설하고. 선아현은 괴롭힘의 후유증에서 벗어난다. 멤버들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수많은 우연과 사랑에 의해.


 또래에 의한 상처였기에 또래와의 친근한 경험들이 치유에 도움이 되었으며,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가 해낼 수 있음을 인지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했다.


 쉽지 않았다. 계속해서 상담받고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도지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채서담과 마주했다. 그럴 수 있었다.


 그것이 못내 기뻤다. 여러 범죄에 의해 고통받은 무수한 피해자. 잔인한 기억은 지독하게 들러붙어 생을 꺼뜨린다. 어쩌면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그들의 삶이 머물러있지만은 않을 것임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데못죽을 좋아하며 많은 경험을 했다. 그중 하나의 값진 기억은, 2차 창작이나마 계속해서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작가. 누군가에게 찰나나마 안식이 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 어느 순간부터 바쁘다는 이유로 멀어진 그것을 짧게나마 이어 썼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더 나은 문장을 구사하게 되면,

 더 완벽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

 그때 써야지.


 그렇게 미루던 것을 엉성하게나마 계속해나가고 있다. 혁신은 일상적인 것들의 뭉텅이에서 생겨난다고 했던가.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늘 무언가는 식상하고 진부한 말들 속에서 눈치채기 힘든 이질감으로 생겨났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미루지 않으려고 한다. 참신하지 않으니 적지 않았던 소소한 감정과 생각들. 지루한 이야기들을 그저 써 내려가고자 한다.


 뭐, 원래 의식의 흐름대로 끄적이다 보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싶은 게 때때로 튀어나오지 않는가.


 그런 맥락에서 이 후기를 적었다. 정제되지 않았으나 읽으며 느낀 사소한 것들을 남기고자.


 사실 큰세진의 열정에 대해서도, 차유진의 즐거움에 대해서도, 배세진의 근성에 대해서도 쓰고 싶은 것들이 잔뜩 있다. 이번에 다 써버릴까, 하다가 3 회독을 시작한 지금, 이게 마지막 후기가 아닐 듯하여 다음 후기로 넘기기로 했다.


 만권을 책을 읽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만 번 읽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던가. 만 번까지는 힘들고, 다른 책도 읽겠지만 이 짜임새 좋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뜯어내어 한 줌의 즙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제대로 소화해내고 싶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사랑하는 백덕수 작가님께서 완결 1주년 기념 외전을 내주시길 바라며.


 늦은 밤 얼마 전에 산 박문대 인형을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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