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영어공부가 아니라 오로지 재미를 위해!
짧고 자극적인 컨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발맞추어 사라져버린 나의 지구력... 넷플릭스 N년차 유저의 권태기인 것인지 러닝타임이 긴 영화나 드라마는 집중조차 못하게 되었다.
때문에 20여분 내외로 짧으면서도 뻘하게 웃긴 미국시트콤을 종종 보는데, <브루클린 나인나인(Brooklyn 99)>, <모던패밀리(Modern Family)> 등 유수의 작품들을 두 번씩 정주행 한 후 결국 찾게 된 건 의외로 <프렌즈(Friends)>였다.
프렌즈와는 초면은 아니다. 아마 나와 시대를 같이 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자막 없이 보거나 대사를 따라하다가 포기해야 했던 굴욕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런 트라우마 때문인지 쉬이 손이 가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집콕을 하며 정주행을 한 번 시작한 나, 프렌즈의 마성에 빠져 멈추지 못하게 되었다. (왜 영어공부에 프렌즈를 미끼로 내세웠는지 이해가 될 정도이다.) 그 매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1994년 작품, 즉 25년 이상 된 시트콤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와 대사들이 저질스럽다거나 유행에 뒤쳐지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 신기하다. 동성애나 대리모, 이혼이나 싱글맘/대디에 대한 이슈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거론되고, 누군가를 배제하며 ‘불편하게’ 웃기는 개그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백인이라는 점 등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다만...) 옷과 헤어스타일, 인테리어 또한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걸 보면 스토리든 의상이든 여러모로 시대를 뛰어넘을 만큼 신경 써서 만든 작품이랄까!
예전에는 에피소드 하나씩만 드문드문 본 탓에 전체 설정은 잘 몰랐는데, 첫 에피소드부터 정주행하면서는 한결같이 철없는 중에도 대견스럽게 조금씩 성장하는 등장인물들이 보인다. 일과 사랑, 결혼과 육아로 벌어지는 수많은 감정의 타래들도 이젠 공감이 간다. 어느새 내 나이가 그들의 나이와 같아져서 그런 건지도. (사람 사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런 만큼 애착이 가서 그런지 미국식 유머도 재밌게 들리며 영어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 같은 착각은 보너스.
명불허전 얼굴마담인 제니퍼 애니스톤을 비롯한 익숙한 배우들의 풋풋한 얼굴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카메오 또는 단역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의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다. 내가 아는 배우만 해도 조지 클루니, 브룩 쉴즈, 줄리아 로버츠, 벤 스틸러, 그리운 로빈 윌리엄스, 존 파브르, 브루스 윌리스, 브래드 피트, 폴 러드 등 프렌즈를 정주행하기만 해도 미국의 핫한 배우 역사를 (그것도 그들의 전성기 외모를) 한바탕 훑을 수 있다.
2021년 3월, 프렌즈의 사랑스러운 6명의 주인공이 총출동한 25주년 기념 방송이 공개된다. 이걸 위해서라도 정주행을 시작해주었으면 하는 나의 간절함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
출연진 제니퍼 애니스톤(레이첼), 코트니 콕스(모니카), 리사 쿠드로(피비), 맷 르블랑(조이), 매튜 페리(챈들러), 데이빗 슈위머(로스) 모두 2020년 초, 같은 날 각자의 인스타그램에 프렌즈 잡지 커버를 게시하며 '그 일이 일어난다.(It's happening.)'고 기념 방송을 발표했다. 프렌즈 덕후들의 마음은 그 때부터 설렘을 넘어 애가 타기 시작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1년 여가 지나서야 25주년 방송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이 아직 프렌즈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미국 시트콤의 대부이자 배우들의 요람이었던 <프렌즈>를 집콕하며 정주행하기 좋은 때가 이때 말고 언제이겠는가! 2021년 당신의 새해 목표에 프렌즈 정주행하기를 넣어둔다면, 남들은 25년을 기다린 특별한 재회를 당신은 바로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