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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희 Feb 09. 2020

일회용품 없는 축제는 정말 불가능한 걸까?

아무리 일회용품이 편하다고 해도 말이야

2019년 하반기, 나는 서울의 한 환경페스티벌인 '에코페스트 인 서울'의 기획 및 운영으로 일하게 되었다.

<지구에서 제대로 노는 법!>이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일회용품(플라스틱, 종이컵 등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최대한 환경적인 페스티벌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고 싶었다.




왜 항상 축제는 일회용품으로 넘쳐나야 하는가?
한번 쓰고 버리는 마음이 더 불편하지 않은가?




이 불편한 마음을 두고 나와 동료들은 종종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들 한다.


한 번 불편해진 무언가는 꾸준히 불편하다. 그걸 내세우느냐 속으로 생각하느냐는 개인에 따라 다른데 나는 보통 속으로 생각하고 혼자 실천하는 부류이다. 어쩔 수 없을 때는 써야 하니까. 내 삶에서 일회용품을 아예 빼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정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 같은 재질을 모두 친환경적으로 바꾸어 살고 계신 분들도 존재한다. 정말 존경스럽다. 나는 고작 텀블러 쓰고 빨대를 안 쓰는 정도인데 생활 속에서 휴지나 화장솜도 재사용할 수 있는 소창 등으로 사용하는 분들도 계신다.


일회용 컵만 안 써도 쓰레기 많이 줄어든다는 거. 알고 있잖아
요즘 플라스틱 아니라고 종이컵에 담아주는 카페 많더라. 그거 아니에요 여러분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이 행사를 운영하는 것은 참 힘들었지만 뿌듯했다. 플라스틱 컵만 쓰지 않아도 쓰레기는 정말 많이 줄어든다. 일상에서도 하루에 두 번씩 마시게 되는 음료를 일회용 컵이 아닌 머그잔이나, 텀블러에 담기만 해도 1년에 730개를 줄일 수 있다. 종이컵을 쓴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종이컵 역시 안쪽에 방수처리를 위해 플라스틱 재질인 폴리에틸렌 처리를 하고 있다. 이를 재활용하려면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비가 와서 재사용할 수 없었지만... 종이로 제작한 세상 예쁜 설치물


문제는 현수막이나 배너 등 홍보물인데 재질에 엄청난 신경을 써야 한다. 재 사용할 수 있는지, 환경평가를 통과한 무언가 인지 등등. 실제로 에코페스트는 A배너에 부착하는 홍보물을 타이벡으로 제작하고 접착을 최소화하여 후에 돗자리로 만들었다. 가볍고 얇지만 튼튼한 돗자리였다. 이 물품은 후에 이벤트 리워드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행사 후에 버려지지 않고 재사용하는 아이디어까지 생각하고 있다.








우리만 노력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지

에코페스트는 마켓이 포함된 페스티벌이기 때문에 입점하는 매장들에게 모두 포장을 최소화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제품 역시 친환경적인 것들로 구성하거나 이월상품이어서 폐기 처분되는 것들로 준비했다. 사람들에게 이런 기업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렇게나 환경을 생각하는 단체, 기업들이 많다고.




꼭 새로운 비닐봉투나 종이백에 들고 가야 돼?

마켓을 다 돌고 나면 포장대가 있었다. 사전에 시민들에게 기부받은 에코백과 종이가방으로 최소한의 포장이 된 물건들을 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현장에서도 에코백을 기부하러 오신 분들이 많았다. 행사 후 남은 에코백은 에코백을 기부받는 기업 및 카페 등으로 재기부 하였다. 무려 651개의 에코백과 종이가방이 정말 필요한 곳으로 돌아갔다.



일회용품 없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선 적당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해


우리가 기획하고 운영하는 모든 단계가 최대한 친환경적이어야 한다. 푸드트럭에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너무 당연했고 페스티벌의 상징(?)과도 같은 플라스틱 컵도 모두 다회용 컵을 대여하여 사용했다. 무대나 부스 등도 최대한 폐기물이 나오지 않는 방향으로 기획하였고 재사용할 수 있는 부분은 기획단꼐에서부터 고려하여 행사 후 다양한 방법으로 재사용하였다. 행사 후에는 정말 일회용품의 사용이 크게 줄었는지, 쓰레기를 모두 모아 무게를 달아 수치화시켰다. 발생된 쓰레기 양은 무려 69kg이었다. 이런 자세한 부분은 모두 에코페스트 인 서울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일회용품을 적게 쓰는 축제는 가능하다.

아예 쓰레기가 안 나올 수는 없겠지만 가능성이 보인다. 우리의 축제는 성황리에 잘 끝이 났다. 역대급으로 쓰레기 없는 축제였다는 평을 들으며.


친환경적으로 제대로 살지도 못하면서 친환경 행사를 만들고 있다. 가끔 회의감이 든다. 내가 아직 많이 바뀌지 못했는데 이런 걸 할 자격이 있을까? 이런 생각이 가득했지만 행사에 온 사람들의 표정과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들과 좋은 후기와 칭찬들이 그리고 더 나아졌으면 해서 날아오는 따가운 피드백들이 내가 이런 행사를 더 기획하고 싶게 만든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친환경적이며 지구에게 덜 해로운 놀잇거리, 문화를 제공해주고 싶다. 어차피 할 소비라면 친환경적으로 제대로 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 그게 내 업인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만약 당신이 페스티벌 러버라면, 지금부터라도 생각을 바꿔주길 바란다. 편리한 일회용품이 가득한 축제는 즐거울지 몰라도 끝난 후에는 쓰레기가 되어 행사장에 넘쳐난다는 사실을 당신은 모르고 있다. 아니,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이다. 페스티벌이 끝나고 떨어진 쓰레기를 발로 밟으며 유유히 집으로 가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으니까.




* 참고자료

KBS NEWS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062536)

에코페스트 인 서울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ecofest.in.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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