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시 이십 분, 그 도로에 있었다. 평택 제천 4차선 도로 오른쪽. 당시에는 화재라고 생각지 못하고 평택항 근처이니 안개구간인가 보다 생각했다. 안개라기엔 색이 너무 짙은 거 아닌가? 싶던 그때,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고속도로를 뒤덮었다. 앞차의 비상등을 등대 삼아 간신히 빠져나왔다. 매캐한 연기를 맡고서야 불이 났다는 걸 직감했다. 백미러로 뒤를 바라보니, 거대한 크기의 공장 곳곳에서 폭포수 같은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제발 인명 피해만은 없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뉴스를 통해 화재 현장에서 세 분의 소방대원이 순직하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신 숭고한 죽음 앞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가장 긴박했을 그 시간, 그 현장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마치 지인 가족들의 참사인 것처럼 더 아프게 느껴졌다.
잠깐이었지만 고속도로에 불이 붙어 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지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 매운 연기가 차 안으로 새어 들어왔을 땐 이러다 질식하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나고 무서웠다. 당시 화재현장은 얼마나 더 숨이 막히고 아비규환 같았을까. 죄송한 마음과 함께 지금 맑은 공기로 호흡하고 있음이 감사한, 양가적 감정이 들었다. 세월호 사고와 대구 지하철 참사 때도 우린 그랬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아이를 잃고 가족을 잃어 울부짖는 유가족들 모습에 눈물을 펑펑 쏟다가도, 뒤돌아 내 아이 내 가족을 끌어안으며 안도하고 감사했던 우리다. 누군가 강도에게 붙들려 피를 흘리며 도움을 요청한다 해도, 뒤로 세 발짝 물러나는 게 솔직한 우리 감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무겁다.
오늘, 합동영결식이 있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전선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헌신적인 구조활동을 벌이다 순직하신, 소방관 세 분의 투철한 사명감과 용기에 깊이 감사하며 추모의 마음을 담아 함께 기도했다. 만일 그 시각 다시 그 화재현장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소방관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웃음이 머물고,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는 남편이 있는 공간에 내가 있다. 최선을 다할 위치와 팀장이라는 지위가 나를 바로 서게 한다. 이렇듯 감사한 일상의 연속이다. 그러나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다. 신이 아닌 한낱 인간이기에, 나에게 주어진 오늘 이 시간을 감사하며,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표현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언제든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니 말이다. 우리가 숨을 쉬고, 차를 마시며 소소한 일상을 누리는 순간순간마다, 누군가의 헌신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평택, 그 현장에 내가 있었다. 소방관들을 절절하게 추모하고 내 남은 삶이 성실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 6일, 출장 때문에 나선길에서, 공교롭게도 “평택 냉동창고 화재현장”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날의 사건을 바라보며 들었던 여러 가지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었습니다. 이 글을 빌려,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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