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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귤 Feb 29. 2020

이번 지구는 망했어

위기의 지구, 해결책은 과연 있을까? 적어도 이번 생에서?

*영화 <인터스텔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We will always find a way. We always have.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 인터스텔라(2014)


식량 재배 환경 파괴로 야구장에서 팝콘만 오지게 먹다가 (치킨이 없다니...) 흙먼지가 몰려오면 경기 중단, 폐질환을 가진 아이를 여전히 먼지 앉은 실내로 대피시키는 우울한 장면으로 시작하는 <인터스텔라>. 점점 우리의 현실이 이 영화의 인트로와 가까워지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영화는 다행히 눈부신 과학의 발전으로 인류가 살아갈 새로운 행성을 찾고, STAY를 외친 만큼 젊음에 STAY 하신 머피아버지의 회춘, 아니 지구복귀와 함께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일 뿐 헷갈리지 말자. 머피만큼 귀엽거나 똑똑하지 않은 나의 현실만큼, 영화의 엔딩과 우리의 엔딩은 괴리가 클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우린 이미 망한 게 아닐까. 망한 거라면 이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의미가 있는지조차 모르겠는 이 고민의 과정에 오늘도 죄 없는 독자들을 초대해본다. 등교거부는 이미 늦었다 해도, 우린 답을 찾을 거라고 했으니.




"그래서, 너가 공부해보니 환경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아?"

나의 지인들이 나에게 종종 묻는 말이다. 나는 4년여 전부터 늘 같은 말로 대답한다.

"지구는 이미 망했으니 카르페디엠, 현재를 즐기고 아이는 낳지 마세요."


'환경'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수많은 단체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느낀 점은, 지구는 이미 오염과 자원고갈의 파국으로 치닫는 고속도로를 탔다. 숙명적인 굴레에 들어섰고, 이를 피할 일말의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다. 물론 플라스틱을 청정한 공기로 변환하는 연금술 수준의 혁신이 이루어진다거나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이런 기술개발은 이과에게 맡기고 문과출신인 나는 그저 인류망했송을 작사작곡 하는 수밖에.


인류가 당장 모든 활동을 멈추고 숨만 쉬고 산다 해도, 지금껏 저질러왔던 우리의 만행으로 인해 앞으로 100년 동안은 기온 상승을 막을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이성을 잃고 타노스의 인류청소정책을 찬양한 지난 글이 다시금 공감된다. 앞으로 적어도 100년... 나의 증손자 증손녀까지도 고통받을 게 뻔하다 보니 내가 연애와 결혼을 미뤄온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현명한 환경론자로서의 선택이었구나. 이번 지구가 이미 망했다면, 암담한 미래환경에 스트레스 받기보다는 카르페디엠을 마음에 새기며 즐거이 사는 것이 나의 책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인 나는 주위에 이미 꼬물거리는 아이를 키워가는 사람들을 위해, 망한 지구에서 이들과 함께 살아남는 방안을 고민해본다. 당연히 내일이 없는 듯 자원을 낭비하며 카르페디엠을 실천하자는 건 아니었다. 나의 생각 없는 선택으로 고통받을 증손주들을, 아니면 적어도 지금 내 주위에 꼬물거리며 기어다니는 아이들이 선물 받을 미래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사실 이 개념으로써의 지속가능성은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에 대한 가장 유명한 설명으로 알려진 브룬틀랜드 보고서(Brundtland Report, 1987)에도 잘 드러나 있다.

Sustainable development is the kind of development that meets the needs of the present without compromising the ability of future generations to meet their own needs.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미래 세대가 필요를 충족할 능력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미래 세대한테 미안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오늘도 고민은 깊어간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수천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문송하니까 기술개발은 못할 것 같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문제를 더 키우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나이기에 무언가를 '안' 하는 방식으로 기여해야겠다. 내가 실천하기 시작한 첫 번째 스텝은 소비 줄이기였고 그 효과는 놀라웠다.

 

이 소비는 진짜 내게 행복을 줄 것인지, 그 행복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나에게 이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 이걸 사고 나면 유용하게 오래 사용할 것인지, 이 구매로 인한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등을 생각하면서 구매로 인한 행복의 기간이 제품의 수명보다 긴 소비만 하기. 진짜 행복을 주는 소비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곱씹다보면 당장의 욕구가 잠잠히 가라앉고, 생각해보니 그렇게까지 필요한 건 아니었구나 라는 결론에 도달하며 통장잔고를 지킬 수 있다. 아직 내겐 지구보다는 지갑이  소중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쇼핑에 앞서 위에 나열된 물음들 앞에 서보기를 제안한다. 당장 해소해야 할 스트레스가 끊이지 않는 한국 사회, '쇼핑 권하는 사회'에서 정신줄을 놓지 않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실천해본 사람으로서 장담하건대 물건이 채워주는 충만함보다 더 큰 행복감(그리고 조금은 더 충만한 통장 잔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 다이어트를 실천할 당신에게, 미래 세대가 전하는 감사를 대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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