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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Jan 23. 2022

제주도 동쪽, 그곳은 타히티였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고..

이국적인 여자가 지나가면 저절로 눈길이 따라가는데, 그 여자가 비너스라면, 남자가 아니어도 가슴이 뛴다. 달과 6펜스를 읽으면서 ‘비너스의 섬’ 타히티가 궁금해졌다.


타히티는 높이 솟은 푸른 섬이다. 깊게 파인 짙은 초록색의 주름은 거기에 고요한 골짜기가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곳 침침함 유곡에 신비가 깃들여 있고, 골을 따라 서늘한 시냇물이 졸졸거리면서 혹은 찰랑거리면서 흘러내린다. 이들 무성한 나무 그늘 아래 태고의 삶이 아직까지 태곳적 그대로 영위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여기라고 슬픔과 두려움이 없을까. 하지만 그 느낌은 금방 사라져 버리고 오히려 현재의 즐거움만이 더 뚜렷이 느껴질 뿐이다. 마치 사람들이 광대의 재담에 웃음을 터뜨릴 때, 광대의 눈에 어린 슬픔이 그러하듯. (달과 6펜스-226P)


달과 6펜스에서 스트릭랜드(고갱)는 6펜스에 해당하는 가정과 모든 속세를 철저히 버렸다. 그리고 ‘달’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예술혼’을 낙원, 에덴동산과 같은 타히티에 정착해 비로소 불태운다. 그에게 ‘타히티’와 마지막 여자 ‘아타’는 그가 찾은 예술혼의 마지막 정착지이며, 또 다른 ‘달’이 아니었을까.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여행길에 오르지 못했기에 일상에서의 치유가 간절했다. 그때마다 제주도의 민트빛 바다와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 숲길이 그리웠다. 나에게 있어 타히티는 제주도였다. 제주도 동쪽 섭지코지를 목적지로 정하고 낙원, 에덴, 타히티라는 단어에 집착했던 것은 최근 완독 한 책 ‘달과 6펜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제주도의 동쪽은 태곳적 아름다움이 살아 숨 쉬는, 국내지만 외국 같은 신비와 비밀스러움이 가득한 곳이다. 사려니 숲과 비밀의 숲을 천천히 걷다 보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 같은 경외감까지 느껴진다. 오랜 시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그곳엔 어떤 주술마저 새겨있을 것 같았다. 색채의 향연은 또 어떠한가. 우리가 아는 이름의 색으로는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자연의 색이다. 조악한 나의 사견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오묘하고 고급스러운 색채이다.


이 섬이 아름답다면 그건 바다와 하늘, 초호의 오만가지 빛깔, 그리고 우아한 야자수가 이루어내는 아름다움이랄까, 그런 것인데 스트릭랜드가 살던 곳에는 뭐랄까요, 에덴동산 같은 아름다움이 있었어요. 아, 정말 얼마나 매혹적이었는지 선생께서도 거길 보실 수만 있다면 참 좋을 겁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외진 곳에, 머리 위로는 푸른 하늘, 사방에는 울울창창 나무만 우거진 곳이죠. 그야말로 색채의 향연 같았어요. (달과 6펜스-270p)


다람쥐 쳇바퀴 도는 지루한 생활에서 잠시 일탈해 제주도를 다녀온 것은, 타히티를 느끼고 싶은 간절함이 이끈 신의 한 수였다. 제주도의 건강한 공기가 우리의 지친 폐를 살렸고, 특별한 먹거리들은 우리의 미각을 톡톡 깨워줬고 재미를 주었다. 피로에 찌들어 있었던 눈은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제주도의 푸르고 푸른 자연에 압도되어 시원해졌다. 하루에 만 보이상 함께 걸으며 나눈 이야기들은 다리를 튼튼히 해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2022년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해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결심했다.

감사, 희망, 도전.

제주도의 너른 품과 달관한 듯한 시원한 풍경에서 배우고 다짐했다.

사랑, 나눔, 희생.


달과 6펜스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세계를 나타낸다고 한다. 둘 다 둥글고 은빛으로 반짝인다. 닮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완전히 다른 둘의 성질을 발견하게 된다. 은은한 달빛은 우리의 영혼을 설레게 하고 어떤 비밀스러운 신비로 유혹한다. 때로 마음 깊은 곳의 어떤 욕망을 건드려 충동으로 이끌기도 한다. 우리는 반짝이는 달을 보며 떡방아 찧는 토끼를 상상하거나 거뭇한 부분에 고요의 바다가 있지 않을까, 어떤 또 다른 세계가 있을 것이라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에 반해 6펜스는 영국의 가장 작은 화폐단위인 돈이다. 차갑고 단단한 은색의 동전. 그 가치는 달과 비교하면 한없이 하찮고 세속적이다. 스트릭랜드(고갱)는 6펜스를 거침없이 버리고 “그림을 그려야 한다"라며 달을 쫓아 타히티와 아타의 품에 안겼다. 어떤 비난과 비웃음에도 개의치 않고 문명과 인습을 철저하게 버렸다.


그의 무책임함과 인간미 없음을 욕하려니, 내 안에 일렁이는 펼치지 못한 꿈이 고개를 쳐든다. 스트릭랜드(고갱)에게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의 천재적 삶을 동경하고 추앙하려니, 내 안에 깊이 새겨진 관념과 통속, 인간의 도리 등으로 중무장한 도덕 선생님이 고개를 쳐든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가정을 버리며 그가 행한 기이한 행동들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며 고개를 내젓는 나를 보았다. 이렇듯 우리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나는 스트릭랜드처럼 어떤 분야의 천재도 아니고 지금의 내 삶에 만족하고 감사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이렇게 나만의 타히티인 제주도에서 잠시 힐링하는 것으로 이렇게 벅차고 감사하고 만족하는지도 모른다. 혼자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는 그것도 대가족이 움직이고 그 역동적 이동 속에서 터지는 웃음을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제주도, 동쪽. 그곳에서 만난 타히티는 나에게 ‘달’이었다. 여행의 참 의미는 깨달음이라고 했다. 가족이 있어 행복했고, 함께 다짐해서 든든했던 제주도 동쪽, 나의 낙원이 부른다.


은빛 ‘달’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 오라고.

완독클럽 독서모임 1월의 책,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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