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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름 Aug 16. 2019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해?

Why so serious

같은 사람에게서 세 번째 들은 말이었다. 그러게. 나는 내 표정을 볼 수 없어서 얼마나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세 번이나 같은 말을 듣고 보니 심각하게 심각한가 싶었다. 한국에서 나와 자발적 외노자 생활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하루 12시간을 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벌 때 벌자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는데 아마 일하는 동안은 무념과 무상의 중간쯤에  있었을 것이다.   

   

그녀에게서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두 번째 들었을 때는 다른 사람들 표정은 대체 어떤지 둘러보게 됐다. 이곳에서의 12시간은 나 자신과의 사투와 다름없다. 대부분 혼자 서서 2시간씩 일하고 20분간 다섯 번의 휴식을 돌아가며 갖는 시스템이라 타인의 시선보다는 시계침의 눈치를 보며 열심히 일할 테니 제발 빨리 좀 가달라고 빌뿐이니까. 다시 말해 적어도 일하는 동안만큼은 외부로부터의 접촉이나 강박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12시간 동안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더 말하면,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동안 나는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혹은 지어야 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누군가에게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하냐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정말로 심각할 때만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기쁠 땐 웃었고 애매할 땐 괜찮은 척했고, 부정적인 것들은 감췄다. 그녀가 왜 유독 내 표정에만 의문을 가졌는지 고개를 들고 보니 알 수 있었다. 무표정에도 표정이 있구나. 무의식의 표정이 한 사람의 얼마만큼을 드러낼 수 있을까.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의 표정은 입꼬리 양 끝에 시종일관 미소가 달려있는 것이었다. 계속 즐거울 수는 없다. 그건 그녀의 무표정의 표정이었다. 부러웠다. 내가 왜 그렇게 심각하냐는 말을 들은 것처럼 그녀는 어쩌면 항상 뭐가 그렇게 즐겁냐는 물음을 들을 수도 있다. 내 표정이 그랬을지언정 심정이 결코 심각하지 않았듯 그녀 역시 그 심정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어내지 않아도 좋은 표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믿음직스럽구나 싶었다. 기운이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여기에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소원이 담겨있다. 그래서 그녀의 이 문장이 어떤 선고처럼 느껴졌다. 계속 그런 표정이다가는 좋은 기운이고 뭐고 나만한 사람 아니고는 무서워서 말도 못 걸 것이라는.      




표정은 한 사람의 생애를 반영할까. 생애가 과하면 사고까지는 반영할까. 아무 표정을 짓지 않을 때의 내 얼굴이 그렇게 심각하다면 그건 슬픈 일이다. 언제까지고 일부러 표정에 감정을 둬야지만 괜찮은 얼굴이라면. 무의식 중의 무엇들이 진실이라고 했을 때, 이는 현재가 흡족하지 않다는 것이 된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이렇게나 멀리 나와 있는데 행복은커녕 마취 정도라니. 알게 됐으면서도 같은 말을 세 번째로 들으니 아득했다.      


자신이나 타인을 위해 모두들 크고 작게 자신의 표정을 숨기거나 속이며 산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일에 더 익숙해지는 건 관계에 능숙해지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서툴러지는 것인지. 사실 이건 한국에 살고 살지 않고에서 오는 문제는 아니다. 아주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지. 표정을 위한 표정이 아니라 뭐랄까. 저녁 여섯 시 어느 집의 밥 짓는 냄새 같은, 십이월 거리의 군밤 단내 같은, 자연스럽고 따뜻하게 스미는 내 것을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 같다. 행복하고 싶다는 말은 꼭 현재가 불행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더 나은 것, 더 안정적인 것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지. 그녀가 내게 한 같은 물음을 세 번째까지 듣고 보니 정말로 내 표정이 안타까워 건넨 말이 아니구나 싶다. 내 마음에 던진 말, 스스로를 점검해보라는 조언이 아니었을까. 네 번까지 듣는 건 너무해서라도 무표정의 내 표정을 위해, 현재를 그리고 내면을 위해 치얼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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