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숙제를 나만 못한 것 같은 기분을 털어내기
아끼는 언니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미세먼지도 별로 없고 봄이 한걸음 성큼 다가온 게 느껴지는 오후였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과 반가운 지인들의 얼굴을 본 기쁨도 잠시, 집에 와서 화장을 지우면서는 허전함이 또 밀려온다. 작년 즈음부터 결혼 소식만 들으면 꼭 축하하는 마음에 1+1로 붙어오는 정체모를 씁쓸함이다. 혹여나 지인들이 이 글을 읽고 괜히 미안해할까봐 걱정도 되지만, 이 감정도 언제까지일지 모를 이 시즌만 지나면 사라질 테니 잊어버리기 전에 나의 찌질함을 글로 박제해본다.
나는 웬만한 결혼식에는 꼭 참석하는 편이다. 좁고 깊은 인맥 풀을 보유한 터라 결혼식이 잦지 않은 만큼, 불가피한 다른 일정이 없다면 지방까지도 곧잘 간다. 결혼식이 기쁜 이유는, 내게 소중한 사람이 새로운 출발을 하는 자리인 동시에 그 자리에서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 때문이었다. 각자의 삶을 사느라 이런 날이 아니면 보기 힘든 반가운 이들과 예쁘게 치장한 모습으로 맛있는 것까지 먹을 수 있다니, 결혼식은 내겐 정말 잔칫날이었다.
그러던 나에게도 결혼식 권태기가 왔다. 결혼이 늦어지면 청첩장 받기 싫어진다는 말을 농담처럼 하던 언니들도 다 결혼을 하고(그 농담이 이제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친구들은 알콩달콩한 신혼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아가들이라고만 생각했던 동생들도 결혼 준비 소식이 들려오니 갑자기 나 혼자 '아직 결혼 못한 사람'이라는 표를 이마에 붙인 듯 창피했다. 배우 이보영이 어느 프로그램에서 말한, 모두가 과제를 마치고 떠난 교실에 나 혼자 남아 나머지공부를 하는 바로 그 기분...
게다가 결혼식장에서 또다른 청첩장을 받기도 하고(다른 사람 결혼식에서 사전 양해 없이 청첩장 돌리는 건 굉장한 실례입니다.), 근황을 나누다 피할 수 없이 또다른 결혼 소식을 고구마줄기처럼 접하다 보니 그렇게 좋아하던 결혼식도 이제는 마음을 단단히 무장하고 가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다들 풀어내는 결혼과 관련된 근황 앞에서 나도 비슷한 소식을 내놓아야만 할 것 같은데 기껏해야 나의 근황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뿐이니.
내가 딱히 불행한 것도 아니다. 아니, 사실은 굉장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새해부터 목표했던 운동도 뿌듯할 정도로 잘하고 있고, 의외로 적성에 맞는 공부도 잘 되어가고 있다. 부자는 아니지만 쪼들리진 않고, 가족들도 무탈히 잘 살고 있는 거 보니 (전지구적 기후변화와 코로나19 이슈만 빼면) 딱히 근심이랄 것도 없다. 적어도 그렇게 느끼곤 있다.
그런데 결혼 앞에서 왜 나는 이렇게 숙제를 못한 학생처럼 괜스레 작아지는 걸까. 사람이라면 응당 결혼을 해야한다고 외쳐대는 구시대적인 자아라도 마음에 사는 것일까. 매번 출금만 당하는 경조사 통장이 내 마음에 대고 분풀이라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랑 놀 싱글 친구들이 줄어들어 생기는 심통인 걸까.
이유야 어찌됐든 나는 그냥 이 감정도 안고 가기로 한다. (개인에 따라 피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만) 이런 감정 때문에 소중한 이의 한 번뿐인 기쁜 자리를 놓치는 건 아까운 일이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밀려오는 씁쓸한 외로움을 부정하며 애써 감추지는 않기로 결심한다. 축하하는 마음만 들어야 하는데 난 왜 씁쓸한건지 자책하지 말자. 마음껏 축하하되 마음껏 외로워하자. (주의: 남의 경사에 가서 나 외롭다고 하소연하며 다니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렇게 하다간 아마 더 외로워질 수도...)
언젠가는 내가 결혼소식을 전할 수도 있을텐데, 그때 더더욱 세심하게 주위를 배려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 주위 모든 사람들이 결혼할 때까진 깨볶는 TMI 금지, 호들갑/징징 금지, 청첩장 줄 때는 와주는 이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전하기, 축하해준 사람들에게 감사인사 꼭 하며 진심으로 근황 묻기 등.
아무튼 주위 사람들보다 결혼이 늦어지거나 비혼을 선택한다고 해서 내가 혼자인 것에 항상 괜찮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그냥 어떤 날은 외롭게, 어떤 날은 자유롭게 지내다가 언젠가 올 나만의 그분과, 또는 싱글로서 행복해하며 살련다.
축하하지 않는 건 아니야, 내 축하는 100% 진심이니까! 이 센치함은 언니 탓도, 내 탓도 아니라구. 진심으로 축하하고, 신혼여행 잘 다녀와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