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군부 쿠데타의 역사를 담은 관광지
우리에게 9월 11일은 미국 쌍둥이 빌딩 테러가 일어났던 날로 기억되지만, 칠레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일어난 폭력적인 군사쿠데타의 날로 이 날을 기억하고 있다.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최초의 나라라는 영광을 제대로 펼쳐보기도 전에, 사회주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는 우파 세력의 집요한 방해를 겪어야 했다. 칠레의 우파 세력은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당시 칠레 사회주의 정권 방해와 군부 쿠데타에 미국 닉슨 대통령이 개입했다는 것은 오늘날 많은 증거들로 증명되고 있다) 사회주의에 호의적인 언론 통제, 사재기를 통한 경제 불황 조작 등 정부를 겨냥한 치졸한 방해공작을 벌였고, 국민들은 좌우로 분열되어 매일같이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퇴를 요구하거나 정부를 옹호하는 시위를 벌였다.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필두로 하여 완전무장을 한 칠레의 군부와 경찰들이 살바도르 아옌데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리려고 대통령궁인 모네다 궁(La moneda)으로 향했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작전명을 시작으로 포탄과 총성이 울리는 모네다 궁에서, 살바도르 아옌데는 라디오를 통해 마지막 연설을 하고 자살한다. 자신을 지지해준 칠레의 노동자 계층에게 감사를 전하고, 자신은 대통령직을 사퇴하는 것이 아니며, 무력으로 인하여 언론과 사회가 잠시 동안은 어둠에 잠기겠지만 올바른 정신만큼은 수천의 칠레 국민들에게 심겨질 것이라는 인상적인 연설이다.
La moneda라는 이름은 이 곳이 한 때 동전 주조를 위한 건물로 쓰였다는 것에서 붙여졌다. 동전만 주조하기엔 아까운, 너무나 아름다운 건물이기 때문이었는지 모네다 궁은 1845년부터 대통령 관저가 되었고, 그 바로 앞과 뒤에는 헌법 광장(Plaza de la Constitución)과 시민 광장(Plaza de la Ciudadanía)이라는 넓고 아름다운 광장이 세워졌다. 잔디가 잘 관리된 광장과 어마어마한 규모의 칠레 국기, 산티아고의 다른 건물들과 달리 그래피티 하나 없이 깨끗한 베이지톤의 건물을 보면 이 곳이 총알이 빗발치고 유혈이 낭자했던 곳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모네다 궁의 외벽에 아직도 선명히 남은 총알 자국을 보면 이 곳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조금은 슬픈 분위기가 감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모네다 궁 앞의 넓은 광장의 지하로 들어가면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Centro Cultural de La Moneda가 있다. 철마다 다른 다양한 전시를 하는데, 깔끔하게 관리가 잘 되어있어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번 정도 들러볼 만하다.
피노체트 군부독재 아래 자행된 수많은 인권유린의 현장을 잊지 않으려는 듯, 모네다 궁에서 3km 남짓 떨어진 곳에는 2007년에 세워진 기억과 인권 박물관이 자리해있다. 피노체트 군부정권 하의 고문 피해자이기도 한 바첼렛 대통령이 이 박물관의 설립을 이끌었는데, 이에 대해서 칠레 내에서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박물관 건립이 타당한지에 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있긴 하지만 나는 인상 깊게 관람했다.
박물관 내부에는 군부 쿠데타 직전 분열된 칠레 국민의 시위 모습이나, 쿠데타와 군부독재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당시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볼 수 있다. 특히 실제 목소리로 듣는 살바도르 아옌데의 라디오 연설이 가슴을 울린다. 박물관 외부에는 El museo es una escuela(박물관은 학교다)라는 말이 크게 쓰여있다. 아픈 역사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한 번쯤 방문해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