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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름 Aug 18. 2019

우리는 우리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를 잊을 때가 있어

Sometimes, we forget why we came here

길을 자주 잃는다. 창피하지는 않고 조금 답답할 때는 있다. 괴로울 때도 있고. 방향 감각이 없어 실제로 길을 잘 잃기도 하고, 삶이라는 곳에서 갈피를 잡지 못해 갈팡질팡 거리며 눈동자만 굴릴 때가 많다.      


마침 새로 들어온 베트남 친구와 쉬는 시간이 겹쳤다. 그녀는 내게 주말에도 일을 할 건지 물었다. 나는 그럴까 한다고 대답했고 그녀는 쉬겠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돈은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종종 돈 때문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또 그러느라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처음에 가졌던 목적을 잊을 때가 있다고. 모를 리 없는 생각이었다. 늘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생각, 그러면서도 현재를 어느 정도 희생해서 나중을 꿈꾸며 슬며시 밀어놓는 생각. 알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 착각. 잘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통장 잔고를 보면서 ‘처음에 가졌던’ 마음을 잊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뭘 가지고 왔나. 내 방향의 키를 어디에 뒀던가. 모터는 잔잔한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꺼져있었다. 레이더가 만 오천 불 정도의 지점을 찾기 위해 빙빙 돌고 있었다. ‘환전했을 때 천만 원이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행할 돈도 따로 빼둬야지.’ 빨간 불이다. 적신호는 왜 늘 늦게 발견되는지. 이 계획이 무가치하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여전히 이런 사람이라는 것이 실망스러웠다. 다시 생각해야 했다. 처음에 가졌던 마음이 뭐였나. 뭐였더라.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조금 더 가볍고, 자유롭고, 욕심 없고, 때로는 될 대로 되라지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안 되는 여윳돈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만하고 싶었다. 줄곧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집착한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우선은 모아두는 게 상책이라고. 이것저것 메꾸느라 홀쭉해진 잔고를 보면서 어찌나 불안했던지. 쌓여가는 잔고를 보면서 애초 짧게 머물고자 했던 이곳에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얼마나 되뇌었는지. 물질이나 금전적인 욕구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 꾸밈없이 낙천적인 사람, 행동이나 선택이 계산 없이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데 우선 지난 3개월 반은 도루묵이다.     




마음이든 물질이든 자꾸 버리는 훈련을 해야지 는다. 위로 옆으로 계속 쌓다 보면 첫 삽, 첫 페이지, 첫 마음은 가려지고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되니까. 들춰보면 있으나 들춰야 보여서 쉽게 잊힌다. 한국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도 누군가를 비우거나 어떤 상황들에서 놓여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대단한 시련은 아니고 모두들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스트레스, 패턴과 염증, 실연 같은 것들로부터. -한계를 들킬까 불안했던 업무, 많지는 않지만 심리적 안정감을 줬던 월급 그래서 더 이상 끼적이지 않는 노트, 사람에 대한 기대나 서운함 같은- 일차적으로 몸이 멀어지지 않으면 스스로 버릴 엄두가 안 났다. 삶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조금 거창하지만, 어쨌든 내 삶의 초심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였고 여전히 그렇다. 언젠가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주는 반의 좌절과 반의 행복감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되고 싶거나 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없을 테니까. 그래, 이런 마음을 들춰보지 않고 있었구나. 잊고 있었으면서 잊은 적 없는 줄 알고 있었구나.      


그녀의 문장이 머리에 박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갔다. 지금껏 고민하고 앞으로도 고민할 문장이었다. 내가 어딘가에 있는 이유를 잊고 싶지 않다. 그걸 잊는 순간 어디에서 뭘 하든 의미가 없어질 거니까.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장면을 잃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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